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 동료 여러분, 도와주세요.”
아일랜드 리메릭대학교의 외과 의사인 캘빈 코피 교수는 각종 과학 장비와 의료 실험에 쓰는 기구에 통달한 전문가입니다. 최근 그는 말 그대로 최신형 기구를 장착했습니다. 바로 소셜미디어입니다.
캘빈 교수는 장기와 복부 사이의 접힌 조직을 일컫는 장간막(腸間膜)도 사람의 장기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동료 세 명과 몇 달째 프로젝트를 계속하고 있는데, 전 세계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이 모여있는 페이스북 형태의 소셜네트워크 리서치게이트(ResearchGate)에서 연구 방향이나 주의사항 등에 관해 상당히 유용한 조언을 얻고 있습니다.
“이 분야 전문가들이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줍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소셜미디어와는 조금 다르죠.”
코피 교수의 논문은 지난달 영국의 권위 있는 의학저널 <랜셋 위장병학, 간장학>에 실렸습니다.
리서치게이트에서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어쩌면 이 논문은 아직 빛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사례에서는 최근 과학계 연구 동향의 특징을 잘 드러납니다. 코피 교수가 지적했듯, 예전에는 과학자들이 동료로부터 필요한 조언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같은 분야의 연구진이 아니고서는 누가 무슨 연구를 하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변화의 속도는 처음엔 더뎠습니다. 하지만 최근 클라우드 컴퓨팅을 사용하는 데 드는 비용이 크게 줄어들고 과학자들도 자신이 하고 있는 연구를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걸 점차 거북하지 않게 여기면서 변화에 속도가 붙었습니다.
리서치게이트를 처음 열었을 때부터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이아드 마디시(Ijad Madisch)가 늘 생각해오던 것도 바로 이렇게 활발한 지식과 연구의 공유입니다. 매사추세츠에서 과학 연구원으로 일하던 마디시는 지난 2008년, 고향인 독일로 돌아와 베를린의 빠르게 성장하는 테크 기업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리서치게이트에 계정을 연 과학자들은 약 1천2백만 명으로, 전 세계에서 리서치게이트 회원이 될 자격을 갖춘 이들의 60%에 해당합니다.
현재 리서치게이트에는 매달 약 250만 건의 연구 논문이 올라옵니다. 리서치게이트에 등재되고 공유된 연구논문이 총 250만 건을 돌파하는 데 4년이 걸렸던 데 비하면 대단히 활발히 연구가 공유되고 있는 셈이죠.
지난 화요일, 리서치게이트는 골드만삭스, 빌 게이츠, 그리고 벤처캐피털 펀드인 벤치마크 캐피털을 포함한 여러 투자자로부터 총 5,260만 달러를 투자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받았던 투자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규모로, 이미 지난 2015년 말에 투자가 이뤄졌지만, 독일 기업회계 규정에 따라 1년도 더 지난 시점에 투자 사실이 공표됐습니다.
연구 자료를 공개하고 지식을 공유하는 과학계의 경향은 머신러닝과 같은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여러 분야와 지역적 경계를 넘나들며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어 특히 신생기업에 유리합니다.
과학 기술을 더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 이상의 효과도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암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게임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s)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스마트폰 게임을 고안해 냈습니다. 유방암 환자의 실제 유전자 배열을 토대로 설계된 미로 같은 항로를 따라 우주선을 몰고 가는 게임인데, 전에는 과학자들이 직접 유전자 배열을 분석해 이상 징후를 찾고 해당 배열과 암의 관계를 밝혀냈지만, 이제는 게임 결과가 곧 유전자 배열 분석으로 이어지도록 설계된 덕분에 연구와 진단에 드는 시간을 줄였습니다.
하버드나 MIT가 점점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온라인 공개강좌를 확충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학 연구뿐 아니라 대학이라는 개념 자체도 급격히 변하고 있습니다.
개인 모바일 기기 보안을 높이는 방법을 연구하는 메릴랜드 대학교의 컴퓨터과학자 우팔 마흐법은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하며 항상 리서치게이트의 동료 과학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최근 그는 리서치게이트를 통해 연락한 한 과학자가 전혀 다른 프로젝트에 혹시 자신이 쓴 코드를 써도 되는지 물어왔다고 말했습니다. 마흐법이 자신의 연구 과정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하지 않았다면 생각조차 못 했을 기회가 어딘가에서 열린 겁니다. 마흐법은 기꺼이 자신의 코드를 공유했습니다.
“모든 게 다 온라인에 올라가면 결국 사람들이 제 연구를 더 잘 이해하고 관심을 갖게 되니까 좋은 일이죠.” (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