비트코인 버블을 넘어서 (2/7)
2018년 3월 27일  |  By:   |  IT, 경제  |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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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고, 책을 넣어둘 공간의 한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도서관을 짓는 거나 다름없는 꿈 같은 기술의 상징이던 인터넷은 최근 들어 특히나 안 좋은 일만 터지면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며 비판받기 일쑤입니다. 지금 당장 떠올릴 수 있는 사회 문제 대부분이 인터넷 때문에 더 나빠졌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러시아 해커들은 페이스북에 가짜뉴스를 끊임없이 퍼뜨리며 미국 민주주의를 유린했습니다. 트위터나 레딧에는 혐오 발언이 넘쳐납니다. 인터넷과 관련한 엘리트들은 소수에 불과하고 부의 편중과 소득 불평등 문제는 더 심해졌습니다. 인터넷이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이를 이용해오던 사람 중에는 특히 지난 몇 년간 인터넷의 추락을 바라보며 성경이 그린 타락 후 세계를 떠올린 이도 많을 겁니다.

처음에는 평등을 기치로 내건 새로운 형태의 독립 언론, 다양한 견해를 대변하는 잡지들, 블로거, 자생력을 갖춘 온라인 백과사전 등이 번성할 것만 같았습니다. 정보를 집대성함으로써 20세기 대중문화를 지배하고 선도해 온 주체들이 분권화된 시스템의 등장으로 힘을 잃는 건 시간문제로 보였습니다. 권위와 위계질서, 대중을 대상으로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방송은 지고 쌍방향 공동 네트워크가 뜰 예정이었습니다. 인터넷의 중요한 속성 가운데 하나인 P2P, 즉 개인과 개인, 컴퓨터와 컴퓨터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구조를 반영한 문화가 대세가 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물론 인터넷 초창기 시절도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닷컴 버블을 비롯해 여러 차례 거품이 빠지고 터졌고,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스팸을 비롯해 잘못된 정보가 유통됐습니다. 그 밖에 문제를 나열하자면 끝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인터넷의 발전은 인류의 진보로 이어지리라는 믿음이 분명 있었습니다.

2017년은 인터넷이 진보를 가져오리라는 믿음이 마침내 산산이 조각난 해로 기록될 만합니다. 인터넷에 대한 회의론 자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특히 인터넷을 긍정하고 폭넓게 지지하던 이들 가운데도 인터넷의 한계와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스티브 잡스 전기를 쓴 월터 이삭손이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몇 주가 지나 쓴 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인터넷의 문제를 고치는 일이 시급하다. 지난 40년 동안 인터넷은 점점 스스로 부식해왔고, 그 결과 이제는 우리를 좀먹고 있다.”

구글에서 일했던 제임스 윌리엄스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목을 끌어야 살고 그러지 못하면 죽는 경제 체제에서 인간의 의지는 점점 소멸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뉴욕 최대의 벤처캐피털 회사인 유니온스퀘어 벤처스의 브래드 번햄 사장은 디지털 시대를 관통하는 사실상의 독점 체제가 끼친 폐해가 정말 심각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출판사와 언론이 소개하는 콘텐츠는 이제 페이스북 뉴스피드에 뜨는 수많은 콘텐츠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구글이 검색 알고리즘을 아주 미세하게 건들기만 해도 웹사이트 방문자의 자릿수가 바뀐다. 제조업체들은 아마존이 중국산 제품을 직접 판매하거나 아마존과 관련 있는 제품을 앞세워 홍보하는 순간 매출이 급감하는 걸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월드와이드웹을 발명한 버너스리마저 자신의 블로그에 광고를 기반으로 하는 소셜미디어와 검색 엔진이 인터넷을 지배하면서 “잘못된 정보, 가짜뉴스처럼 놀랄 만한 내용이나 우리의 편견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내용이 들불처럼 번지기 쉬운 환경이 조성됐다.”고 우려했습니다.

