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셔너리닷컴 올해의 단어 “Xenophobia”
미국의 온라인 사전 사이트인 딕셔너리닷컴(Dictionary.com)은 매년 한 해를 마무리할 즈음에 ‘올해의 단어’를 선정해 발표합니다. 그 해에 가장 많이 회자한 단어, 사람들의 생각을 보여주는 단어를 골라 보여주는데, 올해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뉴스와 이야기는 대개 “다른 이에 대한 두려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진화와 함께 두려움이라는 기제를 장착했습니다. 두려움은 무의식중에 상황을 인식하는 것 혹은 인간의 행동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 딕셔너리닷컴 이용자들이 찾아본 검색어 추이를 살펴보면 단연 돋보이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딕셔너리닷컴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외국인 공포증 혹은 다른 이에 대한 두려움을 뜻하는 Xenophobia입니다.
Xenophobia는 19세기 후반에야 비로소 영어 단어로 정착된, 비교적 새로운 단어에 속합니다. 낯선 이 혹은 손님을 뜻하는 그리스어 xénos와 두려움 혹은 공포를 뜻하는 그리스어 phóbos가 합쳐져 탄생한 단어입니다.
Xenophobia의 뜻은 딕셔너리닷컴의 정의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fear or hatred of foreigners, people from different cultures, or stranger (외국인, 다른 문화권 출신의 사람, 혹은 낯선 이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
좀 더 넓게는 나와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자란 이들, 낯선 이들의 관습과 옷차림, 문화 전반을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것도 Xenophobia에 해당합니다.
최근의 검색어 추이를 보면 2015년 4월에 Xenophobia가 갑자기 눈에 띄게 많이 검색됐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증오범죄 및 공격이 늘어나면서 외국인 공포를 뜻하는 이 단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국에 사는 이용자들의 검색량도 늘어났지만, 특히 미국 밖에서 이 단어를 검색한 횟수가 크게 늘어난 것도 이런 가설을 뒷받침합니다.
올해로 한정시켜 살펴보면 6월 24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날 Xenophobia라는 단어 검색량이 938%나 늘어났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동시에 이 단어를 찾아봤다는 뜻입니다. 6월 24일은 영국 국민들이 유럽연합을 탈퇴하겠다는 뜻을 이른바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통해 밝힌 날입니다. 브렉시트와 관련해 검색량이 증가한 또 다른 단어는 증오 범죄를 뜻하는 hate crime이었습니다. 실제로 국민투표 이후 7월 들어 증오 범죄가 41% 늘어났다는 영국 정부의 발표가 있기도 했습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 번 Xenophobia라는 단어는 뉴스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6월 29일, 이번에는 미국 대선 과정에서 이 말이 나왔는데,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명돼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던 도널드 트럼프를 향해 “트럼프의 행보를 포퓰리즘(populism)이라고 묘사하는건 적절치 않다.”며 오히려 이민 배척주의(nativism) 혹은 Xenophobia에 더 가깝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발언 이후 검색량이 가장 많이 증가한 단어는 populism이었지만, Xenophobia에 대한 관심도 다시 한 번 높아졌습니다.
Xenophobia는 이미 세계 무대 곳곳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현상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다양한 이유로 발생한 이민(immigration)은 정치적 긴장과 갈등을 불러왔는데, 대표적인 것이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발생한 시리아 난민 위기입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올해만 50만 명 가량의 시리아 국민이 전쟁을 피해 고국을 떠났습니다. 시리아는 모두가 알다시피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입니다. 반이민주의나 반이민 정책이 이슬람에 대한 근거없는 두려움(Islamophobic)과 연결돼 비판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부르키니(Burkini)를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됐던 것도 결국은 이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부르키니라는 단어도 지난 여름을 기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본 단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우리는 Xenophobia의 검색량 증가와 함께 다른 이에 대한 두려움이 어떤 식으로 드러나거나 뉴스에 등장하고, 또 사전에서 찾아보는 검색어 추이에 반영됐는지를 살펴봤습니다. 올해 미국에서는 대안 우파(alt-right), 백인 국가주의(white nationalism)를 비롯해 특히 무슬림이나 라티노, 유대인, 성소수자, 흑인 등 소수 인종을 비롯한 소수 계층을 향한 증오와 분노를 부추기는 이데올로기가 득세했습니다. 대선 다음날인 11월 9일, 딕셔너리닷컴에서 Xenophobia 검색량은 급증했습니다. 증오 범죄로 분류될 만한 사건이 선거 이후 늘어났다는 보고도 잇따랐습니다.
