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페미니스트들이 판사를 소환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2016년 6월 15일  |  By:   |  세계, 칼럼  |  No Comment

최근 캘리포니아에서는 성폭행 혐의로 재판을 받은 스탠포드대 소속 수영선수에게 고작 6개월 형을 선고한 애론 퍼스키(Aaron Persky) 판사를 주민소환에 붙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주민소환 성패보다도 더 큰 문제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과연 강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질지 여부입니다. 과거에도 미국에서는 성범죄 판결과 관련해서 판사 소환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성범죄에 대한 사회 인식이 한 걸음씩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브록 터너 사건에서 판사는 검사가 구형한 6년 형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벼운 형을 선고해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판사는 터너와 피해자 모두 술에 취한 상태였다고 지적하면서 징역형이 터너의 인생에 가져올 “가혹한 영향”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만일 버즈피드가 피해자의 절절한 고통이 담긴 법정 진술을 공개하지 않았다면 이번 사건도 가해자가 가벼운 처벌을 받고 넘어간 흔하디흔한 사건의 하나로 묻혔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판사 소환 청원은 웹사이트 Change.org에서 사흘 만에 50만 명의 서명을 받아냈고, 이제는 스탠포드 로스쿨 교수가 이 과정을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사실 캘리포니아에서는 1913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1911년, 진보시대의 열풍 속에서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은 주민들이 판사를 소환할 수 있는 제도와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는 법안을 통과시킵니다. 그리고 2년 만에 여성 유권자들은 법관 찰스 웰러(Charles Weller)를 소환하는 저력을 발휘합니다.

대부분의 판사와 마찬가지로, 웰러 판사도 당시 성폭력 사건에 대해 보석금 500달러 정도를 책정하곤 했습니다. 이 금액은 많은 가해자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보석금을 내고 그냥 달아나는 사람도 많았죠. 웰러 판사는 절차적인 문제로 강간 사건을 기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강간으로 임신한 15세 소녀가 아이를 낳느라 법정에 출석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은 적도 있었죠. 하지만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기 전까지 이런 관행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17세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붙잡힌 앨버트 헨드릭스라는 남성이 웰러 판사가 3,000달러에서 1,000달러로 깎아준 보석금을 내고 잠적해버리자, 샌프란시스코의 여성 단체는 행동에 나섰습니다. 이 단체는 캠페인을 통해 의제 강간 연령을 18세 이하까지로 높이는 데 성공한 전력을 보유한 단체였습니다. 이 단체는 웰러 판사가 “끔찍하고 악의적인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부적절하고 비이성적인 관용을 베풀었다.”며 즉시 주민소환 운동에 나섰고, 결국 유권자들의 호응을 끌어냈습니다.

그러나 웰러 판사의 소환으로 캘리포니아 법원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판사들은 여전히 백인 남성 가해자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고, 반면 흑인 남성들은 가혹한 처벌을 받는 관행이 이어졌습니다. 1960년 페미니즘 부활의 시기에 와서야 또 한 명의 판사가 강간 사건과 관련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위스콘신주 매디슨시의 아치 시먼슨(Archie Simonson) 판사는 학교에서 여학생을 집단 강간한 15세 소년에게 1년간 자택 지도형을 선고했습니다. 문제는 형량보다도 시먼슨 판사의 발언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남학생들이 노출이 있는 옷을 입은 여학생들에게 “정상적으로” 반응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여성 검사가 성차별적인 발언이라 지적하자 “맞습니다. 나는 저들이 젖을 드러내고 다니듯 내 성기를 드러내고 다닐 수 없지 않소.”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지역 여성 단체는 즉시 회의를 열며 행동에 나섰습니다. 마침 공연차 매디슨을 방문 중이던 페미니스트 싱어송라이터 맬비나 레이놀즈가 “판사님은 말했네”라는 노래를 써서 불렀습니다. 판사의 발언을 물고 늘어진 이들은 결국 주민소환을 성사시켰고, 여성 판사가 그 자리를 채우게 되었습니다.

이런 운명을 맞이했던 판사들은 공통으로 피해자보다 가해자에게 공감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퍼스키 판사 역시 알코올 섭취를 구실 삼아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렸을 뿐 아니라, 터무니없이 가벼운 벌을 내림으로써 백인이 아닌 성폭행범들과의 형평성 논란에 스스로 불을 붙였습니다.

대부분의 법조계 종사자들은 판사 주민소환제가 판사의 재량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보입니다. 그러나 퍼스키 판사의 운명보다 중요한 것이 그의 판결이 불러온 반응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촉발된 사태는 앞의 두 사건처럼 강간 사건 인식에 새로운 틀을 마련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법 앞의 평등, 그리고 성범죄가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력에 대해서만은 지속해서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것입니다. (뉴욕타임스)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