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샌더스가 여론조사를 비롯한 각종 평가에서 앞섰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주류 언론
2015년 10월 16일  |  By:   |  세계, 칼럼  |  3 Comments

옮긴이: 민주당 대선후보 TV 토론회에 대한 주요 언론의 평가는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힐러리가 토론에서 앞섰다, 논리적으로 돋보였다, 힐러리가 민주당원들의 불안을 잠재웠다, 반면에 샌더스는 토론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구호는 훌륭했지만 디테일에서 열세를 보이며 흡인력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어제 뉴스페퍼민트도 힐러리 대세론이 다시 힘을 얻었다는 <복스(Vox)>의 분석을 소개해드렸습니다.

그런데 몇몇 인터넷 매체에서 이와는 상당히 다른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토론회에서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것 자체가 객관적인 기준보다는 주관적인 판단에 기대는 경우가 많은데, 힐러리의 압승을 일제히 보도하는 모습은 대단히 성급했거나 편향됐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또한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미디어 상에서의 검색 횟수나 포커스 그룹을 포함한 여론조사에서도 샌더스가 선전하고 있지만, 많은 언론들이 이를 보도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오늘 뉴스페퍼민트는 <얼터넷(AlterNet)>이라는 매체에 실린 칼럼을 소개합니다. 얼터넷은 스스로를 진보 매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옮긴이가 볼 때는 다소 편향된 시각을 담은 기사, 칼럼이 실리기도 하는 곳이라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글을 뉴스페퍼민트에 싣기 전에 주변 친구들에게 의견을 구했는데, 지나친 억지라는 의견도 있었고 불필요한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는 점도 미리 밝혀둡니다. 결국 관건은 미국 사회와 (미국적 맥락에서) 진보적이라는 민주당의 유권자들이 지금껏 아웃사이더였던 버니 샌더스라는 인물과 사회민주주의에 기반한 그의 주장, 정책을 얼마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토론회에서 누가 잘했냐 못했냐를 가르는 기준은 다분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에겐 저마다 토론에 나선 후보의 입에서 듣고 싶은 말, 주장, 정견이 있을 겁니다. 때문에 듣는 사람에 따라 토론회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는 게 당연합니다. 정치 평론가, 전문가들은 유권자들이 듣고 싶은 말을 조리있게 잘 전달한, 다시 말해 유권자들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준 후보에게 높은 점수를 줍니다. 그런데 평론가들은 유권자들이 어떤 이슈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다시 말해 어디가 가려운지를 어떻게 아는 걸까요? 여기에는 객관적인 원칙이나 프로그램보다도 정치 평론가들의 주관이 다시 한 번 개입됩니다. 관심법을 쓰는 사람들처럼요. 평론가가 맞을 때도 많습니다. 유권자들의 표심의 흐름을 잘 짚어내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반대로 평론가의 분석이 터무니없이 잘못된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지난 민주당 1차 토론회에 대한 분석이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과 그들이 주요 언론에 쓴 기사들을 보면 유권자의 표심과 상당한 괴리가 보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는 토론에서 이겼습니다. 여기엔 이론의 여지가 없어요. 제가 전문가를 자처하며 유권자들의 마음 속에 들어가 봐서 안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앞에서 말했지만 사실 저는 토론에서 승패를 나누는 것 자체에 어폐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나마 우리가 토론회를 전후로 모은, 상대적으로 좀 더 객관적이라고 부를 만한 자료를 토대로 살펴보면 샌더스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자료는 온라인 여론조사, 포커스 그룹 여론조사입니다. 이 조사에도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다분하고, 오히려 더욱 편향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러 조사에서 샌더스가 현저히 앞섰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샌더스는 CNN 포커스그룹, 퓨전(Fusion) 포커스그룹, 폭스뉴스(Fox News) 포커스그룹에서 앞섰습니다. 폭스뉴스가 선정한 포커스그룹 조사대상자 가운데는 토론회를 보고 샌더스로 마음이 돌아섰다고 답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온라인 여론조사의 경우 샌더스는 슬레이트(Slate), CNN/타임을 비롯해 수많은 여론조사에서 앞섰습니다. 제가 아는 한 이 모든 여론 조사에서 샌더스가 토론을 더 잘 했다거나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로 적합하다, 샌더스를 지지한다는 의견이 우세했습니다. 그런데 주요 언론이 쓴 분석 기사를 보면 이런 사실은 쏙 빠져있습니다. 뉴욕타임즈, 뉴요커, CNN, 폴리티코, 슬레이트, 뉴욕매거진, 복스를 비롯한 언론들은 일제히 힐러리가 더 잘했다고 썼습니다. 뭐가 어떻게 된 걸까요?

