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카제, “언론과 언론사는 공공재” (1)
2016년 4월 19일  |  By:   |  칼럼  |  1 comment

*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고 프랑스 시앙스포 경제학과 교수로 가 있는 줄리아 카제(Julia Cagé) 교수의 책 <언론을 구하라: 자본주의, 크라우드펀딩, 그리고 민주주의(Saving the Media: Capitalism, Crowdfunding, and Democracy)>의 일부를 하버드의 니먼 재단(Nieman Foundation)이 발췌해 소개했습니다. 카제 교수는 프랑스 재무부 경제자문위원, AFP의 이사이기도 합니다.

카제 교수의 주장을 거칠게 요약하면 “언론을 교육처럼 공공재(public goods)로 다뤄야 한다”는 것입니다. 카제 교수는 세제를 조정해 혜택을 주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꾸준히 언론사에 필요한 자본을 공급하되, 언론사를 비영리 기관으로 운영하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는 길을 터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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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에 대해 새로운 세상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언론이 자초한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나는 언론이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옛날 방식 그대로 잘못된 대응으로 일관해온 탓이라고 생각한다. 즉, 언론사가 제대로 된 경제 구조를 갖추지 못한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본다. 특히 신문을 비롯한 활자 매체의 위기에 관한 논의는 무척 활발하지만, 오히려 중요한 건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보다 정보 그 자체에 있다. 수준 높은 기사가 점점 자취를 감추는 문제, 언론사의 조직 구조에 관한 문제가 논의조차 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문제다.

언론사에 어느 정도 보조금을 지급하는 게 맞느냐는 수준의 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언론이 진정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 역할을 하는 사회의 공기라면 아예 뉴스와 뉴스를 만드는 언론사에 법적으로 세제 혜택을 주는 게 맞다.

아마존을 세운 억만장자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사례를 보며 언론이 몇몇 ‘비전 있는 선량한 부자’의 후원을 받아 다시 번영할 거라고 믿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부자의 영향력 아래 언론이 놓이는 건 좋은 점보다 위험한 점이 더 많다. 언론사는 재단(foundation) 형태로 운영되는 것이 합자회사(joint-stock company)로 운영되는 것보다 낫다. 언론사의 사주도, 사주의 상속인도 언론사의 자산을 함부로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번 언론사에 투자된 자금은 계속 언론사의 운영에 쓰여야 한다.

위기에 처한 많은 언론사가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새로운 모델을 찾아 나섰다. 내가 생각하는 21세기 언론사 구조의 핵심은 크라우드펀딩과 권력의 공유나 분산이다. 이는 합자회사와 재단의 장점을 합쳐놓은 것인데, 이 글에서는 이를 “비영리 언론기관(NMO, nonprofit media organization)”이라 부르도록 하자.

먼저 언론사를 주식시장에 상장했던 실험을 되짚어보자.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이 공개기업으로 전환한 뒤 첫 5년 동안 수입이 매년 9%꼴로 늘어나는 사이 이윤은 매년 23%꼴로 가파르게 늘어났다. 이는 언론사가 비용 절감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는 뜻이다. 비단 신문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TV 방송국, 지역 라디오 방송국도 비용 절감에 집착하는 순간 방송의 질, 보도 콘텐츠의 수준은 뒷전이 된다. 이는 건강한 언론이 있어야 하는 민주주의에도 안 좋은 일이다.

특히 주주들의 이윤을 극대화(maximize shareholders’ profits)하는 것이 명백한 의무로 지정된 미국에서는 언론사의 주식이 공개적으로 거래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주주 이윤 극대화라는 가치가 언론사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가 되어야 할 “공공의 안녕을 위해 복무”하는 원칙과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과 공공을 위한 연구라는 뚜렷한 목적이 있는 대학교가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언론도 그 정도 대접을 받아야 한다.

