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펀딩] 대기근의 시대는 끝난 걸까요?
2016년 6월 7일  |  By:   |  세계  |  No Comment

* 스토리펀딩 1화에 올린 연재 후보 가운데 터프츠대학교 세계평화재단의 알렉스 데왈 이사장이 쓴 글을 옮겼습니다.

지난 30년간 발생했던 가뭄 중 최악의 가뭄이 닥친 에티오피아에는 지금 전 국민의 5분의 1인 2천만 명에 가까운 이들이 식량 부족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의 사망률이 올라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즉, 에티오피아인들이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기근과 인도주의적 구제 문제를 30년 이상 연구해 온 나도 지난달 에티오피아를 방문했을 때 내가 본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에티오피아 북부 지역과 중부 지역을 여행하는 동안 나는 중국인들이 건설한 새 철길과 새로 들어온 외제 트럭들이 가장 작고 외진 마을에까지 수입한 밀을 실어나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물이 마른 곳에는 식수가 배달되었습니다. 영양부족인 아이들은 의료진이 대기 중인 진료소에서 치료받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1984년 기근과 비교해 봅시다. 당시에도 적어도 6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으며, 경제 규모는 거의 14% 감소했습니다. “에티오피아”라는 나라 이름을 들었을 때 멍한 눈빛으로 링거를 맞고 있는 아이를 연상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어떻게 에티오피아는 집단 굶주림의 전 세계적 상징에서 더 이상 사람들이 굶어 죽지 않는 나라로 바뀔 수 있었을까요? 운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운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평화, 그리고 투명하고 신중한 정치입니다. 에티오피아의 이런 성공은 바로 기근이 인간에 의한 것이며, 또한 정치적 억압의 도구이자 부산물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1984년, 내전 중의 에티오피아에 가뭄이 들었을 때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이 이끄는 군부는 티그레이 북부와 에리트레아 주변을 장악한 반란군과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식량이 부족해지자 멩기스투 정권은 교역을 차단하고 시장에 폭격을 가했으며 반란군의 점령지로 가는 긴급 구호물자를 막았습니다.

이들의 고통이 알려지자 서구에서 많은 양의 원조 물품이 도착했습니다. 당시 팝가수들이 이끈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콘서트도 기여를 했습니다. 그러나 콘서트를 처음 시작했던 음악가 밥 겔도프는 이 모든 구호품이 그저 반창고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내전이 에티오피아의 지역 경제를 파괴했고, 구호 식량은 시민들이 아닌 군인들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입니다.

1987년 에티오피아가 기근에서 회복될 무렵, 나는 다른 연구원들과 함께 영국의 자선단체인 옥스팜의 도움으로 지역 농산물시장 연구를 위해 티그레이를 방문했습니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단순했습니다. 농부가 농산물을 가지고 거래를 할 수만 있다면, 즉 도로가 군대로부터 안전해지고, 폭격의 위험이 있는 낮을 피해 밤에 시장이 열린다면, 그 지역의 경제는 충분히 효율적으로 작동하리라는 것입니다. 시장이 활성화되면 지역 농산물의 소출은 증가할 것이고, 식량 가격은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내려갈 것입니다.

즉, 기근을 끝내려면 내전을 먼저 끝내야만 했습니다.

멩기스투 정권은 1991년 무너졌습니다. 멜레스 제나위 수상이 이끄는 새로운 정부 아래에서 과거의 게릴라들은 경제 성장을 지지하는 이들로 바뀌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한 세대 만에 처음으로 내전 없는 평화를 누렸습니다. 때로 가뭄이 들기도 했지만, 단 한 번의 예외를 빼고 더 이상 기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1999년 에티오피아 남동 지역에서 발생한 기근으로 2만9천 명이 아사했습니다. 위기가 재해로 바뀐 이유는 당시 정권이 에리트레아 지역의 북쪽 경계를 따라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외국의 원조 기관들은 자신들이 보낸 구호 식량이 군사용으로 쓰일까 두려워 충분한 구호 식품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002년의 큰 가뭄은 에티오피아 전체에 식량 부족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가뭄의 피해를 본 북부의 월로, 동부의 하라르게, 그리고 남부의 시다마와 월라이타를 유니세프와 함께 방문했을 때 우리는 열악한 상황을 대변하는 천막 구호소를 보지 못했습니다. 정부와 국제기구의 노력으로 대다수 마을에는 구호품이 직접 전달되고 있었고, 사람들은 집에서 식량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몇몇 이들은 기아에 시달렸고 최악에는 굶어 죽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 숫자는 과거와 비할 바가 못 되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아동 생존율을 조사했고, 몇몇 아사 지역을 제외하고는 그 값이 가뭄이 들지 않은 해보다 높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2015년, 엘니뇨는 지난 수십 년 사이 최악의 가뭄을 몰고 왔지만, 에티오피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잘 대처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정부는 먹을 것이 떨어진 가정을 돕는 다양한 형태의 식량 및 보조금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 가뭄은 저수지를 복원하고 숲을 가꾸고 길을 내고 진료소를 짓는 등 이들이 지금까지 가뭄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기울인 노력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특히 시골 지역에 미친 효과를 똑똑히 보여줬습니다.

정부는 또한 비상금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경제장관 압둘라지즈 모함메드는 석유를 수입해야 하는 에티오피아가 유가 상승을 대비해 거의 10억 달러에 가까운 돈을 중앙은행이 따로 준비해놓고 있었다고 내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유가는 하락했고, 정부는 가뭄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약 3억 달러를 비상용 구제에 사용했으며, 곧 더 많은 자금을 사용할 예정입니다.

물론 경제는 영향을 받았습니다. 가축들이 갈증으로 죽었고 양과 소를 길러 생계를 유지하던 이들에게 위기가 닥쳤습니다. 국제통화기금은 2015~2016년 에티오피아의 GDP가 8.5% 하락하리라 예측했으며, 이는 2014년과 비교하면 10% 이상 하락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8.5%라는 심각한 숫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죽지 않고 있습니다.

몇몇 위험요소가 남아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조기경보 시스템은 소도시가 아니라 농촌 지역의 가뭄을 대비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화와 지역 이주 등 경제발전으로 인한 변화에 정부의 예방 및 구제 프로그램이 미처 적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적어도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지가 있다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국민 가뭄보험을 만들기 위해 세계은행과 가진 회담에서 모함메드 장관은 가뭄이 다시 발생하리라는 것은 매우 확실한 사실이며, 마침 사용할 수 있는 비상용 유가대비자금이 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상황을 현명하게 파악하고 있는 겁니다.

에티오피아의 예로부터 우리는 일정 수준 이상 발전한 국가에서 기근이 발생하지 않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평화와 정치적 자유, 그리고 정부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기근으로 사망한 예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계평화재단을 통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1870년부터 1980년 사이에 약 1억 1천5백만 명이 기아로 사망했으며, 이들 중 90% 가까운 수는 제국주의 정복 전쟁과 세계대전, 그리고 전체주의 정권하에서의 억압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주요 국가 사이의 분쟁이 사라졌고 최소한 어떤 정도의 민주주의가 세계 각국에 퍼지면서 굶주림 역시 감소했습니다.

자, 정말 대기근의 시대는 완전히 끝난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다고 일단 이야기합시다. 기근은 인구 과밀이나, 에티오피아의 경우에서 보듯이 가뭄이 난다고 반드시 닥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정치 때문에 기근이 발생하며, 그러므로 기근을 막을 수 있는 열쇠도 바로 정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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