Xenophobia와 종종 짝을 이뤄 검색되는 단어는 otherness, 즉 다름 혹은 특이함을 뜻하는 말입니다. otherness는 16세기부터 영어에 있던 단어입니다. 초기에는 주로 정신적 혹은 영적으로 초월한 존재라는 맥락에서 쓰이던 이 단어는 19세기 들어 문화적 차이나 이국적인 의미로 굳어졌습니다.
Xenophobia와 otherness 두 단어는 종종 한데 묶여 소개되거나 차이가 비교되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어원도, 역사적인 용례도 뚜렷히 다른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Xenophobia의 어원에는 정서적인 두려움이란 뜻이 분명히 있지만, otherness에 나타나는 차이는 사회적인 정체성 혹은 양태의 차이로 감정적인 반응이 포함되지 않은 개념입니다. 의미를 놓고 보면 Xenophobia와 더 잘 어울리는 한 쌍은 racism, 즉 인종차별주의입니다. 두 가지가 뜻하는 바가 물론 다르긴 하지만, 인종차별주의의 기저에는 나와 다른 이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그로 인한 증오와 배척이 있는 경우가 보통입니다. 상황을 거칠게 요약하면 “난 네가 싫어. 넌 나랑 다르게 생겼으니까.” 정도의 사고에 해당합니다.
기술 분야에서 Xenophobia와 비견할 만한 단어가 생겨났습니다. 곧 딕셔너리닷컴에도 등재할 예정인 uncanny valley라는 단어로, 인간과 비슷해 보이는 로봇, 혹은 인간을 뛰어넘는 신기술을 접할 때 생기는 불안함이나 두려움, 나아가 혐오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런 무의식적인 반응은 곧 우리가 본능적으로 사람과 비슷한 사물에서 나타나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것에 강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Xenophobia의 반응 기제도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다름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표현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 다른 양식의 문화, 다른 방식의 삶에 더 많이 노출하고 부닥쳐 다름을 불편하고 낯설게 여기지 않고 편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면 Xenophobia를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이상적인 세상에서는 다른 이의 삶을 이해하면 다른 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고, 거기서 공감이 싹틀 겁니다.
우리가 살펴본 데이터는 어떤 단어에 대한 검색량이 언제 얼마나 늘어나고 줄어들었는지만 알려줄 뿐 구체적으로 왜 그 단어와 주제에 관심이 쏠렸는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Xenophobia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어서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보려고 검색한 이용자도 있었을 것이고, 정확한 철자나 발음을 확인하려고 찾아본 이용자도 있을 겁니다. 많은 이용자들은 원래 알고 있던 뜻이 맞는지 혹은 좀 더 정확한 뜻을 알아보고자 이 단어를 검색해봤을 것이고, 다른 이들에게 이 단어가 어떤 뜻인지 정확히 알리고 공유하고자 검색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건 전 세계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사건과 정치적인 수사가 복합적으로 Xenophobia라는 단어에 대한 검색량을 늘리는 데 기여했다는 겁니다. 올해의 단어로 선정되긴 했지만, 이 단어가 사실 축복할 만한 긍정적인 뜻을 담은 단어는 아닙니다. 오히려 최근에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일어난 일이 어떤 의미인지를 진지하게 되새겨보게 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딕셔너리닷컴 블로그)
원문에서는 전 노동부장관이자 UC버클리 공공정책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로버트 라이쉬 교수가 Xenophobia에 관해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정리한 동영상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