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치료하는 동물들 (2)
2017년 6월 8일  |  By:   |  건강, 과학  |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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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동물이 스스로 처방을 내리고 치료하는 행동은 때가 되면 번식을 하고 배가 고프면 먹이를 찾아 먹는 것처럼 결국 본능적인 행위일까요? 아니면 동물이 경험을 통해 익힌 기술일까요? 저와 이야기를 나눈 과학자들은 조심스레 이러한 자가 치료가 자연선택의 결과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람처럼 의학 지식을 발전시키고 나눠 병을 분석하고 치료를 표준화하는 건 아니지만, 어디가 아플 때 약효가 있는 식물을 제때 먹은 동물이 그렇지 못한 동물보다 생존율이 높다 보니 자연스레 그런 행동이 퍼지게 됐다는 겁니다.

애벌레나 개미처럼 뇌가 작은 동물의 자가 치료는 아마도 본능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곤충보다 뇌가 훨씬 더 큰 원숭이도 벌레를 내쫓으려고 벌레가 싫어하는 성분을 복용하는 모습을 보면 본능적인 반응처럼 보이는 행동을 합니다. 어떤 원숭이는 노래기를 마주할 때 침을 흘리거나 몸을 비틀거나 마치 무아지경의 최면 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반면 영장류만큼 똑똑하지 않은 동물로 분류되는 양은 어떤 식물이 언제 약으로 쓰일 수 있는지를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 같습니다. 자가 치료하는 동물의 행위가 어느 것은 본능에 따른 행동이고, 어느 것은 경험을 통해 학습한 것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없습니다.

물론 침팬지를 비롯한 유인원은 다른 동물들과 확실히 다릅니다. 유인원 사회와 조직에는 인간이 보기에 문화라 부를 만한 것이 있으니까요. 허프만은 유인원들이 이른바 의학적 지식이라 할 만한 것들을 대대로 물려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미가 무엇을 먹는지 유심히 보고 자란 침팬지는 어디가 아플 때 어떤 식물을 어떻게 먹으면 약효가 있는지 배운다는 겁니다. 다른 무리의 침팬지들은 차우시카와 다른 식물을 먹었습니다. 이는 약으로 쓸 만한 식물에 관한 지식이 똑같은 침팬지 안에서도 무리별로 다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동물의 자가 치료를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닙니다.

게다가 쓰기만 한 풀이 몸의 어디가 아플 때 어떻게 효과가 있는지를 그저 어미가 먹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는 것만으로 배울 수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특히 대개 하루 정도 지나야 약효를 경험하는 것이 어미인데, 새끼가 이를 체계적으로 직접 경험하지 않고 과연 체계적으로 익힐 수 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습니다. 유명한 영장류 동물학자 프란스 드왈도 바로 이 부분이 수수께끼라고 말합니다. 또한, 대개 약용 식물은 쓰고 맛이 없는데, 애초에 이 식물이 약효가 있으리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 첫 시도가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동물들이 아플 때만 찾는 성분이나 먹이가 있거든요.”

드왈의 말입니다.

허프만은 인간도 처음에 동물이 하는 것을 보고 의료에 관한 지식을 얻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에 관해 친구였던 칼룬데가 들려준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합니다. 지난 2013년 세상을 떠난 칼룬데도 어렸을 때 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칼룬데의 할아버지는 부족의 치료사였는데, 하루는 몸이 아파 보이는 고슴도치가 독성이 꽤 강한 것으로 알려진 식물의 뿌리를 캐 먹는 모습을 봤다고 합니다. 고슴도치가 병에서 회복하는 걸 보고 칼룬데의 할아버지는 직접 그 나무뿌리의 효험을 시험해 봅니다. 처음에는 자기 자신이 먼저 조금 먹어보고, 그다음에는 마을 사람들에게도 조금씩 먹여 봤죠. 그 나무의 뿌리는 이질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통웨족은 오늘날도 이질이 돌면 그 나무뿌리를 약으로 먹습니다.

허프만은 인류의 선조가 동물을 관찰하고 동물이 겪은 일을 상상할 수 있던 능력을 바탕으로 동물의 의료 지식을 인간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추정합니다.

“어쨌든 수천 년간 계속된 임상 시험에 자연 선택이 더해져 나온 결과가 동물의 자가 치료 행위니까요. 그만큼 검증된 의약 지식도 또 없었다고 봐야죠.”

