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상속의 성차별 기록 프로젝트, 5년의 이야기
2017년 4월 25일  |  By:   |  세계, 정치, 칼럼  |  No Comment

2012년 봄, 저는 일상 속의 성불평등 경험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온라인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레이디 가가가 트위터에서 제 프로젝트를 언급해주었을 때, 저는 설레는 마음으로 반응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휴대폰을 확인했을 때 저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200여 개의 알림이 떠있었지만, 제게 온 메시지는 여성들이 털어놓은 자신의 경험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강간 협박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성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여성이 어느 정도의 증오와 분노를 마주하게 되는지를 생생하게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로도 각종 협박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끈기는 놀라울 정도였죠. 수개월, 수년에 걸쳐 일면식도 없는 여자에게 자신의 강간 계획을 구체적으로 늘어놓는 남자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다양한 세팅에서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남성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들의 전술에도 익숙해졌습니다. 스크린 뒷편에서 협박을 일삼는 온라인 트롤들은 오히려 가장 덜 위협적인 존재임을 알게 되었죠. “잘난 척 그만하고 탐폰이나 갈아라”와 같은 아무말을 어떤 주장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들의 “주장”은 분노를 먹고 반복 재생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노는 “남성을 증오하고 사회를 파괴하는 환상 속의 페미나치 온라인 포럼”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것이었죠.

가장 악랄한 류는 멀끔하고 지적인 부류입니다. 이들은 도처에서 보통 사람의 모습을 하고 나타납니다. 코웃음을 치며 영국에서 성차별은 이제 옛날 얘기고, 다른 나라의 “진짜 문제들”을 들여다보라 말하는 사람들, 제 남편에게 저와 결혼해서 고생이 많다는 투의 말을 위로랍시고 건네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요즘 젊은 여자들이 복에 겨웠으며, 내가 “쓸데없이 부정적”이라고 충고를 건넨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인터뷰 내용을 흘낏 보고는 “최대한 섹시하게 보이게 해주겠다”고 공언한 신문사의 사진 편집인도 있었고요. 세상을 바꿀 힘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세상을 조금도 바꾸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진 이들이죠.

이런 시련에도 불구하고 저의 프로젝트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지난 5년 간 수십만 건의 증언이 쏟아져 들어왔죠. 그 기간 동안 제가 만난 여성들 가운데 할 말이 없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성기 사진”을 받았다는 9살짜리 소녀부터, 남편의 절친에게 맞았다는 여성, 백인 친구들과 함께 클럽에 갔다가 혼자만 입장을 거부당한 흑인 여성, 강간당할 일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장애인 여성까지, “이러이러한 여성이 이러저러한 일을 겪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저의 고정관념도 모두 박살이 났습니다.

저의 수난시대도 계속되었습니다. 길에서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던 한 남성은 제가 직장 성희롱 문제에 대한 강연을 하러 간다고 말하자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 “아니 좀 재미있게 살면 안 되는 겁니까?”하며 화를 내기도 했죠. 생방송 인터뷰에서 “유머 감각이라곤 없으니 친구도 없고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온 진행자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한 논객은 제 남편에게 “언젠가 당신 부인이 집을 다 불태우고 아이들을 살해한 후 레즈비언 마녀들의 커뮤니티로 떠날지 모른다”며 경고하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내가 세상에 독을 퍼뜨리고 있으니 사라져줘야 한다는 살해 협박을 받았을 때 저는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힘들 때는 마녀 커뮤니티가 있다면 정말 떠나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른 여성들로부터 이토록 큰 실질적, 심정적 지원을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죠. 이미 다 보고 겪은 윗세대 페미니스트들과, 동년배 여성들 모두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습니다. 전에는 어디서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여성들은 그 자체로 제게 큰 원동력이었습니다. 내가 이 목소리들을 세상에 전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면서 학교, 대학, 기업체는 물론 정치계, 사법 당국과도 함께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희망도 얻었습니다.

최근 부상중인 거대한 페미니즘 물결의 일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기쁨입니다. 미디어 상의 성차별에서부터 여성 할례까지, 다양한 불평등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소한 문제”에 집착한다는 비난에도 당당하게 맞서게 되었죠. 그 “사소한 문제들”이야말로 여성이 2등 시민으로 취급받는 현실을 정상적인 것, 일상적인 것으로 만드는데 기여하고, 나아가 세상의 모든 차별과 불평등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한다는 것은 곧 과민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함께 한 여성들의 강인함과 재기발랄함은 그 빛을 잃지 않았습니다. 한 무용수는 자신이 성추행을 당한 지하철 안에서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벌였습니다. “네가 엔지니어가 되면 종이라도 먹겠다”고 악담을 퍼부은 진로상담사에게 엔지니어가 된 후 계약서와 소금을 들고 찾아간 여성도 있었고요.

제가 지난 5년 간 일상 속의 성차별 프로젝트 사이트를 운영한 경험 속에서 절망보다 희망을 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여성들이 분노와 슬픔, 트라우마를 쏟아낸 것을 두고 5주년을 축하하자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강인함, 연대, 저항을 떠올려보면 마냥 슬퍼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5년간 제가 배운 것이 있다면 문제가 어마어마하게 크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그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이니까요. (가디언)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