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 격차를 확대 재생산하는 정보 격차
2016년 2월 25일  |  By:   |  IT, 세계  |  1 comment

12살 토니와 11살 이사벨라 남매는 매일 저녁 집 근처 초등학교 담장 근처를 서성입니다.

“잡았다. 이제 다운로드 된다.”

이사벨라가 오빠에게 말합니다. 이사벨라가 들고 있는 휴대전화의 깨진 화면에 선생님이 올려준 수학 문제풀이를 찍은 사진이 서서히 로딩됩니다.

학교 옆에 가야만 인터넷을 쓸 수 있어 이 곳에서 매일 서서 학교 숙제를 하는 토니와 이사벨라 남매. (사진: 일라나 패닉린스만(Ilana Panich-Lindsman) / 뉴욕타임스)

와이파이에 연결해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초등학교 담장 옆 비좁은 인도는 남매가 학교 숙제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집에는 인터넷이 없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벌써 몇 달째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식당 보조로 일하는 아빠가 벌어오는 얼마 안 되는 돈이 가족이 기대고 있는 수입의 전부입니다.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인터넷은 사치였습니다. 아이들의 엄마 마리아는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합니다.

“집에 돈이 하나도 없어요. 앞으로도 인터넷을 쓰는 건 갈수록 더 어려워질 텐데,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가면 인터넷 없이 숙제를 하고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게 점점 더 벅찰 거잖아요. 막막합니다.”

학교 수업에서 온라인 자료나 교재를 활용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학업 성취도에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연방 정부에는 이러한 정보 격차(digital divide), 즉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나뉘는 차이를 해소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됐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인터넷이 없거나 인터넷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지 못 할 위기에 있는 가구는 총 500만 가구로 추정됩니다.

이는 학생들에게는 당장 오늘 숙제를 해갈 수 없는, 피부에 와닿는 문제입니다. 특히 빈부 격차나 소득 불평등이 큰 지역에 저소득층이 모여 사는 동네에 문제가 심각한데, 학생들은 와이파이에 접속할 수 있는 통학 버스에서만 숙제를 하거나, 아예 학교 측에서 버스를 동네 가운데 있는 공영주차장 같은 곳에 세워놓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버스 근처에 와서 인터넷을 써 숙제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죠. 디트로이트나 마이애미, 뉴올리언스 같은 대도시에서는 집에 인터넷이 없는 학생들이 공공 도서관이나 패스트푸드 체인 등 인터넷이 되는 곳에 모여 숙제를 합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는 오랫동안 이 문제와 씨름해 왔습니다. 위원회는 다음달 저소득층 가정에 인터넷 서비스를 보급하는 데 필요한 지원금을 포함한 총 연 20억 달러 규모의 통신비 보조금 지원계획의 승인 여부를 투표에 부칠 예정입니다. 민주당이 지명한 연방통신위원 제시카 로젠워첼은 “구명줄(Lifeline)”로 명명된 이 지원계획을 지지하는 인사 가운데 한 명입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숙제 격차(homework gap)’라고 부르고 싶어요. 이는 정보 격차의 현실을 가장 냉혹하게 알려주는 단적이 사례 가운데 하나예요.”

로젠워첼은 학교 선생님들이 내주는 숙제의 70%는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찾거나 인터넷으로 제출해야만 할 수 있는 숙제라는 최근 연구 결과를 인용했습니다. 하지만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과 시골 지역에 사는 학생 등 미국 학생의 1/3이 집에서 인터넷을 할 수 없습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공공주택에 광대역 인터넷을 무료 혹은 저렴한 가격에 설치하는 계획을 입안했습니다.

반면 공화당이 지명한 연방통신위원 두 명과 일부 의원들은 1985년 처음 도입된 구명줄 계획이 예산 낭비의 주범으로 전락했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1985년 저소득층 가정에 전화기를 무료 혹은 싼 값에 놓아줄 수 있도록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 프로그램의 시초인데, 프로그램이 무분별하게 확장되고 지원 대상이 아닌 사람들까지 혜택을 입는 등 남용되었다는 겁니다. 특히 지난 2008년 위원회가 휴대전화도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집전화와 휴대전화까지 이중으로 지원을 받는 가정이 늘어났고 예산이 덩달아 크게 늘어났습니다. 위원회가 남용을 막기 위해 사람들의 자격 요건을 꼼꼼히 살폈는지를 비롯해 이 프로그램의 효과 자체에도 의문 부호가 붙기도 했습니다.