인터넷의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내놓은 해결책은 대개 두 갈래로 나뉩니다. 먼저 인터넷의 잠재적인 위험을 숙지하고 개인이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으로, 스마트폰을 끄고 아이들에게 소셜미디어를 멀리하도록 하라는 식의 조언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두 번째 해결책은 반독점법을 비롯해 관이 주도하는 강력한 규제입니다. 일찍이 정부가 철도나 통신업체 등 공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산업을 강력하게 규제했던 것처럼 거대 테크 기업들도 필요하면 꼼꼼하고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두 가지 모두 일리 있는 해결책입니다. 우리는 분명 소셜미디어에 중독돼 있습니다. 소셜미디어와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더 건강한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어마어마한 권력을 갖게 된 기업이 방송국처럼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상식적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개입을 해도 현재 인터넷이 맞닥뜨린 핵심적인 문제는 고칠 수 없습니다. 19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적 지위가 무너진 건 단지 법무부 산하 반독점 담당 부처가 열심히 규제에 나섰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나 애플의 신제품 등 새로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등장이 공고해 보이기만 하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위를 조금씩 무너뜨렸습니다.

이더리움 같은 플랫폼을 신봉하는 블록체인 지지자들은 소프트웨어 개발과 암호화 기술, 분산원장 시스템 등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변화가 오늘날 인터넷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문제란 끊임없이 정보를 왜곡하고 제대로 된 정보의 흐름을 막는 현재 온라인 광고 시스템, 페이스북과 구글, 아마존 등 일부 거대 기업의 사실상 독점 체제, 가짜뉴스를 무기로 러시아가 자행한 선거 개입 등의 사례에서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만약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기술이 성공을 거두면 이는 현행 반독점법으로 집행할 수 있는 그 어떤 규제보다도 거대 테크 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효과적으로 해체할 수 있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블록체인 기술이 19세기 말 악덕 자본가들이 부를 독점하던 시대 이후 가장 심각한 불평등의 시대를 낳은 승자독식 자본주의 체제에 대안을 제시하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직 평범한 소비자들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바로잡을 만한 잠재력을 갖춘 제품이나 서비스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지금껏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성공을 거둔 블록체인 프로젝트라고는 비트코인 하나뿐입니다. 비트코인을 둘러싼 투기 광풍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해 1990년대 닷컴버블에 몰렸던 돈이 푼돈처럼 보일 정도였죠. 바로 이 비트코인 버블이 블록체인의 진가를 제대로 알리려는 수많은 노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기도 합니다. 가히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킬 만한 잠재력을 지닌 블록체인 기술이라고 해도 그 첫 번째 작품이라는 비트코인 주변에 투기에 눈먼 이들이나 잘못된 예언을 남발하는 사기꾼 같은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결국 블록체인 기술도 비트코인과 함께 사라져버릴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공개된 분권형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비전을 제시하고 실행에 옮기는 이들 주변에는 늘 일확천금을 노리는 기회주의자들이 들끓기 마련입니다. 관건은 과연 이 거품이 꺼진 뒤에도 블록체인 기술이 약속한 대로 인터넷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느냐입니다.

현대 기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터넷이 희망의 대명사에서 추락하는 과정에서도 역사적으로 수없이 반복된 패턴이 보입니다. 팀 우가 2010년 자신의 책 <마스터 스위치>에서 주장했듯이 20세기 모든 주요 IT기업의 성장 과정은 대체로 흡사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누군가 취미 삼아 해볼 만한 것들이 연구진, 개발자의 호기심을 자극해 본격적으로 개발돼 서비스나 제품이 되고 이내 주주의 최대 이익에 복무하는 다국적 대기업의 일원이 된다는 겁니다. 팀 우가 “필연적 주기(Cycle)”라고 부른 이 패턴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인터넷도 그대로 충실히 밟아왔습니다. 인터넷의 시작은 정부가 지원한 학술 프로젝트 가운데서도 특히 별다른 기대를 걸 것도 없던 부차적인 연구였습니다. 하지만 웹이라는 개념이 사람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까지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가치가 높은 기업들은 전부 인터넷을 장악한 기업입니다.

블록체인 지지자들은 “필연적 주기”를 믿지 않습니다. 이들은 인터넷이 태동한 바탕에 무엇보다도 당시 IT 생태계보다 훨씬 더 개방되고 분권화된 환경에 대한 소망과 이상이 있었고, 그 기조를 지켰다면 실제로 인터넷에 관한 모든 것도 “필연적 주기”를 대체하는 경로를 밟으며 발전해왔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몇 되지 않는 대기업의 손아귀에서 모두가 놀아나는 정보화시대는 오지 않았으리라는 겁니다. 뉴스 매체는 정보 조작이나 사기를 쉽게 물리쳐가며 필요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고, 개인정보 유출이나 도용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을 것이며, 광고시장에서 나오는 돈도 훨씬 더 많은 매체가 나누어 가질 수 있었을 거라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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