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북한 관광, 포용정책이 아니라 고문 포르노인 이유
2017년 6월 30일  |  By:   |  세계, 칼럼, 한국  |  1 comment
  • 평양과학기술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 경험으로 “평양의 영어 선생님(Without You, There Is No Us: Undercover Among the Sons of North Korea’s Elite)”을 펴낸 한국계 미국 작가 수키 김이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입니다.

의식불명 상태로 북한에서 풀려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집으로 돌아온 지 엿새 만에 사망한 사건은 여러모로 비극입니다. 평양 관광 중 체제 선전 포스터를 훔친 혐의로 구속되어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던 웜비어는 1년 전부터 의식불명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에서 웜비어는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일까요? 당국은 식중독에 걸린 웜비어가 수면제를 복용한 후 깨어나지 못했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많은 이들이 고문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진실은 아마 영영 알 수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사실은 북한에 의약품이 극도로 부족하다는 점, 그리고 외국인이나 상류층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제가 평양에 있는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2011년, 한 미국인 강사가 하이킹을 갔다가 다친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외국인 전용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마취제도 없이 수술을 받았고 항생제도 처방받지 못했죠. 미국으로 돌아온 뒤 상처 부위에 염증이 생겨 긴급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북한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이며, 동시에 가장 잔혹한 정권이 통치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북한의 특출난 반인권적 행태가 UN의 지속적인 지적을 받아온 상황에서 미국인들이 새삼스럽게 웜비어 사건의 잔혹성에 충격을 받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 상황이 관광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믿을 만큼 미국인들 사이에서 인식이 부족한 것이겠지요. 웜비어 사건은 북한 정권이 얼마나 인명을 경시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경우입니다.

매년 5천 명가량의 서구 여행객이 북한을 방문하며, 그중 약 5분의 1이 미국인입니다. 현재 미국 정부는 북한 여행 금지령을 고려 중이며, 웜비어가 사용했던 여행사는 미국인 고객을 더 이상 받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북한 관광”이라는 것은 매우 불편한 개념입니다. 외국인들이 북한을 방문하면 소외된 북한 주민들에게도 문이 열리는 셈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평범한 북한 주민이 외국 관광객에게 노출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평양 관광 자체가 선전용으로 정해진 관광지 몇 군데를 둘러보는 것이고, 안내원 외의 북한 주민과 접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행이 대체로 안전하다고 알려졌지만, 모든 것이 통제되는 경찰국가에서의 위험은 감추어져 있고, 예측할 수 없기 마련입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에 따라서 관광객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 북한 관광은 윤리에 관한 문제입니다. 관광은 개인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고, 일반적으로는 제1세계 부유한 시민들의 취미입니다. 2,500만 명의 주민이 포로처럼 갇혀있는 거대 수용소 같은 나라에서 누릴 수 있는 “관광의 즐거움”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가벼운 마음으로 북한을 관광하는 것은 나치 치하의 아우슈비츠를 산책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웜비어가 훔치려 했다는 선전 포스터는 정치적인 맥락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겐 기념품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치의 스와스티카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위대한 지도자”가 주민들을 노예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징입니다. 수십 년간 고통받아온 북한 주민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죠. 북한 관광에는 또 다른 어두운 이면이 있습니다. 외국인 관광은 매년 북한 정권에 4,300만 달러 이상의 외화를 안겨주며, 이 돈은 주민을 탄압하고 군사력을 키우는 데 쓰일 가능성이 크죠.

이런 것이 “고문 포르노”가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웜비어 사건이 끔찍한 이유는 북한 정권이 미국 시민을 비인간적으로 대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 연관된 모든 국가의 정치적인 가식이 드러나기 때문이죠. 트럼프 대통령은 즉시 “적어도 우리는 그를 집으로 데려왔다”는 자화자찬을 늘어놓으며 오바마 정부를 비난하기에 바빴죠. 사실 현 미국 정부가 웜비어를 데려왔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북한이 활용하기에 적절한 시기를 재며 미국 시민을 포로로 잡고 있다가 국경에서 사망하는 외교적인 재앙을 피하려고 죽기 직전에 돌려보낸 것뿐이죠. 웜비어의 죽음은 워싱턴 방문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가 가기 전에 김정은을 만나길 희망한다고 발표하는 계기로 이어졌습니다.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죠.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현재 북한에 억류된 최소 6명의 한국 시민, 한국전쟁 이후 납북된 것으로 추정되는 어민 500명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웜비어의 죽음은 대북 외교의 처절한 실패를 상기시키는 사건이자, 미국 시민을 억류하는 것이 북한에게 이득이라는 점을 일깨워주는 사건입니다. 대학생에 불과한 웜비어는 북한 관광을 떠나면서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곳으로 향하는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앞으로 제2, 제3의 웜비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입니다.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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