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최대의 적: 온갖 유혹에 빠지는 나 자신
* 이 글을 쓴 수 케거리스(Sue Kegerreis)는 에섹스대학교 정신분석 연구원의 선임 강사입니다. 케제레이스는 영국 정신분석학회와 영국 심리치료재단의 회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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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몇 일은, 혹은 모든 일을 집에서 하는 사람이 그 어느 때보다 많습니다. 재택근무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능률이 높을 때를 스스로 찾아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해 어려움을 겪습니다. 집에 혼자 남아 일하게 되면 직장 동료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잘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어떤 식으로든 부대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정신 건강에 좋은 점이 많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면 그런 이점을 누리지 못하는 건 감수해야 합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여러 가지 자원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은 아마도 시간일 겁니다. 각종 지각(遲刻)에 관한 제 연구에서 잘 드러난 것처럼 시간을 잘 관리해 유용하게 쓰려면 내 안에서 갈등을 빚는 여러 가지 사안을 조화롭게 다룰 줄 알아야 하며, 다른 사람과의 복잡한 관계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일도 잘 해야 합니다.
보통 일터에서는 여러 가지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 시간을 잘 관리하며 일하도록 여러 가지 장치가 마련돼 있습니다. 굳이 우리가 스스로 딴짓을 하지 않는지 신경 쓰지 않아도 업무와 관련 없는 일을 하다가 직장 상사나 동료의 눈에 띄면 좋을 것이 없기 때문에 알아서 자제하게 됩니다. 지금 무엇을 할지 선택권이 거의 없어 때로는 아쉽기도 하겠지만, 반대로 지금 무엇을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게 편리할 때도 있습니다. 2시간은 족히 걸릴 회의에 들어가기 싫을 때가 대부분이지만, 어쨌든 회의 중에는 다른 어떤 일을 해야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는 건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일할 때는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야금야금 잡아먹을 수많은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당장 먹을거리만 해도 그렇습니다. 냉장고만 열면 집어올 수 있는 간식에 냉장고가 텅 비어 있으면 가까운 편의점에 가서 먹을거리를 사 오면 됩니다. 소셜미디어, 인터넷, 게임 등 재미난 일들이 마음만 먹으면 클릭 한 번에 눈 앞에 펼쳐집니다. 지켜보는 눈도 없는데, 일하면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희로애락을 지금 잠깐 누리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어느덧 머릿속에 뭉게뭉게 피어나죠. 온라인에서 시간을 허투루 쓰는 데 관한 유혹은 대개 쉽게 떨쳐내기 어렵습니다. 항상 정도(正道)를 걸으며 해야 할 일을 끝까지 하고 쉬자는 원칙을 지키려는 나와 쉽사리 ‘이 정도면 됐다.’라고 여기고 잔꾀를 부리며 할 일을 미루려는 나 사이에는 항상 팽팽한 긴장이 흐르는 법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일 가운데는 어렵고 그래서 두려운 일이 꽤 있습니다.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이 중압감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그 일을 실제로 해보기 전까지는 얼마나 어려운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법입니다. 즉, 일을 제때 처리하지 않고 꾸물거리며 미뤄두는 것이 걱정을 마주하고 해결하는 데는 썩 좋지 않은 방법임이 틀림없지만, 일을 그르칠지 모른다는 당장의 두려움을 모면하기에는 쓸모가 있는 선택지입니다. 해야 할 일을 미뤄두면 언젠가는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걱정이 마음 한편에 계속 남아있지만, 동시에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이 일이 잘 처리될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대도 같이 남습니다. 부딪혀 깨지기 전까지는 그 일이 잘 될 수도 있고 잘 안 될 수도 있다는 확률의 영역으로 남는 겁니다.
일터에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일해야 한다는 압박은 대개 다른 사람들에게서 옵니다. 직장 상사나 나를 감시하는 듯한 동료들이 눈엣가시처럼 불편하거나 미울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가 맡은 일을 꼬박꼬박 처리할 수 있는 것도 그런 식으로 스스로 규율을 무너뜨리지 않으며 일하도록 누군가 지켜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집에서 혼자 일할 때는 내가 곧 직장 상사고, 동시에 내가 일을 직접 처리하는 부하 직원이 됩니다. 사람들끼리 감시와 긴장, 압박을 주고받는 대신 그 모든 과정이 내 머릿속에서 일어납니다.
