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유 레전드 네빌과 긱스, 개축 중인 호텔 점거한 노숙인들에게 “나가지 말고 그 곳에서 겨울 나시라”
2015년 10월 20일  |  By:   |  세계, 스포츠  |  No Comment

옮긴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에서 오랫동안 선수로 뛰었던 레전드 개리 네빌(Gary Neville)과 라이언 긱스(Ryan Giggs)는 박지성 선수와 함께 뛰기도 해 국내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선수들입니다. 현재 네빌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코치이자 때때로 스카이스포츠에서 해설을 하고 있고, 긱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코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둘이 함께 구 맨체스터 증권거래소 건물을 호텔로 개축한다는 소식은 앞서 국내 언론에도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관련 연합뉴스 기사)

개리 네빌과 라이언 긱스가 맨체스터 시내의 유서 깊은 증권거래소 건물을 헬스장과 스파, 옥상 개인용 테라스를 갖춘 부티크 호텔로 개축하겠다는 계획을 시 정부로부터 승인받았을 때만 해도 호텔을 찾는 손님들은 부유한 고객들일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하지만 호텔이 문을 열기도 전에 뜻밖의 손님들이 찾아들었고, 또 한 번 예상을 뒤엎는 반전은 개리 네빌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부유층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먼 노숙인들과 그들을 돕는 주거 운동 활동가들이 개축 중인 호텔 건물을 무단으로 점거했는데, 개리 네빌은 그들의 사정을 이해한다며 건물에 머물며 추운 겨울을 나도 괜찮다고 허락했습니다.

지난 일요일 호텔을 무단으로 점거한 이들은 ‘맨체스터의 천사들(the Manchester Angels)’라는 이름의 노숙인 지원단체이자 주거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입니다. 무단 점거에 대한 건물주들의 대응은 대개 한결같습니다. 당장 법원으로 달려가 무단 점유는 불법이기 때문에 이들을 쫓아내도 좋다는 퇴거 명령장을 발부받고 이를 집행하는 게 보통이죠. 그런데 네빌과 긱스의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호텔은 적어도 2월은 되어야 문을 열 계획이니 추운 겨울 동안은 건물에서 지내도 좋다고 허락한 겁니다.

이번 점거를 주도한 활동가 웨슬리 홀(33)은 개리 네빌과 통화하면서 벅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다고 말했습니다.

“(네빌은) 맨체스터에서 선수로 뛰는 동안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숙인들을 도왔다며 추운 겨울 동안 건물에 머물러도 좋다고 말했어요. 저는 울면서 정말 정말 감사하다고, 지금 당신이 저희에게 얼마나 대단한 기회와 은혜를 베푼 건지 아마 모르실 거라고 말했죠.”

활동가들은 네빌과 긱스가 겨우내 머물러도 좋다고 허락한 건물을 노숙인들을 위한 임시 거처이자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급식소, 간단한 건강 검진을 제공하는 곳으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뿐만 아니라 노숙인들의 생계를 돕기 위해 구직 활동이나 주거 대책에 필요한 조언,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일도 구상 중입니다. 이 모든 계획을 동계 안전활동 방침(Operation Safe Winter)이라 이름붙인 이들은 증권거래소(stock exchange) 건물로 쓰이던 건물 이름도 옷가지 나눔 장터(sock exchange)로 개명했습니다. 이들은 실제 이곳을 찾는 노숙인들에게 간단한 옷가지를 나누어줄 계획입니다.

홀은 또박또박 계획을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계획을 원칙에 맞춰 실행에 옮길 거예요. 벌써 요리, 청소, 경비를 누가 언제 맡을지 당번 일정표를 짜놓았어요. 현재 노숙인 30여 명, 활동가 20여 명이 머물고 있는데, 모두에게 최소한의 사생활이 보장된 자신만의 공간이 배정될 겁니다. 우리는 라이언 긱스와 개리 네빌이 우리의 점거 사실을 알자마자 당연히 (다른 건물주들이 그렇듯) 우리를 내쫓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건물을 점거하자마자 여기서 쫓겨나면 어느 건물로 가야 할지를 궁리하고 있었죠.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두려움 없이 노숙인들을 돕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얻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네빌이 내건 조건은 단 하나였습니다. 측량사를 비롯해 호텔을 개축하는 일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작업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경우 건물을 드나드는 데 지장이 없도록 협조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홀은 물론 여기에 동의했습니다.

“당연하죠. 우리의 목표는 이 건물을 나갈 때 저희가 들어왔을 때보다 더 깨끗한 상태로 남기는 것입니다. 만약 그게 어렵다면 적어도 저희가 들어왔을 때만큼의 상태를 유지하는 게 목표이자 원칙이죠. 혹시 모를 화재에 대비해 벌써 화재경보기를 따로 주문해뒀습니다. 개리 네빌에게 노숙인들 가운데 몇 명을 고용해 개축 업무 보조일을 맡기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맨체스터 노포크(Norfolk)가에 있는 구 증권거래소 건물은 1906년에 지어진 2급 문화유산(Grade II)으로 지정된 건물입니다.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물은 증축이나 개축 시 제약을 받고 시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개리 네빌과 라이언 긱스는 앞서 이 건물을 객실 35개와 헬스장, 스파, 옥상 테라스, 레스토랑 등을 갖춘 호텔로 다시 짓겠다는 계획을 승인받았습니다.

맨체스터와 리버풀에는 1836년 처음으로 증권거래소가 문을 열었습니다. 앞서 18세기에 런던에 열린 증권거래소의 지부 형식으로 문을 열었는데, 산업혁명과 함께 철도 건설 붐을 타고 번성한 잉글랜드 북부의 기업들이 자본을 모으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노숙인 연대 활동가들과 서민층을 위한 주거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싸우는 시민운동가들은 이달 초 맨체스터에서 영국 보수당 당대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 또 다른 2급 문화유산 건물을 점거해 현재 보수당 정권에 항의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캐머런 총리는 기조 연설을 통해 20만 가구를 새로 지어 시장에 공급하겠다는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는데, 활동가들은 이 정책이 중산층에게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집이 없는 사람들의 어려움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정책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들은 수천, 수만 채에 이르는 빈 집, 빈 건물을 집이 없는 노숙인, 빈민들을 위한 임시 거처로 개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맨체스터의 노숙인들은 최근 몇 년 사이 150% 늘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시 정부가 도심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하는 집 없는 이들을 용인하지 않기 시작하며 노숙인이 들어났다는 게 활동가들의 주장입니다. 노숙인 지원단체 크라이시스(Crisis)에 따르면 지난해 잉글랜드에서 노숙인 28만 명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움을 청했습니다. 수도 런던의 노숙인들은 전년도보다 16% 늘어난 7,581명으로 집계됐습니다. 현재 잉글랜드 전역에 퍼져 있는 빈 집은 61만여 채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홀 씨는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늘 추위에 떨었던 크리스마스에 비해 따뜻하게 날 수 있게 된 크리스마스를 더욱 의미있게 보내기 위해 지역의 유명 레스토랑과 셰프들에게 다같이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행사를 열자고 제안했습니다. 누구든 도움을 주고픈 이들은 자신의 트위터로 연락해달라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전 아직도 꿈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겨지지가 않아요. 노숙인들과 함께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의미있는 활동을 정말 제대로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겁니다. 그들의 삶에 정말로 큰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을 겁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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