온라인 여론조사가 그다지 믿을 만한 게 못 된다는 건 우선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분명한 사실입니다. 포커스그룹이 온라인 여론조사의 단점을 보완했다고는 하지만 이 또한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지표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죠. 그렇지만 진보(liberal) 진영의 정치 평론가들, 전문가들이 한 분석 또한 객관적이거나 과학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온라인 여론조사와 포커스그룹에서 샌더스의 압승이라는 결과가 나온 반면 정치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힐러리의 완승이라는 평가가 쏟아졌습니다. 이는 사실 샌더스 후보가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었을 때부터 존재했던, 그리고 점점 커졌던 두 그룹 사이의 괴리이기도 합니다. 주류 언론들은 샌더스의 돌풍이 결국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때문에 샌더스의 지지율이 오름세를 멈추지 않는 현상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기도 했죠. 프레디 데보어(Freddie DeBoer)는 이런 현상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습니다.

“(토론회 다음날인) 오늘 아침에 나는 슬레이트나 복스, 뉴욕 매거진 같은 매체들이 민주당의 기득권이 내놓은 “힐러리 클린턴 완승” 분석을 그대로 읊을 거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클린턴 후보가 실제로 토론회에서 얼마나 잘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미리 써놓은 듯한 그런 논조의 기사가 속속 나올 거라는 건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첫째,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중도를 지향하는 정당(centrist party)으로 민주당의 주류와 기득권은 대선 후보를 내는 과정 자체를 당연히 당 전국위원회(DNC, Democratic National Committee)의 권한과 영향력 아래 두고 싶어한다. 둘째, 클린턴은 오랫동안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확실시돼온 인물이다. 클린턴이 민주당 후보로 나서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가정을 했을 때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과의 친분, 혹은 공감대를 갖고 있는 언론사를 만드는 게 중요해진다. 여전히 미국에서도 정치면의 기사는 이렇게 쓰여지는 경우가 많다. 대단히 유명한 블로거 출신으로 아예 언론사 복스(Vox)를 설립한 에즈라 클라인(Ezra Klein)을 예로 들어보자. 그가 가장 각광받는 젊은 언론인으로 이렇게 빨리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건 오바마케어를 앞장서서 옹호하고 그에 대한 비난을 잠재울 수 있는 사실을 기사로 효과적으로 써냈기 때문이다. 잇단 기사를 통해 백악관과 돈독한 관계를 쌓은 에즈라 클라인은 이후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효과적으로 다루며 계속 승승장구했다. 다른 기자들, 언론사들은 아마 힐러리 클린턴과 이런 관계를 맺고 싶어할 것이다.”

이제 남은 토론이나 경선은 더 볼 것도 없다며 클린턴 대세론을 기정사실화하는 기사나 기자들의 트윗도 심심찮게 보입니다. 뉴요커의 알렉 맥길리스(Alec MacGillis) 기자는 트위터에 이렇게 남겼습니다.

“이제 경선은 더 볼 것도 없지 않나. 경쟁 다운 경쟁이 있지도 않은데. (It’s time for this to be admitted and to stop pretending there is a race.)”

경선 과정을 생략하자고요? 물론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니겠지만 민주주의에서 선거 과정이 갖는 중요한 의미를 단칼에 무시한 발언 아닙니까? 미국 대통령을 뽑는 일입니다. 최대한 많은 토론을 거치고 후보가 갖고 있는 정책, 신념은 물론 시시콜콜한 것까지도 유권자들이 모두 검증할 수 있게 한 다음 투표에 들어가야 하는 게 민주주의 아닙니까? <복스>의 매튜 이글레시아스도 힐러리 클린턴의 정치력은 그녀와 견줄 만한 후보들을 아예 대선에 뛰어들지 못하게 견제한 데서 빛을 발했다는 식의 글로 경선 과정의 의미를 축소했습니다.

정작 민주당 첫 프라이머리는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이제 첫 토론회를 마쳤을 뿐이죠. 석 달 가까운 시간이 남았는데, 벌써 승패가 결정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보스톤 글로브의 마이클 코헨(Michael Cohen) 기자의 트윗을 통해 주류 언론이 지금 유권자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변화에 얼마나 무감각한지 살펴보겠습니다.

“버니 샌더스는 정말 힘이 넘치는 것 같다. 늘 화가 나 있고, 여기저기에 원한이 넘치는 것 같고. 운동권을 대표할 후보(protest candidate)로는 안성맞춤이겠지만, 전국 선거에서 과연 통할까?”

운동권 대표라고요? 지금 수많은 유권자들의 분노를 버니 샌더스가 대변하고 있다는 걸 코헨 기자는 정말 전혀 모르는 건가요? 미국이란 나라에서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르는 후보가 이 정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냥 어딘가에 화풀이를 할 심산으로 자기 주장만 앞세우는 빨갱이 취급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았을 나라에서 말입니다.

저는 여전히 왜 주류 언론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이토록 읽지 못하고 서둘러 샌더스를 떨쳐내려 하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잘 모르겠습니다. 또 사람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등장과 열풍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도 정치 평론가나 전문가 딱지를 달고 있는 사람들에게 왜 여전히 귀를 기울이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AlterNet)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