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D-5, 흑인 유권자 사전 투표율 저조, 클린턴 긴장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 유권자들에게서 트럼프보다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두 차례 선거에서 받은 열광적이고 전폭적인 지지는 좀처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클린턴 후보가 선거 내내 고심해 온 문제였습니다. 선거를 닷새 앞두고 사전 투표 투표율이 공개되면서 클린턴 캠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흑인 유권자들의 사전 투표율이 줄어든 이유는 선거에 대한 관심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제도 변화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먼저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경우 연방 항소법원에서 흑인 투표율을 낮추려고 공화당이 조직적으로 선거를 방해하고 있다는 판결을 내린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는 사전 투표소 숫자 자체가 줄었고, 흑인들의 사전 투표율이 4년 전보다 16% 낮아졌습니다. 반면 백인들의 사전 투표율은 15% 높아졌습니다.
플로리다 주는 사전 투표를 주 선관위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는 주로 꼽히지만, 흑인들의 사전 투표율은 4년 전 같은 시점에서 25%에서 15%로 줄었습니다. 오하이오 주도 사전 투표소가 줄어들기도 했지만, 특히 민주당 지지가 많은 것으로 꼽히는 클리블랜드, 콜럼버스 등 대도시 주변에서 사전 투표율이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클린턴 후보 측은 흑인 유권자의 투표를 독려해 저조한 사전 투표율을 투표 당일 최대한 만회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여기에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기록한 흑인 득표율이 워낙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재현하기는 애당초 쉽지 않은 일이었다며, 히스패닉이나 대학 이상의 학위를 가진 여성 유권자 등 다른 계층을 공략해 이를 만회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난 두 차례 선거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승리를 분석하면서 인종이나 민족이 다양해진 미국의 인구 구조가 민주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고, 인구구조의 변화 추세가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 한동안 (적어도 대선에서는) 민주당에 유리한 구도가 이어지리라는 분석이 있었는데, 어쩌면 이번 선거 이후 기존의 분석 자체를 아예 새로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지난 두 차례 선거는 분명 흑인 유권자들이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 선거였죠. 여기에는 오바마 개인의 정치적 카리스마, 인기, 삶의 궤적 등이 분명 영향을 미쳤어요. 그렇다면 오바마 이후는 어떻게 될까요? 변화의 방향과 폭이 어느 정도일지는 사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어요.”
<백악관의 흑인 대통령>이란 책의 저자이자, 유권자들 가운데서도 특히 오바마 지지자들을 지난 8년간 꾸준히 분석해 온 민주당 여론조사 전문가 코넬 벨처의 말입니다.
클린턴이 단단한 지지기반으로 삼고자 하는 계층은 조금 다릅니다. 히스패닉 유권자들이나 특히 예년 선거였다면 공화당을 찍어도 그리 이상하지 않았을 교육수준 높은 백인 여성들이 특히 클린턴이 공을 들여온 집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흑인 유권자들 사이에서 오바마 때 같은 열광적인 지지가 부족하다고 이를 위기로 단정하는 것이 오히려 섣부르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뉴욕타임스가 만난 흑인 유권자들의 사례를 보면 클린턴이 오바마보다 아무래도 흑인에게 확신을 주지 못하는 후보인 만큼 일찌감치 사전 투표에 참여하기보다 시간을 좀 더 갖고 생각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트럼프라는 인물에 대한 두려움 혹은 적대감도 당연히 같은 흑인 유권자 사이에서도 지역과 세대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사전 투표율이 낮아질 만한 이유가 꽤 다양하다는 뜻입니다.
물론 트럼프는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층에게마저 외면당하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박빙인 주 몇 군데에서 트럼프가 승리하더라도 여전히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플로리다나 노스캐롤라이나 등 지난 8년간 흑인 유권자의 확실한 지지가 민주당의 승리로 이어졌던 곳에서 클린턴이 만약 트럼프에게 패한다면, 민주당은 이 지역과 흑인 유권자들을 향해 새로운 전략과 메시지를 준비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