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 시리즈의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는 백인일까?
2015년 10월 21일  |  By:   |  문화, 세계  |  1 comment

해리포터의 주요 등장인물인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는 과연 백인일까요? 책 표지의 그림에 백인으로 등장하니까, 엠마 왓슨이 연기했으니까 백인일 거라고요? 사실 원작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출판사나 영화 제작사도 그저 상상력을 발휘해 자의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책 속의 내용만으로는 헤르미온느를 특정 인종으로 단정지을 수 있는 근거가 충분치 않으니까요.

문제는 헤르미온느의 인종이 언급되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백인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서구에서 “중립적인” 인종, 즉 디폴트는 백인입니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의 인종이 따로 언급돼 있지 않으면 그 사람은 백인이라는 겁니다. 롤링이 특별히 언급하지 않은 사람은 죄다 백인이라 치면, 마법사 세계는 백인이 절대 다수인 세계입니다. 해리, 톰 리들, 론을 포함한 위즐리 가족, 덤블도어, 스네이프 등 호그와트 교수 대부분, 시리우스, 루핀, 네빌, 루나 등이 모두 백인이죠. 백인이 아닌 학생들도 소수 있긴 합니다. 초 챙, 리 조던, 안젤리나 존슨, 딘 토머스, 바르바티와 파드마 패틸 등입니다. 이들의 경우엔 피부색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등장하거나, 누가봐도 “외국인”같은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롤링이 명시하지 않은 라벤더 브라운의 인종 역시 논란의 대상이었는데, 영화에서는 초반 몇 편에 흑인 배우가 라벤더 브라운 역을 맡았지만 이후 대사가 있는 캐릭터가 되자 백인 배우로 교체됩니다. 나중에 마법부 장관이 되는 킹슬리 샤클볼트는 확실히 백인이 아닌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 캐릭터는 어딘가 백인 형사들이 이끌어나가는 법정 드라마에서 구색 맞추기로 들어간 흑인 판사 같은 인상을 줍니다. 이렇게 롤링이 창조한 마법사 세계는 일견 모두가 어울려 조화롭게 살아가는 포스트 인종주의 세상인 듯 보이지만, 실상 백인이 아닌 캐릭터는 대부분 대체 가능하고 덜 중요한 존재인 곳이기도 하죠.

이런 문제가 왜 중요한 것일까요? 잠시 생각해보면, 해리포터 시리즈의 핵심에는 인종이라는 주제가 자리하고 있고, 위험한 인종 우월주의를 다루고 있습니다. 마법사 세계에는 순혈, 혼혈, 머글 출신이라는 명백한 인종 집단들이 존재합니다. 부모가 모두 머글인 헤르미온느 등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소수집단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머글 출신이 백인이 아니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헤르미온느는 소설 속에서 소수집단인 데다가 집요정 해방을 외친 사회 정의 운동가이고, 똑똑하고 선하고 흥미로운 인물이며, 극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인공입니다. 서구 문학에서 소수인종 여성이 이런 캐릭터로 등장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죠. 만일 그녀가 소수 인종이라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에 조금 더 깊이를 더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 독자들로서는 혹시 헤르미온느가 백인이 아닌 것은 아닐까 하고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디폴트가 백인”이라는 프레임을 버리고 한번 생각해봅시다. 헤르미온느의 외모에 대한 롤링의 묘사는 머리숱이 많다는 것, 그리고 약간 뻐드렁니라는 것입니다. 둘 다 특정 인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실은 어릴 때 “무성한 머리숱”이라는 표현을 보고 나는 한동안 헤르미온느가 흑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롤링은 책을 다 쓰고 나서도 등장 인물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여럿 밝혔습니다. 론과 헤르미온느를 커플로 만든 것을 후회한다거나, 덤블도어가 실은 동성애자였다는 것 등 다양한 이야기를 추가로 들려줬죠. 하지만 작가가 특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머지 등장인물이 모두 이성애자에 시스젠더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롤링이 헤르미온느를 백인으로 설정하고 썼을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그녀는 트위터에서 해리와 헤르미온느를 흑인으로 그린 팬아트에 여러 번 호의를 표한 바 있습니다. 나는 헤르미온느의 인종이 어디까지나 열린 문제고, 독자가 자신이 원하는대로 생각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백인이 아닌 캐릭터를 백인으로 해석하는 문화적 전통은 그 역사가 깊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재해석은 이미 서구 미디어에서 과소대표되고 있는 소수 인종의 존재를 더욱 흐린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반대의 재해석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문학이나 대중 문화 속에서 롤모델로 삼을만한 캐릭터를 찾기 힘든 유색 인종 청소년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죠. 헤르미온느도 그런 캐릭터가 될 수 있습니다. (슬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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