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에 앞장선 선진국 안에 짙게 드리운 세계화의 그늘 (2/2)
2017년 10월 27일  |  By:   |  경제, 세계  |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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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기술이 있는 젊고 야망 있는 이들에게 적절한 도움이 절실합니다. 도움이란 떠오르는 성공적인 대도시 경제 클러스터 같은 곳에 사람들이 더 쉽게 정착할 수 있도록 하거나 쇠락하는 곳을 원하면 떠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뜻합니다. 이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건 결국 전체 생산성 향상에도 기여할 것이고 GDP도 오를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죠. 여전히 여러 가지 이유로 거주지를 옮길 수 없는 이들, 그래서 쇠락하는 곳에 남아서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이들이 당면한 문제도 같이 살펴야 합니다.

스크랜튼에 사는 젊은이라면 지리적으로 뉴욕이 멀지 않으니, 뉴욕에서 꿈을 펼치며 새로운 삶에 도전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젊은이가 스크랜튼을 떠난다고 스크랜튼의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스크랜튼에 남은 얼마 안 되는 나이 들고 가난한 이들이 더 큰 부담을 지는 셈이죠.

각종 지원금과 세제 혜택을 동원해 침체된 펜실베니아주 북동부 지역 경제를 살려보려는 노력은 그치지 않고 계속됐습니다. 역사적으로 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국가 혹은 지역에 심폐소생술 하듯 경제 지원을 해온 사례는 차고 넘칩니다. 다만 경제학자들은 그런 노력이 원하는 성과를 낼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비관적으로 봅니다. 예를 들어 지난 1월 아메리칸 페이퍼백이라는 회사가 본사를 스크랜튼 근처로 옮겼습니다. 정부의 고용 관련 세제 혜택에 직원 교육비 지원, 그리고 140만 달러에 이르는 정부 보조금 대출 등 회사로서는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 제시됐죠. 하지만 아메리칸 페이퍼백이 본사를 옮기며 이 지역에서 늘어난 일자리 수는 38개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가난하고 실업률이 높은 지역마다 각종 세제 혜택과 보조금으로 만들어낸 이른바 “기업 하기 좋은 지역”이 만들어지지만, 눈에 띄는 효과가 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캘리포니아에 생겼던 기업 하기 좋은 지역 42곳을 조사한 결과, 목표로 했던 기업을 모두 유치하는 데 성공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자리가 생기고 임금이 오르더라도 그 효과는 크지 않습니다. 프랑스에서는 1990년대 도시 경제구역(zones franches urbaines)을 지정하고 입주하는 중소기업에 일시적인 세제 혜택이나 사회보험 보조금을 지급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하지만 침체된 지역 경제에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리라는 희망은 말 그대로 희망으로 그쳤습니다. 새로 고용한 노동자도 주변 지역에서 원래 다른 일을 하던 이들이다 보니, 결국 전체 실업률은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유럽연합에서 가난한 지역에 투자 형식으로 지원하는 EU 구조기금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는 좀 더 긍정적입니다. 지원을 받은 지역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실업률은 낮아졌죠. 하지만 이런 효과가 얼마나 오래 가느냐가 문제인데, 지표가 개선돼 기금이 끊기면 이내 효과가 사라졌습니다.

이보다 더 긍정적인 효과를 발견할 수 있는 사례를 찾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Greenville)로 가보겠습니다. 스크랜튼에서 남서쪽으로 약 1,000km 떨어진 그린빌은 한때 섬유, 방직산업이 번창했던 곳입니다. 유속이 빠른 강에 인접해 이를 동력으로 삼은 공장들이 말 그대로 섬유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었죠. 하지만 그것도 20세기 초반까지 이야기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다른 나라 섬유제품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그린빌의 방직산업은 끝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1990년대 초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정부는 BMW가 미국에 공장을 열 계획을 세우고 좋은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입찰 경쟁에 뛰어듭니다. 총 1억 달러가 넘는 어마어마한 세제 혜택에 4km2나 되는 공장입지 임대료는 1년에 1달러로 사실상 무상 제공이었습니다. 주 정부와 지방 정부가 한목소리로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했고, 클렘슨대학교를 비롯한 지역 대학들이 BMW와 협조해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을 맡기로 했습니다.

BMW 그린빌 공장은 성공적인 사례로 꼽을 만합니다. 현재 BMW 공장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그린빌 공장 덕분에 자동차 부품 기업을 비롯한 관련 업체들이 속속 근처로 모여들었고, 인접한 노스캐롤라이나나 조지아로 이어지는 도로와 물류망도 대대적으로 정비됐습니다. 최근 중국 기업인 지리(吉利)가 소유한 스웨덴 자동차 제조사 볼보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톤 근처에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BMW에 부품을 공급하던 관련 업체들에는 고객이 늘어나는 호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BMW 공장 덕분에 사우스캐롤라이나가 제조업 핵심기지가 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주민들의 실질 소득이 높아졌고, 인구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1990년과 비교했을 때 그린빌은 70%나 더 큰 도시가 됐습니다.

결국, 경제 클러스터의 두 축이라 할 수 있는 기업과 노동자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유치하느냐가 관건인데, 어느 쪽을 먼저 공략해야 하는지는 정답이 없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와도 같죠. 기업은 양질의 노동력을 비롯해 생산에 필요한 각종 물품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곳,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을 원합니다. 노동자들은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곳으로 모여듭니다. 기업과 노동자를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한곳에 모이게 하는 묘수를 발휘해야 하는데, 사우스캐롤라이나주는 바로 그 일을 잘 해낸 겁니다. BMW 공장은 자체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자리를 잡은 뒤에는 지역 경제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까지 맡게 됐습니다.

