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카드”를 써보세요! 다양한 혜택이 따라옵니다
2016년 5월 4일  |  By:   |  세계, 칼럼  |  1 comment

“솔직히 말해 힐러리 클린턴이 남자였다면 5%도 득표하지 못했을 것이다. 클린턴이 가진 것은 ‘여성 카드’ 뿐이다.” 경선에서 승승장구 중인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주에 한 말입니다.

“여성 카드”란 말, 왜 안 나오나 했네요.

저도 이 “여성 카드”라는 것을 수 년째 소지하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카드예요. 이 카드를 지니고 있으면 일단 어딜 가든 월급이 기본 21% 줄어들죠. 어떤 논문을 참고하느냐, 어떤 종류의 여성 카드를 소지하느냐에 따라 최소 9%에서 최대 37%까지 깎일 수도 있답니다! 이 카드를 들고 장을 보러 가면 남성에 비해 11% 높은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어요. “분홍세”*라는 귀여운 이름 아래 말이죠.

여성 카드를 TV에 장착하면, 내 얼굴이 어디가 어떻게 잘못 되었는지, 쭈그렁 노파가 되지 않으려면 뭘 발라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광고들이 쏟아집니다. 카드 소지자는 또한 특정 부위에 풍성하고 긴 털을 길러야 하지만, 나머지 부위는 철저히 제모하면서 평생을 보내야 합니다. (부위를 혼동하면 큰일나요!)

“남성 카드”와 달리 여성 카드는 세월이 간다고 가치가 높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치가 떨어지죠. 그러니까 여성 카드를 수집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입니다. 포장도 뜯지 않고 처음 받았던 상태 그대로 보관해도, 세월이 지나면 무가치해지니까요.

그 뿐이 아닙니다. 여성 카드를 사용해 다른 여성에게 상처를 줬다가는 “지옥의 특별한 자리”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하게 됩니다.**

할인만 받는 카드라고 생각하셨다면 착각입니다.

이 카드를 들고 지하철을 탔는데 헤드폰을 깜빡했다면, 모르는 남성과 무료로 기나긴 일대일 대화를 나누거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찬스를 얻게 됩니다. “저 남자친구 있어요 카드”를 내밀기 전까지는 벗어날 수 없을 거예요.

여성 카드를 들고 병원에 가면, 당신이 살고 있는 주 의회의 의원들이 어떤 결정을 했는가에 따라 생식권을 제한당할 수도 있습니다. 남들이 당신의 몸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상황에 단단히 대비하세요!

여성 카드는 그 자체로 피임 수단이 될 수 없지만 (토드 앳킨스 의원의 말은 사실무근입니다***) 피임 관련 지원은 받을 수 없습니다.

여성 카드를 가지고 도서관에 가면 파스텔톤의 손글씨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책을 빌릴 수 있어요. 게이 탈레스가 우습게 여기는**** 바로 그런 책들이죠.

파티에서 방금 만난 남자에게 여성 카드를 내밀어 보세요. 그가 당신이 박사 논문을 썼던 주제에 대해 친절하게 가르치려 들거예요.

레드 카펫에서는 또 어떻구요. 카드를 내미는 순간, 영화에 대한 내용있는 질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오늘 입고온 드레스에 대한 질문들만 마구 쏟아질겁니다.

여성 카드를 소지하고 선거에 출마하는 것도 아주 신나는 일입니다. 당신의 여성 지지자들이 동성이라는 이유로 당신을 지지한다고 욕을 먹을테니까요. 그런게 아니라고 말해봤자 소용없어요!

출근길에 여성 카드를 꺼내어 자랑해보세요. 생판 모르는 남으로부터 좀 웃고 다니라는 설교를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과학계에서 여성 카드를 꺼내 들었다가는 그 바닥을 떠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디가 됐든 여성 카드를 꺼내보이면, 당신의 시간과 공간을 자신의 것인양 침범하는 남성들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해서는 안 돼요. 여성 카드에 그런 혜택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는 혜택, 인터넷 상에서 공격받지 않는 혜택도 포함 사항이 아닙니다. 그런 일은 카드 없이 해결해야 하죠. 참, 여성 카드를 쓰면 공중 화장실에서도 더 오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해요. 아무나 원한다고 이 카드를 발급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끔은 이 카드를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가 문을 열어주는 친절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이 카드를 갱신하고 싶은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물론 이 카드의 할인 혜택과 무료 체험 혜택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여성 카드를 지닌 사람은 원하든 원치 않든 사방으로부터 끊임없는 평가와 지적질을 당하게 됩니다. 말로 맞서 보실래요? 추천하고 싶은 대처법은 아니지만요.

여성 카드로는 여러가지 카드 게임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상사에게 월급을 올려달라고 하면 “딴데 가서 알아봐(Go Fish) 게임”을 할 수 있구요, “모든 걸 다 갖기 게임(단, 여성 카드로는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미안해요 게임(회의 한 번 하는 동안 어떤 카드 소지자가 미안하다는 말을 더 많이 하는지 경쟁해보세요!)”, “아빠는 깨우지마 게임(원래 자녀 양육은 여성 카드 소지자의 몫이라는 거 잘 아시죠?)”, 스터드 포커의 여성 버전인 “헤픈 년 포커” 등 끝이 없어요.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웬 모르는 남자가 저에게 다가와서 어쩜 그렇게 타자를 빨리 치는지를 물어 봤답니다. 질문에 대답을 해줬더니 계속해서 후속 질문들을 던지더군요. 제가 바쁘게 일하는 중인 건 안중에도 없었죠.

여성 카드의 가장 놀라운 점은, 남자들이 이 카드를 무슨 대단한 비장의 무기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장의 카드라뇨. 이 카드에 어떤 혜택이 딸려오는지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죠. (워싱턴포스트)

원문보기

 

<역주>

*”분홍세(Pink Tax)”란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여성이 추가적으로 부담하는 금액을 일컫는다. 드라이클리닝, 개인 위생 용품, 자동차 수리 등이 대표적인 경우.

**올초,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면서 “다른 여성을 돕지 않는 여성을 위해 지옥의 특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2001년부터 2013년까지 공화당 소속 미주리 주 하원의원을 지낸 토드 앳킨스는 여성이 “진짜 강간”을 당한 경우에 임신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문학 저널리즘의 대가로 평가받는 작가 게이 탈레스는 이달 초 한 대학 강연에서 자신에게 영감을 준 여성 작가가 단 한 명도 없으며, 교육 수준이 높고 글을 쓰는 여성들은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