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개미와 공작(The Ant and the Peacock)”
2016년 10월 11일  |  By:   |  과학  |  No Comment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가 1858년 2월 지롤로(오늘날 할마헤라라 불리는)의 몰루칸 제도에서 자신의 진화론을 만들고 있을 때, 그는 자신보다 20년 먼저 찰스 다윈이 같은 아이디어를 생각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논리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습니다. 두 사람은 다양한 생물 종이 처음 창조된 형태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 그리고 자연 선택이 진화와 생물체의 환경에 대한 적응을 잘 설명한다는 사실, 또 다윈이 “분화 원리(principle of divergence)”라 부른, 트리 구조의 진화라는 원리에 모두 도달했습니다.

월리스가 다윈에게 자신의 논문을 보냈을 때, 다윈은 자신의 멘토인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이렇게 놀라운 우연의 일치를 본 적이 없습니다. 월리스의 논문은 마치 1842년 내가 쓴 글을 읽고 정리한 것 같습니다. 그가 사용한 용어들은 내 책 각 장의 제목으로 적당할 정도입니다.”

두 사람의 생각이 매우 유사했고, 서로를 존중했으며, 1858년 린네 학회에 공동으로 논문을 발표했음에도, 월리스와 다윈은 중요한 세부적 사실들을 놓고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그들의 불일치와 뒤이은 이야기들이 헬레나 크로닌이 쓴 “개미와 공작(The Ant and the Peacock)”의 주요 내용입니다. 여기서 개미는 이타주의, 곧 왜 어떤 동물은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가 하는 문제를 상징하며, 공작은 성차(sex difference), 곧 왜 어떤 수컷은 불필요하게 화려한 장식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상징합니다. 런던 정경대의 철학자이자 옥스포드 대학의 동물학 연구자인 크로닌은 이 문제들에 대한 오늘날의 답을 이용해 당시의 다윈과 월리스의 주장을 돌아봅니다.

성차 문제란 어떤 문제일까요? 혹은 크로닌의 말처럼 “공작의 꽁지에는 어떤 침이 들어 있는 것일까요?” 현대 생물학자에게 이 문제는 꽁지의 비용에 대한 문제입니다. 꽁지는 눈에 잘 띄며, 이를 크게 키우는 데 큰 비용이 들 뿐만 아니라 하늘을 날기 어렵게 만듭니다. 따라서 자연 선택은 꽁지를 화려하게 만들지 않는 방향으로 작동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수컷 공작은 화려한 꼬리를 가지고 있을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답이 존재합니다. 크로닌은 다윈과 월리스의 의견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그 두 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다윈은 자연 선택으로는 공작의 꽁지를 설명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자연 선택은 인색한 회계사이며 철저하게 실리를 챙기기 때문에 오직 생존에 유리한 특성만을 선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자연 선택은 장식물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공작은 분명 장식품을 가진 새입니다. 이 때문에 다윈은 암컷의 선택, 곧 장식물에 대한 미적인 선호가 자연 선택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강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윈은 만약 공작의 암컷이 더 화려한 꽁지를 가진 공작을 선호한다면 화려한 꽁지는 이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넘는 이득을 수컷에게 안겨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논리는 사실 원래의 문제를 한 단계 전으로 돌린 것에 불과합니다. 즉, 왜 공작의 암컷은 효율적인 꽁지가 아닌 값비싼 꽁지를 가진 수컷을 선호하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이 남기 때문입니다.

월리스는 다윈이 문제라고 생각한 것, 곧 장식물의 문제를 문제라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암컷의 선택이라는 다윈의 주장 역시 부정했습니다. 크로닌은 월리스가 공작의 꽁지는 진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며 이를 설명하는 데 특별한 다른 논리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듯하다고 설명합니다. 월리스는 수컷의 밝은 꽁지보다 암컷 꽁지의 평범함이 더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연 선택이 둥지에 앉아있을 때 보호색이 될 수 있는 꽁지를 선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그는 자연 선택만으로 새가 성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것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다른 몇 가지 논쟁에서처럼 월리스는 다윈보다도 더 순수한 자연 선택 주의자였습니다. 그는 한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다윈보다 더 다윈주의자다.”

