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쇼(見性): 월스트리트를 호령하는 인공지능 (2/3)
2016년 3월 25일  |  By:   |  IT, 경제  |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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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쇼의 주요 고객은 골드만삭스 안에서도 특히 거래소에서 일하는 영업직 사원들이다. 최근 들어 이들은 투자자들로부터 걸려오는 문의 전화에 답할 때 소프트웨어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에너지 관련 주식이나 현물 상품을 사고파는 투자자가 갑자기 심각해진 시리아 내전 상황에 맞춰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물었을 때 켄쇼에게 대신 맞춤형 보고서를 재빨리 만들어내게 시키는 식이다. 예전에는 담당 직원이 직접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관련 기사를 찾아보고 시장 동향을 분석한 뒤 조언을 건넸다. 사람의 기억에 기댄 작업인지라 용량에도 한계가 있고 정확도도 떨어졌다. 특별히 신경 써야 하는 중요한 고객이면 골드만삭스 내의 시장 분석 전문가(research analysts)들이 동원됐다. 이들이 하는 일이라고 해도 대단히 특별할 건 없다. 마찬가지로 예전 관련 뉴스 기사나 시장 동향, 분석 보고서를 더 많이 찾아서 모으는 일이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달려들어도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게 마련인데, 분석을 끝내고 답을 손에 쥐었을 때쯤에는 시장 상황이 또다시 바뀌거나 투자 기회가 사라진 뒤라는 점이 문제였다.

켄쇼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이제는 문의를 받은 담당 직원이 켄쇼에 접속해 검색창에 관련 단어를 입력하면 된다. 네이들러가 직접 내게 시범을 보여줬다. 인터넷에서 검색어를 입력하듯 켄쇼 검색창에 “시리아”라고 쳤더니, 시리아 내전과 관련된 다양한 기사와 정보가 마치 구글 검색 결과처럼 주제별로 묶여 나왔다. “IS 진압 현황” 관련 문건 25건, “주요 전황과 ISIS가 저지른 잔혹 행위” 관련 문건이 105건 검색됐다.

켄쇼는 똑똑한 검색어 자동완성 기능처럼 검색어와 관련된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며 훑어낸다. 이 과정은 인간의 개입 없이 소프트웨어가 스스로 학습한다. 어떤 의미에서 바로 이 부분이 켄쇼라는 소프트웨어의 가장 복잡하면서도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트레이더나 애널리스트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관련 검색어를 직접 입력하고 위키피디아부터 예전 기사까지를 일일이 찾아야 했다. 켄쇼의 검색 엔진은 사건을 추상적인 특징에 따라 분류한다. 예를 들어 ISIS가 시리아 중부의 팔미라(Palmyra)라는 도시를 장악했다는 내용과 프랑스군이 공습을 했다는 내용은 내전이 격화되고 있다는 카테고리 아래 묶이는 동시에 각각 어느 쪽이 공격하는 쪽이고 어느 쪽이 공격을 받은 쪽인지를 켄쇼가 스스로 인식해 검색 결과상에 분류해 표시한다.

소프트웨어는 또한 어떤 사건을 접했을 때 사람들이 미처 생각해내지 못하는 자산 가격의 변화를 찾아낸다. 켄쇼가 알려준 내용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검색을 해서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이러한 특징을 제대로 장착하기 위해 네이들러는 구글에서 세계 모든 도서관의 대분류 작업에 참여했던 머신러닝의 귀재를 영입했다.

어떤 사건 묶음을 선택한 뒤에 담당 트레이더는 옵션 메뉴에서 특정 시기별, 혹은 특정 투자나 특정 자산 관련 정보만 솎아낼 수 있다. 가장 넓은 범위의 자산이란 독일 주식, 호주 달러, 다양한 원유 등 세계 40여 가지 주요 자산 묶음이다. 어느 것이든 원하는 정보를 입력한 뒤 보고서 작성(Generate Study) 버튼을 누르면 몇 분 안에 도표로 가득한 보고서가 생성된다. “시리아 내전 격화”라는 주제 아래 묶여있는 27개 사건으로 네이들러는 시연을 계속했다. 첫 번째 도표는 내전이 격화된 이래로 몇 주 동안 천연가스, 원유 가격이 기대치를 밑돌았고, 반대로 아시아 주식시장과 미국, 캐나다 달러가 호조를 보였다는 내용이었다. 보고서에는 시리아 내전으로 일어나는 사건 중에서도 어느 유형의 사건이 어떤 식으로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하여 과거 동향을 토대로 살펴봤을 때 어디에 무게를 두고 투자를 진행하는 것이 최적의 거래 전략인지도 포함됐다.

네이들러는 랩탑 컴퓨터를 닫았다. 이 모든 일이 불과 몇 분 안에 이뤄졌다. 네이드러는 비슷한 수준의 보고서를 사람이 작성하려면 총 40시간 정도의 노동이 필요할 거라고 말했다. “그냥 40시간이 아녜요. 평균 연봉 35만 ~ 50만 달러를 받는 사람들의 40시간이죠.”

