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디크 칸과 도널드 트럼프
2016년 5월 13일  |  By:   |  세계, 칼럼  |  No Comment

* 뉴욕타임스 국제 뉴스 기자 출신이자 기명 칼럼니스트인 로저 코헨(Roger Cohen)이 쓴 글입니다.

이번 주 세상에서 일어난 일 가운데 정치적으로 제일 중요한 사건을 꼽으라면 무얼 꼽으시겠습니까? 도널드 트럼프가 사실상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된 걸 말하는 분이 제법 많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보다 런던에서 버스 기사로 일하는 아버지 밑에서 나고 자란 최초의 무슬림 런던 시장 사디크 칸의 당선이 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트럼프 돌풍이 대단하다고 해도 그는 아직 공식적인 지위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반면 노동당 출신의 칸은 보수당 후보 잭 골드스미스를 여유 있게 누르고 런던 시장으로 당선됐습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대도시이자 전 세계에서 수많은 이들이 모여들어 사는 그 런던 말입니다. 칸의 승리는 그의 종교만 갖고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그를 비유하던 몰지각을 무너뜨린 쾌거이자 고립보다는 개방을, 대결보다는 통합의 가치가 거둔 승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인종차별주의와 여성 혐오에 맞서 기회를 나누려는 노력의 결실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사디크 칸은 도널드 트럼프의 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선거 전에 칸은 스티븐 캐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런던 시민입니다. 유럽인이기도 하고요, 영국인, 좀 더 정확히는 잉글랜드 사람이기도 하죠. 이슬람교를 믿습니다. 혈통은 아시아에서도 파키스탄계에 속하죠. 집에서는 아빠이자 남편이고요.”

우리가 사는 21세기에는 이처럼 다양한 정체성을 동시에 갖춘 이들의 공존과 통합을 뒷받침하는 도시들이 주축이 될 것입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대신 나와 다른 이들을 괴롭히고, 그들의 삶의 방식이 틀렸다고 손가락질하고 혐오하며 그들이 우리와 섞이지 않도록 벽을 쌓겠다는 “미국 제일주의자”의 사고방식은 21세기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미국인이 아닌 무슬림은 누구든 미국에 입국을 막겠다고 했던 트럼프의 주장대로라면 새로 선출된 런던 시장이 종교 때문에 미국을 방문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트럼프 표현을 빌려 말하면 그런 상황은 한마디로 “완전한 재앙”이 될 겁니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특히 인기가 없는 트럼프가 미국 전체를 세상의 비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고 말 겁니다.

칸의 당선은 유럽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손아귀에 넘어갈 날이 머지않았다고 쉽게 비유하는 이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유럽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사회에 녹아들어 제 몫을 다 하는 무슬림들의 성공담이 모처럼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 덧씌워진 요란한 편견을 잠재운 순간이니까요. 파키스탄 이민자 가정의 7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난 칸은 공공 임대주택에서 자라 인권변호사가 되고 장관직에도 올랐습니다. 그는 이번 시장 선거에서 130만 표를 득표했는데, 이는 (대통령이 없는 내각제 국가인) 영국에서 정치인 한 명이 단일 선거에서 받은 가장 많은 표이기도 합니다. 시민들의 직접적인 선택을 받은 표로만 따지면 총리보다도 더 많이 표를 받은 겁니다.

칸의 당선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이슬람 테러리스트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무기가 바로 다른 무슬림들의 적극적인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칸은 이미 그 점을 잘 알고 있고, 이미 여러 차례 테러리즘을 비난하며 행동에 나섰습니다. 지난해 파리 테러 이후 그는 무슬림이 테러를 막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칸은 무슬림이 테러와 싸워야 하는 이유로 테러범이 무슬림이니 무슬림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 대신 테러를 효과적으로 막는 데 같은 무슬림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에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칸 당선자는 영국 내 유대인 단체에도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특히 최근 노동당 내에서 반유대주의가 빠르게 퍼지고 있고, 런던 시장을 역임했던 켄 리빙스턴이 지난달 히틀러가 시온주의를 지지했다는 발언으로 당에서 제명되는 사태를 겪은 점을 고려하면 소신 있는 행보입니다.

조지 이튼은 <뉴스테이츠맨>에 이렇게 썼습니다.

“칸은 곧 세계적인 다양성과 통합의 상징이 될 것이다. 그의 당선은 도널드 트럼프부터 결국 다른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는 없다고 말한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극단주의와 차별에 대한 강력한 반격이다.”

트럼프는 결국 미국인의 두려움과 분노가 만들어 낸 정치인입니다. 최근 UC 버클리 대학생이 비행기에서 아랍어로 통화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비행기에서 쫓겨났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이탈리아 출신의 경제학자는 국내선 비행기 좌석에 앉아 수학 문제를 풀다가 수상한 행동을 한다는 옆자리 승객의 신고로 비행기에서 내려야 했습니다.

정치학자 놈 오른스타인은 트럼프가 “스스로 무척 불안정하며 그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미국인들의 무지에서 오는 불안함과 공포를 끊임없이 조장하며 정치적인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미국의 이익을 가장 앞세우는 정책 기조는 의심 없이 트럼프 정권의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라고 할 때마다 전 세계 다른 나라는 분노로 가득한 최강대국이 세상을 어떻게 망쳐놓을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사디크 칸의 당선은 9.11 테러 이후 계속 명맥을 이어온 불안함과 공포에 대한 승리이기도 합니다. 그의 승리는 오사마 빈 라덴과 IS, 성전을 강요하는 모든 종류의 극단주의에 대한 승리이자, 무슬림이 곧 테러분자라는 억지 논리를 퍼뜨리며 증오와 분열을 부추기는 트럼프 같은 선동 정치에 경종을 울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칸은 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영국에서 자라는 무슬림 어린이 가운데 자신과 배경이 다른 친구를 아예 사귀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지그문드 프로이트는 이렇게 썼습니다.

“인간의 문명이라는 건 본능의 억제가 있었기에 건설됐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는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내 안의 자아와 대화하고 직감에 귀 기울이는 법을 터득했다. 내 최고의 상담사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자신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죠.

“우리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좀 더 예측 불가능해져야 합니다.”

결국, 트럼프라는 인물의 특징을 한데 모아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높디높은 자존감, 남을 깔보는 거만한 태도, 대중을 사로잡는 엄청난 영향력과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예측 불가능성. 트럼프는 인류가 다져온 문명의 기반을 갉아먹을 인물입니다. 그 작은 손으로 핵무기에 버금가는 위험한 무언가를 인류에게 쏘는 것이나 다름없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디크 칸의 당선은 또한 인류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와 맞닿아있기도 합니다. 세계시민주의와 더 넓고 깊은 통합이 파벌과 분열, 갈등보다 우월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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