어떤 동물들은 마치 과학 실험을 하듯 원인과 결과를 관찰하면서 실험을 거듭해 교훈을 얻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옥스포드대학교의 진화 심리학자 로빈 던바는 저서 “과학의 문제점”에서 과학이 서구 국가들이나 선진국이 독점할 수 있다는 생각뿐 아니라, 인간만이 과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틀렸다고 주장합니다.

과학이란 원래 보편적인 것이다. 모든 생명체에는 과학의 원리가 담겨 있다. 또한, 살아있는 모든 것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파악하고 배워가는 과정도 과학이다.

던바는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꿀잡이새(honeyguide)의 행동을 예로 듭니다. 꿀잡이새는 사람들에게 동작이나 울음소리로 벌집이 있는 곳을 알려줍니다. 꿀잡이새는 벌집을 알려준 대가로 사람들이 벌꿀을 채취하고 남은 꿀을 먹습니다. 던바는 벌꿀을 먹는 오소리에게 벌집의 위치를 알려주고 꿀을 나눠 갖던 꿀잡이새가 사람도 오소리와 마찬가지로 행동하리라는 추론을 거쳐 사람에게 벌집의 위치를 알려주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동물의 자가 치료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대개 동물의 행동을 과학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 물으면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하지만 유타 주립대학교의 후안 비얄바는 동물들이 적어도 우리가 과학적 방법론이라 부를 만한 것을 어느 정도 따르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오랫동안 풀을 뜯는 양을 관찰해 왔습니다. 양은 어떤 풀이 영양가가 높은지 골라 먹습니다. 하지만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양은 딱히 영양소 측면에서는 아무런 효용이 없는 풀도 함께 먹는데, 이는 아마도 어떤 약효 때문일 것으로 보입니다. 침팬지에 관한 허프만의 연구를 보고 감명을 받은 비얄바는 양들이 약효가 있는 식물을 어떻게 알아내고 먹는지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먼저 양들이 먹는 풀에 타닌(tannin) 성분을 몰래 탔습니다. 지혈제에 쓰이는 유기 화합물인 타닌은 우리가 적포도주를 먹었을 때 떫은맛을 내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타닌은 맛이 고약해서 양들도 보통 타닌 성분이 있는 풀은 먹지 않습니다. 진화를 거쳐 타닌 성분을 지닌 식물들이 있는데, 동물에게 먹히는 일을 포함한 식물의 스트레스를 낮춰주는 효과가 있는 겁니다. 하지만 동시에 타닌에는 구충 효과도 있습니다. 비얄바는 어린양에 기생충을 일부러 감염시키고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한 그룹에는 타닌 성분이 든 풀을 먹이고, 다른 그룹에는 원래 먹는 풀을 먹였습니다. 타닌의 구충 효과가 나타나 타닌이 포함된 풀을 먹은 양들에서 기생충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비얄바가 다시 기생충에 감염된 양들에게 타닌을 섞은 풀과 그냥 풀을 한꺼번에 주자, 타닌 성분이 포함된 풀을 먹고 구충 효과를 경험했던 양들만 타닌 맛을 참고 그 풀을 먹었습니다. 약효를 경험해보지 못한 양들은 원래대로 먹던 풀만 먹으며 기생충을 그대로 달고 살았습니다.

“약 성분이 든 먹이를 먹도록 입맛을 바꾸고 조정하려면 일종의 학습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양은 아파서 치료가 필요할 때만 약효가 있는 먹이를 찾아 먹었습니다. 대단히 효과적이었죠. 비얄바가 따로 구충제를 먹여 기생충을 모두 제거해주자, (타닌이 든 풀을 먹고) 스스로 치료했던 양들도 이제는 다시 쓴맛이 나는 풀을 먹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지금은 치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 같습니다. 비얄바는 또한, 양이 혼자 있을 때보다 무리 지어 있을 때 어떤 식물에 약효가 있는지를 훨씬 더 빨리 배운다는 점도 발견했습니다. 마치 의학 지식을 함께 나누며 배우는 것처럼 보였죠. 이는 무리 지어 사는 동물이 한 번 습득한 의료 지식을 어떻게 유지하고 물려주는지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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