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독재, 중국의 새로운 실험
2016년 12월 21일  |  By:   |  IT, 세계, 정치  |  4 Comments

25년 전 이맘 때, 소련의 붕괴와 함께 공산주의의 종말이 오는 듯 했습니다. 중국도 내리막길을 갈 수 밖에 없다는 시선이 대세였죠. 폭발적인 경제성장마저도 오히려 공산당의 이념적 기틀을 흔드는 요소라고 여겨졌습니다. 1998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은 민주화가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일 것을 확신하며 장쩌민 주석에게 “중국은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서 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하지만 서구가 금융 위기와 중동 민주주의 이식 실패의 후유증을 겪는 동안 중국 공산당은 일당 체제를 굳건히 유지해왔습니다. 지도부 역시 중국에 민주화는 절대 없을 것이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으며, 심지어 디지털 독재를 새로운 무기 삼아 당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시진핑 체제의 중국 공산당은 겉으로 보기에 그 어느 때보다 강해보입니다. 천안문 사태 이후 무능한 공무원들은 똑똑한 기술관료, 심지어 기업인 출신들로 대체되었습니다. 시민들은 사업을 하고, 해외여행을 하는 등 한 세대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자유를 누리게 되었고, 당은 서구의 공보 전략을 차용해 이 사실을 끊임없이 시민들에게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불안감은 여전히 드러납니다. 반체제 인사와 법률가에 대한 탄압은 심해졌고, 홍콩의 사회 운동가들에게도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죠. 경제성장으로 인해 크게 늘어난 중산층 시민들은 사사건건 정부와 당국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습니다.

당의 입장에서 이와 같은 사회 전반의 불신 풍조는 우려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충격적인 처방전을 들고 나온 것도 놀랄 일은 아니죠. “사회 점수(social-credit system)”이라는 이름의 이 실험은 모두가 좀 더 정직하게 행동하도록 하기 위해 디지털 저장 정보를 수집한다는 명분을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정부가 이를 개개인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과 같은 “사회 관리”의 도구로도 사용하겠다고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부모님 댁을 얼마나 자주 방문하는지도 통제하려고 했던 중국 정부가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통제하려고 들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시민들은 신분증 번호와 연결된 이 점수 시스템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면 은행 대출 이용시나 기차표 구매시 불이익을 받는 등의 제재가 따를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미 “사회 질서 혼란을 야기하는 모임”과 같은 모호한 행위까지도 점수 시스템을 통해 기록하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서구에서도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기업이 인터넷 사용자들의 온라인 흔적을 수집합니다. 이런 기록에 대한 접근성 덕분에 때로는 기업이 이용자가 자신에 대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기도 하죠. 하지만 서구에는 이와 같은 정보 수집 및 활용에는 규칙이 있고, 특히 국가의 개입에는 엄격한 제한이 있다는 신뢰가 있습니다. 중국은 경우가 다릅니다. 관료들이 공공연하게 2020년까지는 점수 시스템을 통해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은 한 발자국 떼기가 어려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니까요.

아직까지 이 제도는 부분적인 실험에 불과합니다. 특히 시민들이 자신의 점수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당에 더 힘을 실어주는 도구로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죠. 항의 목적으로 정부 기관을 방문한 시민들이 낮은 점수로 보복을 당했다는 보도가 관영 매체를 통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실험이 더 크고, 더 악의적인 무언가의 시작이라는 의구심은 여전합니다. 중국에는 정부가 시민들의 삶에 개입하는 것을 정부의 권리로 여기고, 당국에 대한 항의에는 억압으로 대응하는 뿌리깊은 분위기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 제도에 대한 논의 자체가 탄압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 제도를 뒤집어 정부가 시민에게 점수를 매기는 대신, 시민이 정부에게 점수를 매기는 것은 어떨까요? 중국 정부는 이 제도를 “권력의 사용을 제한하고 감독하기 위한 시스템”, “정부 정책 수립에 대한 대중의 참여 통로 확대”로 홍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설명 자체로 보면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죠. 최근 시진핑 정부의 분위기로 봐선 그런 식의 실험이 실현될 가능성은 극도로 낮습니다. 중국 정부는 여전히 디지털 도구로 시민을 통제할 방법을 찾는데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응은 궁극적으로 정부에 대한 분노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장기적으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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