미국, 영국, 아일랜드, 독일 등지에서 새로운 언론사 구조를 모색하는 다양한 실험이 있었다. 독일에서 가장 큰 언론사 연합체 베르텔스만(Bertelsmann)은 베르텔스만 재단이 소유, 운영하고 있는데, 언론사 자체의 성장을 가로막는 어떤 시도도 이윤 추구라는 명분 아래 하지 않는다. 총 11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베르텔스만은 세계 최대 출판사 펭귄 랜덤하우스(Penguin Random House)의 대주주로 미국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재단이 운영한다고 공개기업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건 아니다. 문제가 무엇인지를 잘 살펴야 한다. 즉, 표결권과 의사결정권이 철저히 지분에 따라 배분되는 구조가 언론사의 경우 반드시 좋지 않다는 게 핵심이다. 대주주의 경영 원칙이 회사를 지배하는 주식회사의 논리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펜을 들어야 하는 언론사의 책무에 배치되곤 한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비영리 언론기관은 어느 정도 검증된 개념일까? 재단이 소유하고 운영해 온 언론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 중 하나가 영국의 가디언(Guardian)이다. 가디언의 소유주인 가디언 미디어 그룹(Guardian Media Group)은 1936년부터 공익재단 성격의 스콧 트러스트(Scott Trust)가 맡아 운영해 왔다. 스콧 트러스트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가디언의 편집권 독립이다. 프랑스에서 판매 부수 1위인 우에 프랑스(Ouest-France)지는 1990년대 초부터 비영리 단체가 소유해 왔고, 그 덕분에 적대적 인수합병을 피해 갈 수 있었다.

‘자선’이라는 개념과 행동이 유럽 어느 나라보다도 대우를 받는 미국에서는 비영리 언론기관도 훨씬 많다. 2008년 설립된 탐사보도 전문 매체 프로퍼블리카(ProPublica)는 벌써 두 차례나 퓰리처상을 받았다. 탬파베이 타임스, 텍사스 트리뷴,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그리고 연합통신 AP도 비영리 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비영리 언론기관이다.

앞서 언급한 사례만 보면 비영리 언론기관이 검증된 대안처럼 보이지만, 섣불리 단정 짓기는 어렵다. 특히 대다수 비영리 언론기관은 소규모로 운영되며 틈새시장에서 아주 특정한 목표를 갖고 운영된다. 물론 이들이 비용 절감에 목을 매다 언론 본연의 역할을 잊어버린 듯한 기존 매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양질의 기사를 생산해내기도 하지만, 그 규모와 역량을 고려했을 때 비영리 언론기관이 기존의 신문, 방송 등 언론 지형을 대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소규모 비영리 언론 대부분이 온라인 언론인 점도 문제다. 온라인이 전통 매체의 대안이 될 거라던 꿈은 사라진 지 오래다. 비영리 언론기관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유저들이 평균적으로 머무는 시간은 2분이 채 되지 않는다. 전통 매체의 인터넷 사이트의 절반에 불과하고, 실제로 종이 신문을 들고 기사를 읽는 시간과 비교하면 턱없이 짧다.

비영리 재단이 언론의 본질을 잃지 않도록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한 건 의미 있는 일이지만, 비영리 언론기관이 제대로 된 수입을 못 내는 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숙제다. 샌디에고의 목소리(Voice of San Diego)가 벌인 크라우드펀딩 캠페인 “더 큰 목소리를 응원해주세요(the Bigger Voice Fund)” 정도를 제외하면 많은 이들에 소액을 기부받아 재정을 충당하려는 시도도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몇몇 부자들의 기부나 투자에 언론사의 재정이 크게 의존하게 되면 소수의 목소리에 휘둘려 편집권이 독립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런 언론은 사회의 공기로서 제 역할을 못 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소수의 기부나 투자에 기대면 경기가 침체됐을 때 훨씬 더 큰 영향을 받게 되는 것도 문제다.

법인세가 면제되는 등 세제 혜택이 주어지는 비영리 단체로 인가받는 일이 무척 까다로운 것도 걸림돌이다. 미국에서 언론이 기업 분류상 501(c)3에 해당하는 비영리 단체가 되는 건 무척 까다로운 일이다. 이는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최근 프랑스에서는 다양한 언론이 공존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다원주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좋은 일이며 공익에 부합하는 일이라는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어느 나라가 앞서 있느냐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비영리 언론기관은 기부나 투자를 받는 일도 훨씬 쉬워질 것이다. 또한, 언론기관에 투자한 돈이 단기적인 이윤보다는 장기적인 목표를 위해 쓰일 가능성이 크다. (Nieman Re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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