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배타적인 신념이 트럼프의 지지율을 살찌운다
2017년 2월 24일  |  By:   |  정치  |  5 Comments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영화감독 지망생을 양성하는 작은 업체를 운영하는 제프리 메드포드(46) 씨는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를 찍었습니다. 보수 성향 유권자로서 공화당에 표를 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지만, 트럼프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건 아닙니다.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벌써 메드포드 씨의 마음을 언짢게 하고 있습니다. 무슬림 입국 금지 행정명령이 그랬고, 자꾸 불거지는 지나친 친러시아 행보도 공화당 대통령에게 품었던 메드포드 씨의 기대에 어긋나는 행보였습니다.

트럼프를 찍지 않은 진보성향 유권자들과 마찬가지로 메드포드 씨도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과 정치철학에 문제가 있다며 비판합니다. 트럼프를 뽑은 건 잘못이었다, 트럼프는 대통령감으로 부족하다는 진단에도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메드포드 씨 같은 이들은 여전히 자칭타칭 진보라는 사람들과 한목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아니, 낼 수 없습니다. 페이스북에서 모르는 사람과 댓글을 주고받을 때도, 뉴욕이나 LA에 있는 친구와 정치 얘기를 할 때도 그는 트럼프를 찍었다는 사실만으로 쉽사리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메드포드 씨는 매번 진보주의자들이 내세우는 도덕적 우월감에 신물이 난다고 말합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완전 궁지에 몰렸어요. 저는 솔직히 트럼프가 실망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좀 더 지켜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의 태도는 이런 식입니다. “당신, 내 의견에 100% 동의해요, 안 해요? 100% 동의할 수 없다면 당신은 도덕적으로 이미 글러 먹은 거예요. 트럼프의 사소한 어떤 것이라도 지지한다고요? 생각이란 걸 하고 사시는 분 맞으세요?” 심지어 제가 적극적으로 무슨 의견을 낸 것도 아녜요. 그냥 그 사람들이 말을 하다 보면 저를 어느덧 그렇게 몰아붙여 놓고 있죠.”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정치적인 목소리는 트럼프 취임 후 곳곳에서 급격히 분출하고 있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은 이토록 무책임하고 심지어 위험한 인물에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죠.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합니다. 최근 인터뷰를 보면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최근 자신들을 향한 도덕적인 비난이 선을 넘었다며, 일종의 “윤리적 볼셰비즘”을 방불케 한다는 표현까지 썼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이 자신과 다른 의견을 묵살하고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려 한다는 겁니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이 그리는 국가와 정부의 모습이 유일한 선이자 정답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신념의 영역에 토론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시위대도, 소셜미디어상에 혹은 할리우드 스타의 입에서 나오는 트럼프 시대를 향한 분노의 표현도 진보주의자들의 눈에는 잘못된 정책을 지적하는 상식적인 비판이고, 귀담아들을 만한 주장으로 보일 겁니다. 하지만 온건한 보수 성향 유권자들조차 이런 비판을 접하면 진보적인 사람들과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쪽으로 등 떠밀린다고 말합니다.

“좌파들의 비판은 도를 넘은 욕설이나 다름없어요. 누군가를 공개적으로 험담하는 트럼프의 행동이 적절치 않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정작 굉장히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이죠.”

민주당의 텃밭이자 진보적인 성향이 압도적인, 그래서 트럼프를 찍었다고 실토하는 것이 마치 1950년대에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캘리포니아 주 마운틴 뷰에서 테크 스타트업의 영업직으로 일하는 브라이스 영퀴스트(34) 씨의 말입니다.

영퀴스트 씨는 처음 몇 달 동안 자신이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숨겼습니다. 누군가 열쇠나 못으로 차에 흠집을 낼까 봐 두려워서 승용차에 트럼프를 지지하는 스티커도 붙이지 않았죠. 트럼프의 선거 구호 “Make America Great Again”이 적힌 모자를 마음 편히 쓸 수 있는 곳은 휴가를 보냈던 중국밖에 없었습니다. 데이트 상대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데이팅 앱 틴더의 프로필에 공개적으로 “트럼프 지지자 사절”이란 문구를 걸어놓은 사람이 수두룩했으니까요.

선거를 며칠 앞두고 그는 마침내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선거 결과의 윤곽이 드러난 선거 당일 밤, 한 친구는 영퀴스트 씨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너란 놈 진짜 역겹다.”

영퀴스트 씨는 이렇게 앞뒤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맹목적인 비난에 오히려 반감이 생겨 트럼프를 더 지지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보수주의자들도 물론 선을 넘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도 잘못된 행동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트럼프가 이 나라에 해가 되는 대통령이라는 정치적인 주장으로 남을 설득하려면, 먼저 경계에 있는, 설득 대상이 될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겉보기에는 충분히 대화할 용의가 있는 보수성향 유권자들 가운데 진보주의자들이 가교를 이어 이야기를 나누려는 대신 있던 다리마저 태워버리고 자기만의 논리와 신념에 자신을 가두려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이가 많습니다. 뉴욕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 조나단 하이트는 말합니다.