침착하고도 친절하게 자기 자신을 다잡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우선순위를 잘 매겨 맡은 일을 처리하고도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한 덕분에 무언가를 즐기는 데 쓸 시간을 남길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할 때 불평이나 잔소리를 늘어놓곤 합니다. 해야 할 일을 똑바로 처리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무조건 질책하거나 지금 주어진 일을 끝마칠 능력이 부족하다며 걱정을 잔뜩 쌓는 데 더 능하죠. 자기 머릿속에 실제 직장 상사보다 훨씬 까다롭고 불친절한 ‘내 안의 직장상사’가 똬리를 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잘못된 방법을 써 책임을 모면하거나 자기 자신을 엉뚱하게 지키려 할지도 모릅니다. 즉, 맡은 일은 대충 처리하거나 어물쩍 넘겨버리고, 빠지지 말아야 할 유혹에 굴복하고 마는 겁니다.
맡은 일을 제대로 처리하려면, 지름길을 찾지 말아라
일터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직접 많은 도움을 받게 됩니다. 예를 들어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풀지 못하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고, 우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에 관해 오가는 칭찬과 격려가 큰 힘이 되기도 합니다. 반드시 서로 좋은 말만 해주는 관계만 이로운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갈등을 빚거나 원만하지 못한 관계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사람도 다른 면에서 우리에게 도움이 됩니다. 다른 사람이나 팀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통에 내 아이디어가 발전할 수도 있고, 살벌하게 서로 치고받으며 벌인 논쟁 중에 내 안의 문제가 드러나 이를 고칠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호시탐탐 나를 괴롭히고 늘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그 덕분에 주어진 일에 매진하게 하는 그 누군가의 역할을 내 머릿속에 있는 가상의 자아가 맡게 된다면 갈등 자체를 일으키지 않고 ‘좋게좋게’, 일을 대충 처리하게 되곤 합니다. 내적인 갈등이 줄어드는 만큼 결과물은 부실할 가능성이 큽니다.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다른 사람과 이메일이나 문자, 소셜미디어를 통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일을 하면 오롯이 혼자 일할 때보다 더 긴장감을 유지한 채 일할 수 있습니다. 가상의 일터를 구축해 다른 사람과 부대끼며 일하는 장점을 살리는 것인데, 잘만 하면 뚜렷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친구도 필요할 테고 나 홀로 일한다는 부담이나 부정적인 느낌을 받아서는 안 되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반대하는 의견을 직접 내는 것도 사실 중요합니다. 누군가와 의견이 다를 때 내 생각을 입 밖에 낼 수 있어야 일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창의적인 삶을 산다고 느끼며 결국 정신 건강에도 이롭기 때문입니다.
재택근무가 생각보다 잘되지 않는다고 너무 자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대부분 다 마찬가지니까요. 당신의 부족한 자제력을 탓하며 절망하기 전에 진지하게 당신의 새로운 일터인 집과 재택근무 자체에 몇 가지 원칙을 세워보는 건 어떨까요? 예를 들면, 일하는 공간과 쉬는 공간을 좀 더 분명하고 엄격하게 나누는 겁니다. 쉴 땐 쉬더라도 일을 조금 하다가 어느덧 늘어져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좌절해서는 안 되니까요. 아니면 누가 지켜보지 않더라도 일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가능하면 그 시간을 지키는 겁니다. 기한을 정해놓고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이를 알려 자연히 그 사람들과 한 약속으로부터 적당한 압박을 받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다음 주 언제 일이 어느 정도 진척됐는지 알려주는 회의를 잡는 식입니다. 할 수 있다면 하루에 몇 시간은 업무와 관련 없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자체를 멀리하는 시간을 정해놓는 것도 좋습니다.
온라인상에서 만나는 사람과의 이야기 말고 동료나 친구들과 직접 만나서 어울리고 부대낄 필요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혼자서 고독히 명상하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친근하고 우호적인 감정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온갖 감정을 표출하고, 다른 사람과 맺은 관계 속에서 그런 감정을 주고받으며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컨버세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