다만 거대한 경제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유치할 수 있는 입지 요건을 갖춘 곳은 막상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 정부는 대규모 사업만 추진할 게 아니라 지방 정부에 규모에 맞는 적당한 기업을 유치함으로써 일자리를 늘리고 지역 경제를 되살리는 경험 자체를 나누고 방법을 전수해야 합니다. 투자 여건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특정 지역에 투자해 지역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을 유치하는 조건으로 투자를 진행하는 일종의 “지역 특화 벤처캐피털”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정부와 공공 부문이 직접 과정에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19세기 말 미국 연방정부는 주정부에 토지를 무상으로 불하해 대학교를 짓게 했습니다. 주정부는 연방정부가 준 토지를 팔아 돈을 모으거나 그 땅에 직접 농업대학이나 상업대학을 지었습니다. 산업혁명으로 기술이 발전하면서 여전히 영토를 개척하던 시기, 대학의 역할은 교육을 통해 젊은 농부나 기술자를 길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곧 농업이나 공업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오늘날 용어로 옮기면 “산학 협력”에 해당하는 실제 농부, 기술자에게 연구의 성과를 알리고 협력하는 제도를 구축하는 임무가 대학교에 더해졌습니다. 대학교는 지식을 전파하고 새로운 기술과 기술을 적용한 성공 사례를 확인해 연구하는 기관으로 거듭난 겁니다. 당시 설립된 많은 대학이 오늘날까지 연구기관이나 대학교로 남아 지역 기업들과 산학 협력 연구를 수행하고 학생들에게 새로운 직업에 맞는 교육을 제공합니다.

독일에도 현대적인 환경에 맞춘 비슷한 기관이 있습니다. 프라운호퍼 게젤샤프트(Fraunhofer Gesellschaft)로 불리는 이 기관은 1949년 시작돼 현재는 총 69개 연구기관이 등록된 네트워크로 발전했습니다.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가 예산의 30%를 지원하는 프라운호퍼 게젤샤프트는 독일 기업과 함께 각종 연구를 진행하고 기술을 개발합니다.

정부는 이런 기관이나 산학 협력 단체를 지원하고 투자해 기존 노동력을 재교육하고 새로운 기술을 산업 현장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교육을 통해 머신러닝이나 증강현실, 적층 가공 등 최신 기술이 경제 클러스터에 속하지 않은 지역의 업체들에까지 전파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더 잘 이해할수록 기술의 중심이 되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상대적 박탈감은 줄어들 것입니다.

앞선 기술이 널리 퍼지지 않고 한 곳에 집중되면, 그만큼 기술에서 파생되는 권력도 한 지역에 집중되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권력의 집중을 막고자 한다면 기술의 확산을 더욱 장려해야 합니다. 1990년대 말 기술을 바탕으로 한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집약된 기술을 앞세운 미국 기업들의 이윤은 빠르게 높아졌습니다. 업계의 최고 기업은 기술과 함께 얻은 자본과 정치력을 앞세워 경쟁자의 진입을 막는 장벽을 쳤고, 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 공동체와 상생하는 기업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모든 기업의 행위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려는 건 아니지만, 성공한 기업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말 그대로 어마어마하다는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지난 6월 아마존이 홀푸즈를 인수한다고 발표한 뒤 월마트, 타겟, 크루거 등 유통업체들의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이들 기업의 본사가 있는 지역 경제가 위기감에 휩싸였을 정도입니다. 이어 아마존은 미국 안에서 시애틀에 있는 본사와 동급으로 취급할 두 번째 본사 후보지를 찾는다고 공표했습니다. 수많은 도시가 매력적인 제안을 앞다퉈 제안하며 아마존의 환심을 사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대규모 숙련된 노동력, 주요 대도시에서나 가능한 각종 편의와 물류 중심지로 손색이 없는 입지 등 아마존이 내건 몇 가지 필수 요건을 고려하면 아마존의 두 번째 본사를 유치하는 도시는 아마도 이미 잘 나가는 도시 가운데 한 곳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정치적 함의

새로운 인터넷, 통신 기술 업체들에는 인프라가 부족한 허허벌판에 회사를 차리고 운영하는 일이 갈수록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중앙 정부나 연방 정부가 앞장서서 기술을 한 곳에 집중시키지 않고 널리 퍼뜨리며 이른바 지역 균형발전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는 적잖은 비용이 들고, 지역끼리 경쟁이 과열될 우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 나라의 도시와 지역이 “가진 곳”과 “못 가진 곳”으로 나뉘는 데서 오는 부작용은 너무 큽니다. 무엇보다 가진 곳에 사는 경제 엘리트와 정치 엘리트는 점점 더 자기들끼리만 어울리게 될 것입니다. 못 가진 곳에 사는 대다수 서민이 계속 기술 발전의 경제적 혜택을 받지 못하고 소외되면 엘리트를 향한 반감이 커지는 건 당연한 귀결입니다.

유럽연합에서 탈퇴하자는 데 표를 준 영국인들과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은 미국인들은 모두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현재 시스템에 대한 반감과 분노를 표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책 결정자들이 지역 간 불균형과 불평등 문제를 진지하게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유권자들의 박탈감과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입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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