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총선 패배 박근혜 대통령, 적극적인 대외 행보 나설 수도”
2016년 4월 22일  |  By:   |  한국  |  No Comment

옮긴이: <뉴욕타임스>가 총선 다음날 “한국 유권자들에게 퇴짜 맞은 박근혜 대통령, 적극적인 대외 행보로 돌파구 찾을 수도(After South Korea Spurns Park Geun-hye, She May Press Agenda Abroad)”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임기가 채 2년이 남지 않은 박 대통령이 입지가 좁아진 상황에서 조기 레임덕을 막기 위해 대외 정책에 주력할 수도 있으며, 대북정책은 크게 변하지 않을 거라고 전망했습니다. 아래 기사 전문 번역을 싣습니다. 해당 번역의 요약본은 한겨레21의 “<뉴욕타임스>로 보는 세계” 코너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에서 의석을 더 늘리리라 희망했다. 박 대통령이 오랫동안 추진해 온 노동법 개정을 비롯한 주요 현안을 처리하는 데 더 많은 의석보다 힘이 되는 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새누리당은 과반은커녕 원내 제1당 지위마저 빼앗겼다. 임기가 2년도 채 남지 않은 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쿠바나 이란에서 외교적 성과를 내는 데 집중했던 것처럼 국내 현안보다 국제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이며 적극적인 대외 행보에 나설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식의 대외 행보가 될지, 특히 최근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등을 통해 핵무기 성능을 과시해 온 북한에 취해 온 적대적인 태도는 바뀔 여지가 있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아마도 이른 레임덕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제무대에서 박 대통령이 스스로 돋보이게 하려 애를 쓸 겁니다.” 이명박 정권에서 외교부 차관을 지냈던 고려대학교 김성한 교수는 말했다. “이란 핵 협상,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등 굵직굵직한 외교 과제나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 문제 등에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말에 힘을 쏟으면서 레임덕을 막았던 사례를 참고할지도 모르죠.”

선거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속한 보수 여당 새누리당이 이렇게 많은 의석을 잃을 것으로 예상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전체 의석 300석 가운데 122석을 얻은 새누리당은 123석을 얻은 야당 더불어민주당에 오히려 한 석 뒤져 원내 제2당 신세가 됐다. 새누리당보다는 진보적인 성향으로 분류되는 더불어민주당은 북한과 화해, 협력을 주장하며 박 대통령은 북한을 제재나 응징의 대상으로만 여기며 완고한 대북정책을 편다고 비판해 왔다.

저성장과 청년 실업률 등 경제 문제도 선거의 주요 이슈 가운데 하나였다. 경제를 풀어내지 못하는 여당에 대한 불만에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 대한 불만이 더불어 표출됐다. 많은 유권자가 박 대통령을 소통이 부족하고 심지어 오만한 지도자로 생각한다.

국내 정책에 비하면 대외 정책은 유권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또한, 한국 정치 제도에서 북한과의 관계를 비롯한 대외 정책을 진두지휘하는 건 의회보다는 대통령이다. 그럼에도 이번 총선 결과 16년 만에 탄생한 여소야대 의회에서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어느 정도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38석으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제3당 국민의 당도 대북정책에서는 대결보다는 유화책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세종연구소의 정성장 연구원도 박 대통령이 기존의 대북 정책을 그대로 추진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가 대북 제재에만 초점을 맞춰 온 대북 정책을 수정하지 않고는 야당의 협조를 받아내기가 무척 어려워질 겁니다.”

박 대통령과 여당의 입지가 약화되면서 현재 당면한 외교 현안을 해결하는 정부의 부담도 가중됐다. 대표적으로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와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인 사드(THAAD) 배치를 논의해 왔는데, 다수당이 된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에서는 중국과의 긴장이 높아질 거라며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있다.

청와대는 총선 다음날까지 선거에 대한 별다른 논평 없이 그저 “20대 국회가 민생을 챙기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짧은 성명만을 남겼다.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번 총선 결과가 지난해 말 한일 양국 사이에 타결된 일본강점기 위안부 여성 협정에 영향을 주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협상은 한국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높았고,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롯해 협상을 무효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수세에 몰리더라도 지난해 말 협정을 어기지는 않으리라고 내다봤다.

대북 정책은 조금 다르다. 김성한 교수는 박 대통령이 징벌적 제재가 아니라 대화에 무게를 더 싣고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제재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반대로 동국대학교 김용현 교수는 박 대통령이 대화를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는 북한의 위협만을 강조하며 보수적인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주력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가 위협을 과장해서 안보를 최우선 과제로 부각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하면 박 대통령의 영향력은 계속 유지될 테니까요.”

한국 정부는 이번에도 총선 직전에 소위 ‘북풍 공작’을 벌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총선 직전에 중국에서 일하던 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북했다는 뉴스가 나자, 많은 사람은 정부가 일부러 선거에 맞춰 그 사실을 터뜨린 거라고 의심했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북한에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줘 봤자 돌아오는 건 군사적 도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하지만 동시에 북한의 위협을 늘 과장하며 이를 국내 정치에서 반대파를 제거하고 마녀사냥 하는 명분으로 삼으려는 권력에 대한 염증도 늘어났다. 게다가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군사독재자 박정희를 비롯한 한국 보수 정권이 선거철마다 써먹은 고전적인 수법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은 오랫동안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고 한국 내의 모든 진보 세력에는 “종북” 딱지를 붙이며 선거를 치러왔다. 이 전략이 중도 성향 유권자들에게 끝내 외면받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용현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른바 종북몰이 전략이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을 무력화하거나 억누르는 데 효과가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경제 현안은 늘 뒷전인 채 언제까지 북한 탓만 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지치기도 한 겁니다.”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의 김동엽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핵심 지지기반인 보수층의 이탈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북한과 전향적으로 대화를 시도하지는 않으리라고 내다봤다.

“저는 사실 정부의 대북정책이 유권자들의 선택에 큰 영향을 줬다고 보지 않습니다. 특히 야당을 택한 유권자들이 정부의 대북정책이 싫어서 새누리당에 등을 돌렸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그보다 유권자들이 대통령의 오만함이나 독선을 심판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겁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더 명확해 보일 수도 있죠. 박 대통령이 대북 정책 기조를 극적으로 바꿔 북한에 손을 내밀고 유화책을 편다고 진보 성향 유권자들이 박 대통령을 지지할까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북한의 완고한 태도 역시 박 대통령의 선택지를 줄이는 요인이다. 공개적으로 핵무기 보유를 과시하려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북한은 박 대통령이 대북 제재를 가할 때마다 일관되게 박 대통령에게 막말을 퍼부었다. 공식 성명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민족의 이익을 팔아먹는 창녀’라고까지 비난했다.

연임이 허용되지 않는 한국에서 대통령이 임기 후반에 추진했던 대북 유화책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했지만, ‘자신의 정치적 유산을 남기려는 무리한 시도’ 정도로 냉담한 평가를 받았다. 이어 들어선 이명박 정권은 정상회담 결과 도출해낸 10.4 선언문을 사실상 백지화했다. 북한이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수준의 경제 지원을 요구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김동엽 교수는 이런 과거 사례를 토대로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내다봤다. “박근혜 대통령이 갑자기 북한과 진정성을 갖고 대화에 나서려 한다면, 북한은 또 엄청난 경제적 지원이나 다른 요구사항을 들고나올 겁니다. 결국, 박 대통령에게 대북 유화책은 얻는 것보다 잃을 게 훨씬 많은 카드일 뿐입니다.” (뉴욕타임스)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