엄격한 다윈주의자인 월리스는 암컷의 선택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암컷이 미적으로 수컷을 차별하거나 선택하는 행동이 오래 지속하는 진화적 효과를 낳을 정도로 일관성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윈과 월리스의 시대에는 거의 모든 생물학자들이 암컷의 선택이 진화에 영향을 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월리스의 주장에 동의했습니다. 크로닌은 이런 암컷의 선택에 대한 비판을 “여성 혐오적 의견”이라 부르며 재미있어합니다. 19세기 반(反)다윈주의자인 세인트 조지 미바트는 이런 무식한 말을 남겼습니다. “여성의 악질적인 변덕은 매우 불안정하므로 여성의 선택으로 색깔이 바뀐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늘날의 생물학과 학생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월리스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암컷의 선택은 과학자들이 조사한 거의 모든 종에서 나타나며, 매우 강력한 진화의 힘입니다. 하지만 다윈과 월리스가 그들의 첫 번째 공동 논문에서부터 드러낸 차이는 이 시대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떤 생물학자들은 다윈처럼 성 선택과 같은 자연 선택 외의 다른 힘이 작용한다고 생각하며, 다른 생물학자들은 월리스처럼 자연 선택만이 작동한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왜 수컷이 아름다운지 설명하려 한다고 해봅시다. 현대의 월리스주의자들은 암컷이 특정 수컷을 더 선호하며 이것이 진화에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암컷의 선택이 미적 기호가 아니라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공작의 암컷이 화려한 꽁지를 가진 수컷을 고르는 이유는 그 꽁지가 다른 유용한 특성을 나타내는 신호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의 다윈주의자들은 암컷이 그저 미적인 이유로, 곧 그저 아름다운 수컷을 선호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아직 논쟁 중이며 해결되지 않은 문제입니다.

흥미롭게도, 다윈과 월리스는 크로닌이 개미 문제라 부른, 이타주의적 행동을 설명할 때는 성차 문제에서 서로의 태도를 바꾸어 다시 대립했습니다. 다윈은 더 다윈주의에 가까운 주장을 펼쳤고, 월리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타주의 문제란 크로닌의 표현을 빌리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자연 선택은 지나치게 요구하며, 혹독하며, 가혹하며 … 약함을 참지 못하고, 고통에 무관심하므로 … 이런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생명체는 … 끊임없이 투쟁하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다른 이들을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동물은 “놀라울 정도로 이타적이며 … 신사적으로 행동할 뿐 아니라 …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성실하게 일하며, 숭고한 정신과 관대한 행동”을 보입니다. 개미는 크로닌의 표현으로 “성자와 같은 자기희생”을 상징합니다.

오늘날 생물학자들은 “유전자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이 문제의 답이 “근사하게 풀린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는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싸운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같은 유전자를 공유한 개체들은 서로를 위해 희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두 개체가 가까운 친척 관계가 아니라 하더라도 훗날의 보상, 곧 “선한 행동의 대가로 다시 선한 행동으로 보상받을 때” 다른 개체를 위해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윈과 월리스는 이타주의를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다윈은 인간 사회의 도덕이 “손이나 눈과 같이 적응, 곧 자연 선택을 통해 설명되어야 한다”고 믿었으며, 동물이 가진 도덕적 행동을 예로 들었습니다. 반면 월리스는 인간의 도덕은 자연 선택으로 절대 만들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크로닌은 월리스의 말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우리는 진화를 통해서는 만들어질 수 없는, 반드시 다른 기원을 가지는 지적, 도덕적 특성이 있다. 여기서 다른 기원은 바로 보이지 않는 우주의 영혼이다.”

“개미와 공작(The Ant and the Peacock)”이 가진 독창적 관점은 다윈의 진화론과 현대 진화론의 차이입니다. 크로닌은 빅토리아 시대와 현대를 쉽게 오갑니다. 그러나 이런 접근에는 아나크로니즘, 곧 과거의 저자에게서 현대의 생각을 읽으려 하는 역사학자들의 도덕적 원죄가 존재할 수 있으며 크로닌은 이를 굳이 피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개미와 공작”이 역사학자보다는 철학적 정신을 가진 독자에게 더 호소력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행인 점은 진화론은 과학 이론 중에는 매우 철학적인 주제이며, 월리스와 다윈은 과거의 학자 중 드물게 현대인으로 다루어질 수 있는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빅토리아 시대의 학자에게는 인류와 진화생물학이 21세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인간의 기원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줄 무언가가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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