“일종의 신뢰의 나선형이랄까요? 이미 우리가 한쪽에서 무슨 말을 하면 다른 쪽에서는 이를 무조건 믿지 못하고 삐딱하게만 받아들여 갈등이 점차 고조되는 상태까지 와버린 건 아닌지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현재의 혼란스러운 정국이 순전히 트럼프 때문이라고 비난하기는 쉽습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 규범으로 여겨지던 것들을 깡그리 무시했습니다. 미국 민주주의 제도 전체를 아마 지난 수십 년 사이 가장 큰 위기로 몰아넣은 장본인이 트럼프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그렇지만 많은 전문가는 트럼프와 트럼프주의가 겉으로 드러난 증상일 뿐, 문제의 근원은 훨씬 더 깊은 곳에 따로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전문가들은 오늘날의 상태를 베트남전 반전 운동이 최고조에 이른 1960년대와 비교하곤 합니다. 지금보다 폭력적인 갈등의 정도가 훨씬 심했던 그 시기의 종지부를 찍은 건 우리 모두 알다시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1972년 대선 압승이었습니다.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 닉슨 대통령은 선거 기간 내내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당시 거리에서 외치는 반전 구호를 미국이라는 나라를 무시하는 처사로 여기며 분노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했고, 결과적으로 낙승을 거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또 1960년대의 민주주의는 지금보다 훨씬 튼튼했다며, 지금 상황과 비교할 만한 때를 찾으려면 역사책을 훨씬 더 앞으로 넘겨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스탠포드 대학교 사회학과의 더그 맥아담 교수도 지금의 상황에 견줄 만한 시기는 남북전쟁과 그 직후가 유일하다는 견해를 표시했습니다.

“물론 지금 미국이 갈라져서 서로 전쟁을 할 정도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정치 제도가 전반적으로 이렇게 심각한 긴장과 갈등상태에 놓인 적은 (남북전쟁 이후) 없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는 어느덧 일상적인 정치 문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시위는 대부분 평화롭게 진행되지만, 하이트 교수는 최근 연구를 토대로 만약 시위대 중 일부라도 폭력을 사용한다면 시위대가 외치는 주장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감소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심지어 평화적인 집회라도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평화 시위 자체에 반대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 시위는 나라를 파괴하고 있잖아요. 가끔은 지금 이 나라가 일종의 내전 상태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물론 제 주변에도 내전이라고까지 표현하는 건 지나치다고 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정말 두려워요.”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를 뽑은 앤 오코넬(72) 씨의 말입니다. 오코넬 씨는 행정 비서로 일하다 은퇴하고 뉴욕 주 시라큐스에 살고 있습니다. 오코넬 씨는 빌 클린턴 대통령을 두 차례나 뽑은 민주당원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을 고르는 기준이 중산층을 위한 경제 정책에서 정체성을 중시하는 정치적인 선택으로 바뀌면서 민주당을 점점 멀리하게 됐습니다. 그녀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불법 이민자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연설을 했던 걸 똑똑히 기억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동감했던 그 연설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되살려 실행에 옮기겠다고 주장한 것이 다름 아닌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말합니다.

“민주당은 변해도 너무 변했어요. 이제는 알아보기 어려울 지경이 됐죠. 민주당 사람들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해치고 있어요. 이슬람 테러리스트들보다도 더 무서운 사람들이 되어버렸어요. 민주당 사람들이나 그 사람들이 하는 짓은 정말 눈 뜨고 못 봐줄 지경입니다. 민주당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트럼프 대통령을 더 적극적으로 지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정말이에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오코넬 씨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실제 중도 보수 성향 시민들 가운데 적지 않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퓨리서치 센터가 한 첫 번째 국정 수행 지지도 조사를 보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중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한 이가 거의 없었지만, 공화당 성향의 중도층은 70%가 국정 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부정적인 평가는 20%에 그쳤습니다.

메드포드 씨는 트럼프 대통령을 폐차 직전 고물 자동차에 비유했습니다.

“찰스톤에서 애틀란타까지 한 500km 되는 거리를 지금 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칩시다. 그런데 교통수단이 아무것도 없어서 난감한 와중에 과연 굴러가긴 할까 싶은 고물차 한 대가 나타나서 자동차 찾으셨냐고 묻는 거죠. 와, 정말 다른 방법이 있다면 얼른 그 방법을 택할 텐데, 선택지는 이 고물 자동차뿐입니다. 심지어 500km를 버텨줄지 장담할 수도 없는 그런 수준이죠.”

그렇지만 적어도 아직은 차에서 내릴 생각이 없다고 메드포드 씨는 말합니다. (러시아 외교관과 기밀을 공유한 혐의로 논란을 빚은) 트럼프 대통령의 안보보좌관 후보 마이클 플린의 스캔들도 아직 그의 생각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지난해 말 메드포드 씨는 뉴욕에 사는 한 여성과 온라인을 통해 만났습니다. 몇 시간 동안 통화할 만큼 친해졌죠. 뉴욕에서 실제로 만나보자는 데까지 얘기가 무르익었을 때 메드포드 씨는 자신이 트럼프를 찍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그녀는 무척 당황스러워하며, 뉴욕에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메드포드 씨는 결국 뉴욕에 갔지만,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가 온 것을 숨겼습니다.

“단지 제가 누구를 찍었는지 그 사실 하나만으로 저는 형편없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트럼프 찍었다고? 됐어 넌 꺼져, 이런 식이죠.”

오코넬 씨도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녀는 페이스북의 모든 글을 지우고 가능한 한 TV도 안 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도 지금의 상황은 정치와 완전히 담을 쌓는 걸 허락하지 않습니다.

“제가 메릴 스트립을 배우로서 얼마나 좋아했는데요, 그런데 이제는 영화를 보러 가도 메릴 스트립이 나오는 작품은 안 보게 되더라고요. 남편한테 우리 정말 좀 더 마음을 넓게 쓰지 않았다가는 볼 영화가 하나도 안 남겠다고 푸념하듯 말했죠.”

오코넬 씨의 걱정은 영화 선택지가 줄어든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변화라는 게 절대 완전히 바닥을 칠 때까지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거든요. 알코올 중독자도 정말 나락에 떨어져서야 모든 걸 내려놓고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것처럼요. 아직 우리는 정말 갈 길이 멀었어요.”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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