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발? 정치적 올바름 자체가 현 상황에 대한 반발입니다
2016년 11월 18일  |  By:   |  문화, 세계, 정치, 칼럼  |  5 Comments
  • 미국의 작가이자 사회 활동가인 린디 웨스트(Lindy West)가 가디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2015년 공화당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카메라를 똑바로 보며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박살내는 것이 캠프의 제 1과제”라고 말한 순간을 저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지지자들은 환호성을 질렀죠. 저는 트롤들에게 표를 구하는 사람이 마침내 등장해버렸구나 생각했습니다.

과연, 그 후 1년 간 인터넷의 음침한 구석에서 기어나온 다양한 집단들 – 안티페미니스트, 유대인혐오자, 낙태반대론자, 백인우월주의자, 총페티시스트, 이슬람혐오자, 우파 라디오 진행자, “좋았던 옛 시절”의 남성들 등 – 이 트럼프 지지라는 깃발 아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미스테리의 “대안 우파(alt-right) 연합”에 대한 주류 언론의 해석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을 때, 저는 비명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여성주의자들과 여러 사회 정의 활동가들은 이미 “대안 우파”라는 집단이 우리를 오랫동안 스토킹하고, 추행하고, 괴롭히고, 나아가 침묵하게 하려했던 성난 남성들의 모임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바로 포스트-마틴루터킹 시대의 모든 사회 운동을 싸잡아 비하하는 단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집착입니다. 상황이 못 마땅하던 차에 마침내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줄 힘 센 알파 메일, 트럼프를 만나 광명을 찾은 것이죠. (저와 가족의 사생활을 캐고, 강간, 살해 협박을 일삼던 분들이 자신의 후보를 열렬히 지지해 당선시키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역겨운 경험이었습니다.)

지난 선거 운동 기간 동안, 우리는 트럼프 지지가 반드시 인종주의, 외국인 혐오, 간강 문화 지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뻔한 거짓말이 반복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캠프의 슬로건이 미국을 “위대했던 시절”, 그러니까 유색 인종, 여성, LGBTQ 미국인들이 몇 안되는 보호 조항들을 자신의 피로 법전에 새겨넣기 전 바로 그 시절로 돌리자는 것이었음에도 말이죠. 이는 전례없는 규모의 가스라이팅이었습니다.

“대안 우파”라는 말이 반짝이는 신조어처럼 들리지만, 사실 트럼프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해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낡은 아이디어로 승리했죠. 정치적 올바름은 이런 낡은 아이디어가 위세를 떨치는 것을 가까스로 막아내기 위해 설정한 최소한의 기준선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삶이 백인 남성의 삶만큼 가치가 있고, 인종차별적인 행동은 곧 인종주의라는 외침,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겠다는 다짐이죠.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KKK단이 승리 축하 행진을 계획하고, 혐오 범죄는 9/11 테러 이후 최대치이며, 대통령 당선자를 성추행으로 고발한 여성들이 수두룩하죠.

이번주에 저는 스스로를 이성적 좌파로 칭하는 남성으로부터 트럼프의 승리는 적어도 부분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이 너무 멀리 갔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트위터에서는 이 모든게 “대립적인 운동 방식”의 결과물이라는 멘션을 받았습니다. 모든 일에는 반발이 따르기 마련이니 이번 기회에 배우라는 말도 들었죠.  마치 사회 정의 운동의 역사에서 우리가 공손하게 요구해서 무언가를 이룬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말이죠. 마치 최근 몇 년 사이에 인종차별도, 성차별도 없고 백인 남성들도 여전히 행복했던 완벽한 균형의 순간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탐욕스러운 페미니스트들이 만족할 줄을 모르고 무언가를 요구했다는 듯이 말입니다.

세상에 대립적이지 않은 사회 운동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맞서지 않는다는 것은 그냥 묵인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죠. 대립적이지 않은 운동은 운동이 아닙니다. 그냥 현상 유지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입니다. 바로 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트럼프의 혐오 발언과 성추행이 피어날 공간을 만들어준 겁니다.

정치적 올바름이 반발을 낳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원조 반발은 정치적 올바름입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것을 정치적 올바름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짐 크로우는 민권 운동 탓이고, 강간 문화는 페미니즘 탓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매맞는 아내에게 “네가 똑바로 행동했으면 내가 때릴 필요가 없었잖아”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거라고요. 이런 논리는 트럼프가 증오를 퍼트리고 다닐 때는 침묵하고 있다가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하고서야 깜짝 놀라 이 상황을 설명해보려는 사람들의 궁색한 변명입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고나니까 겁이 나세요? 갑자기 문제의식이 막 솟아오르나요? 환영합니다. 조금만 더 일찍 오시지 그랬나요.

트럼프는 무슬림 등록부를 만들고, 흑인 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하고, 멕시코 국경에는 장벽을 올리고, 동의없이 여성의 성기를 움켜쥐겠다는 사람입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구조적 억압을 모아모아 의인화시킨 것 같은 존재라고요.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래도 정치적 올바름이 너무 나갔다고 생각하세요? 이래도 우리가 과민반응하는 거라고 생각합니까?

반발을 사지 않을만한 선에서 현명하게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흑인 교회가 불타도, 유색 인종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한 살인 범죄가 치솟아도 어쩔 수 없으니 그냥 넘어가고, 실제 처벌받는 강간범이 3% 밖에 되지 않는 현실에서 길거리 성희롱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웃어줘야 하나요?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위협이 목전까지 다가오고 있는데 손을 놓고 있어야 합니까? 정치적 올바름은 우리에게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생존과 관련된 문제죠.

정치적 올바름을 외치는 활동가들을 뭣도 모르는 어린애 취급하며 비웃고 조롱하면서도 스스로를 선량한 진보주의자라고 여기는 분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서 이제 와서 트럼프 치하에서 공포를 느끼는 무슬림과 흑인, 강간 피해자와 이민자들에게 “너희가 너무 극성을 떨어서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고 손가락질하는 분들, 부끄러운줄 아세요. 지금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면서 앞으로 가장 덜 고통받을 사람들, 바로 당신들입니다.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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