이토록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켄쇼를 처음 구상한 것이 불과 3년도 안 된 일이다. 2013년, 당시 박사과정 학생이던 네이들러는 (미국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 보스턴 지부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 유럽 경제는 유로존 위기에 그리스 총선 여파 등으로 상당히 불안정했다. 금융시장 전체가 여기에 영향을 받아 흔들리고 있었다. 비슷한 과거 사례가 금융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찾아보던 네이들러는 뜻밖에도 규제 당국은 물론 은행에도 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해낼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저 예전 뉴스들을 열심히 뒤져보는 일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는 실정이었다. 연구하다 남는 시간에 네이들러는 일본 관련 학생 동아리를 통해 알게 된 구글 프로그래머 출신 친구와 이 이야기를 하게 됐다. 2008년 금융 위기에 정치가 미친 영향을 주제로 써온 박사 논문이 마무리 단계에 와 있었지만, 네이들러는 쓰던 논문을 잠시 접고 대신 작은 팀을 꾸려 자신의 아이디어로 구글의 벤처캐피털 팀으로부터 초기 자금을 투자받았다. 이어 다른 곳에서도 속속 투자를 받았는데, 포브스에 따르면 이 가운데는 CIA의 벤처캐피털 팀도 포함돼 있다.

켄쇼의 본사 사무실은 여전히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의 하버드대학 캠퍼스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있다. 1층에는 오랜 이발소가 있는 건물의 3층이다.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 30여 명은 아마 몇 년 전이었다면 골드만삭스에 들어갔을 것처럼 보이는, 하나같이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젊은 인재들이었다. 서서 일할 수 있는 책상, 편한 옷차림, 베개와 일본식 다다미 매트가 구비된 명상실, 체스판과 포커 테이블이 있는 게임방 등이 골드만삭스 대신 이곳에서 일하기로 한 이들에게 주어진 혜택 가운데 당장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었다.

내가 케임브리지에 있는 사무실을 방문한 건 크리스마스 연휴가 얼마 안 남은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도착했을 때 직원들은 마니또 산타클로스 게임으로 서로에게 몰래 준 선물들을 뜯어보고 있었다. 네이들러와 주요 임원 몇 명과 회의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중간 직원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가장 궁금한 건 역시 켄쇼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였다. 그래서 나는 임원들에게 자동화와 그로 인한 일자리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네이들러가 각각 어느 시점에 꺼냈는지부터 물었다.

“이 일에 관한 이야기와 거의 동시에 나왔죠.”

기술 부문 최고 책임자(CTO)인 매트 테일러(38)가 말했다. 테일러는 회사 직원 중에서도 초기 멤버에 속한다.

“첫째 날에요.”

켄쇼를 만든 주역 가운데 한 명인 최고 설계자(chief architect) 마틴 카마초(20)의 답도 비슷했다. 카마초는 15살에 하버드에 입학했다.

카마초는 켄쇼에서 일한 첫 여름 어느 날 밤 네이들러네 집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외계인이 만들어낸 복제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그린 공상과학 영화 <오블리비온(Ovlivion)>을 같이 보고 그 사회경제적 함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에 네이들러는 엔지니어링 팀원 전원을 케임브리지에서 가장 근사한 식당 중 하나인 헨리에타스 테이블에 초대해 식사를 함께하며 자동화가 먼 미래에 끼칠 영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네이들러는 컴퓨터가 인간의 모든 필요와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할 만큼 똑똑해질 먼 미래에는 강력한 인공지능이 우리를 풍요의 시대로 이끌어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 몇십 년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거라고 내다봤다. 아직 컴퓨터가 전반적으로 사람만큼 똑똑하지는 않지만, 사람의 일을 대신 해서 돈을 벌어다 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만큼 똑똑한 일종의 과도기가 되리라는 것이다.

카마초는 네이들러보다는 좀 더 낙관적이었다. 몇 년 전에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수학 증명 프로그램이 발명됐을 때도 수학 연구 관련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테일러도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모두가 할 일은 충분히 많을 거로 생각해요.”

새로운 소프트웨어의 등장으로 금융업에서 해방된 노동자들이 오히려 더 가치 있는 일을 찾아갈 것이라는 식의 낙관론은 골드만삭스의 임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서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세상에 있지도 않은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도 자동화, 기계화가 한몫할 거라는 이도 있다. 은행 업무 일부를 대신할 수 있는 자동화기기(ATM)가 보급되었어도 은행의 여러 지점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지는 않지 않았냐고 주장하는 임원들도 있었다.

이런 비판은 옥스포드 연구진이 쓴 “고용의 미래” 보고서에 대한 비판과도 궤를 같이한다. 현재 존재하는 직업의 47%가 자동화와 함께 기계의 몫이 되더라도, 많은 뉴스 기사의 우려대로 현재 인구의 47%가 일자리를 잃게 되는 건 한마디로 기우라는 말이다. 자동차는 마부와 마구간에서 일하는 사람의 일자리를 앗아갔다. 하지만 동시에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주유소, 휴게소에서 일하는 사람이 필요해지면서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 오늘날 증권 중개인들이 하던 일 등 일부가 자동화돼 기계의 몫이 된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금융 관련 소프트웨어의 성공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금융 관련 정보를 얻게 되고 투자의 영역도 더 넓어진 측면이 있다.

“고용의 미래”의 주 저자인 칼 베네딕트 프레이는 새로운 기술이 기존 직업을 앗아가는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일자리 수에 변화가 없다고 해서 전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석하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예를 들어 섬유 산업에 기계가 도입되고 공정이 자동화되면서 미국 남부 많은 지역은 실질적인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미국 전체 실업률은 거의 그대로였다. 최근 발표된 새로운 연구들을 보면 자동화기기의 도입이 실제로 은행 지점과 지점에서 일하는 은행원의 숫자를 줄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반면 콜센터에서 일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숫자가 늘어난 것이 일종의 착시 현상을 일으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든 문제를 가렸다고 볼 수도 있다.

아마도 기계가 전반적인 고용 수준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보는 게 불편하지만 진실에 가까운 분석일지 모른다. 퓨리서치 연구소가 미래학자와 기술자를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절반은 미래에 일자리가 사라지는 속도가 새로 일자리가 생겨나는 속도보다 빠를 것이라고 답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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