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죽은 백인 남성들의 사회, 달라져야 합니다
2016년 7월 26일  |  By:   |  세계, 칼럼  |  No Comment

특정 매체를 통해 대학 캠퍼스의 모습을 접하는 기성세대들은 요즘 충격받을 일이 많습니다. 논란이 된 초청 연사가 보이콧을 당하는가 하면, 학생들이 의도적으로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수업을 피한다고도 하고, 심지어는 죽은 백인 남성 작가의 시를 읽지 않는 학생들마저 있다고 하니까요.

세상에는 수많은 대학생들이 있는만큼, 성급한 일반화는 금물입니다. 저 역시도 아직까지 죽은 백인 남성이 쓴 책을 읽지 않겠다고 선언한 학생을 수업 중에 만나보지는 못했죠.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인지 사망한 사람인지를 떠나, 백인 남성의 책만으로 공부하지 않겠다는 학생들의 목소리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강의계획서 참고 도서 목록에 남성 저자가 압도적인 비율로 등장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니까요. 여성 교수도 이러한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없애기 위해서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이유죠.

어떠한 분야의 대가로 이름을 올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왜 누구는 들어가고, 누구는 탈락하는 것일까요?

제가 이야기할 수 있는 분야는 제 전공인 정치철학 뿐입니다. 다양성이 반드시 필요하고 소수 의견, 혁명적인 관점을 다루어야 하는 영역입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강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정해져있습니다. 토마스 홉스, 존 로크, 장-자크 루소, 존 스튜어트 밀, 칼 맑스 – 모두 백인이고, 모두 남성이며, 전원이 유럽 출신이죠.

이 목록이 매우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것으로 인식되지만, 사실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홉스는 “법의 정신”을 집필한 후 파리로 도피했다가 10년이 지나서야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죠. 로크는”정부에 관한 두 논고”를 익명으로 발표했습니다. 정부의 정통성이 민중의 뜻에 달려있다는 혁명적인 주장이 담겨있었기 때문이죠. 루소는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주었고, 밀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전통적인 도덕성을 공격했습니다. 맑스의 급진성은 설명이 필요없는 부분이죠. 이렇게 학계는 과거의 혁명가들에게 한없이 너그러운 태도를 보입니다.

하지만 정치적 문제에 대해 글을 남긴 수천 명 가운데 이들이 선택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가라면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줄 수 있어야 하고, 분석이 새롭고 독창적이어야하며, 설득력도 있어야 합니다. 정치철학의 주요 저서들은 저서가 쓰여진 시대를 초월해 현대에도 적용할 수 있는 통찰을 명확히 담고 있어야 합니다. 강의실에서 가르칠만한 책이라면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고, 학생들 스스로의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이어야만 하죠. 그리고 한 시간 수업에서 핵심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소가 추가되면서, 후보군은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니 대학 강의에서 다루어지는 대가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중요한 인물을 빠짐없이 다루고 있는 것일까요? 여성이나 소수 집단과 같이 당시에 주류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우리가 경시하고 있는 목소리는 없을까요? 이렇게 묻힌 목소리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절판된 책, 문서 목록, 서한, 연설문과 재판 기록 등 다양한 소스들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1700년, 영국의 법학자인 메리 아스텔은 “모든 인간(men)이 자유롭게 태어났는데, 왜 모든 여성(women)은 노예로 태어났는가?”라고 적은 바 있습니다. 200년 후 미국의 사상가 W.E.B. 뒤부아는 “20세기의 문제란 피부색 경계의 문제”라고 주장한 바 있죠. 이런 인물들은 최근에야 대학 강의실에서 소개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강의계획서에 매년 포함되는 고전의 반열에 오를지, 또 다른 누가 대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계기를 만들어준 학생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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