관련 시민단체들은 대개 이 프로그램을 지지합니다. 이들은 구명줄 계획이 저소득층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보다 뒤쳐지는 걸 막아줄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비영리단체 커먼센스 미디어의 제임스 스테이어는 젊은이들, 어린 학생들에게 인터넷은 우리가 숨쉬는 데 필요한 공기와도 같다고 말했습니다.

“학교 공부를 하는 데는 물론이고 결국 나중에 좋은 일자리를 구하는 데 있어서도 인터넷에 제약 없이 접근하는 문제는 굉장히 중요해요. 우리 사회가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를 갈수록 명확히 구분하는 쪽으로 가려는 것이 아닌 한 저소득층, 유색인종 가정에 꼭 인터넷을 제공해야 합니다.”

빈곤율이 높은 텍사스 남부 리오그란데 밸리 근처 지역은 이 문제가 특히 두드러지는 곳 가운데 하나입니다. 2014년 한 단체의 조사 결과를 보면 맥칼렌(McAllen)이라는 도시에 있는 가정의 40%에 인터넷이 없었습니다.

이 지역의 도나(Donna)라는 마을에 사는 브리지타 카스트로 씨는 집으로 가는 골목길이 좁다는 이유로 인터넷 회사가 집에 인터넷을 설치해주지 못 한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16살 고등학교 2학년인 카스트로 씨의 딸 페를라는 의료 분야에서 일하려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페를라 같은 학생들을 위해 학교는 100대가 넘는 통학버스에 무료 인터넷을 설치했고 페를라는 일부러 집까지 빙빙 돌아가는 노선의 통학버스를 타고 버스 안에서 매일 세 시간씩 숙제를 합니다.

인터넷을 교육에 활용하는 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입니다. 이 지역의 교육감 마를라 게라 씨는 인터넷을 쉽게 쓸 수 없는 학생들까지 최대한 끌어안고 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넷 없이 수업을 진행하고 교육 과정을 짜는 게 그런 학생들을 돕는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결국 그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한 뒤 만날 세상은 지금보다도 더욱 온라인에서 많은 것이 이루어지는 세상일 거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래요.”

교육청에서 학생들을 위해 무료 와이파이 존을 설치해주는 곳도 있고, 지방세의 일부를 저소득층 가정에 인터넷을 설치하고 요금을 내는 데 필요한 기금을 마련하는 데 쓰는 곳도 있습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댈러스 분점에서 지역개발 업무를 담당하는 조다나 바톤은 연방통신위원회의 구명줄 계획을 둘러싼 논란이 어떻게 귀결되느냐가 매우 중요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인터넷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는 환경이 결과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는 데도 큰 지장을 줍니다. 단순히 숙제에 따른 성적 차이로만 볼 문제가 아니에요, 학생들이 점점 뒤쳐졌을 때 나타날 여파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배려해 문제풀이를 온라인에서 받아볼 수 있도록 올려놓은 뒤 수업시간을 쪼개 다시 설명을 반복해주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들도 있지만, 선생님 개개인의 노력이나 배려에만 기대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집에 인터넷이 없는 학생들에게 최소한 몇 시간 동안 온라인으로 친구들과 의견을 주고 받으며 함께 자료를 준비해 자정까지 온라인으로만 제출해야 하는 숙제는 정말 하기 어렵습니다.

파르(Pharr)라는 동네에 사는 고3 유넨 레이예스에게는 방과 후 중국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끝낸 뒤 매일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스타벅스나 패스트푸드 음식점에 자리를 찾는 것이 일입니다. 숙제를 제때 내고 낙제하지 않으려면 불편해도 매일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사정이 좀 나은 친구에 자기 집 거실에 있는 가족 공용 컴퓨터를 쓸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합니다. 유넨은 최근 국어 과목 숙제를 늦게 냈다가 과제물에서 C를 받았다며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매번 인터넷 좀 쓰자며 친구에게 부탁하는 것도 정말 부끄럽고 불편한 일이에요. 그렇다고 매번 과제를 낼 때마다 인터넷이 없어서 제출이 늦었다고 변명하는 것도 싫어요.”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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