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스포츠는 도박이 아니다?
2015년 10월 2일  |  By:   |  스포츠  |  No Comment

인기 종목 스포츠 중계를 보다 보면, 모든 팬과 선수, 구단이 스포츠를 향한 순수한 열정만으로 불꽃 튀는 경쟁을 펼치며 각본 없는 드라마를 써 내려간다고 믿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가끔 캐스터나 해설자가 뜬금없이 “방금 저 장면은 내기를 한 사람들에게는 뛸 뜻이 기쁜 /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이었겠다”라는 말을 꺼내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그 말에 별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 스포츠 경기 중계 중에 가장 많이 나오는 TV 광고가 어떤 것인지 한 번 생각해보세요. 네, 다들 아시다시피 판타지 스포츠 광고들이 정말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습니다. 광고들은 수십만,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상금을 앞세우며 적은 돈을 들여 응원하는 팀과 선수를 고르고 경기를 즐기기만 하면 경기 결과에 따라 거액의 상금을 손에 쥘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프로 구단들이 아예 판타지 스포츠 회사에 투자하기도 하고 공식 스폰서가 되기도 합니다. 미국이니 당연히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은 판타지 미식축구(fantasy football)지만, 다른 종목의 판타지 리그 팬들도 적지 않습니다.

스포츠 도박과 판타지 스포츠가 대체 어떻게 다른지 아리송한 부분이 한둘이 아닌데, 실제로 판타지 스포츠는 모든 종류의 스포츠 도박 행위를 금지한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허가를 따낸 뒤 급성장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네바다 등 몇몇 주를 제외하고 스포츠 도박이 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쟁점은 판타지 스포츠를 도박으로 볼 것이냐 아니냐인데, 판타지 스포츠 회사들은 물론 판타지 스포츠와 도박은 엄연히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운에 맡기는 도박과 달리 판타지 스포츠는 철저한 분석과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 또한 선수들의 컨디션과 팀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들이는 노력에 따라 승패가 정해지는 공정한 게임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2006년에 미국 대부분 주에서 판타지 스포츠는 스포츠 도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들이 내려졌습니다.

저는 판타지 스포츠의 면면을 분석하기 위해 실제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판타지 스포츠 사이트 가운데 하나인 드래프트킹즈(DraftKings)에 가입해 100달러를 내고 판타지 미식축구 리그에 참여했습니다. 몇 주간의 경험을 통해 저는 현행법이 스포츠 도박의 나쁜 점은 전혀 규제하지 못하면서, 반대로 소소한 내기를 통해 그저 스포츠를 더 재밌게 즐기려는 팬들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투자와 관련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복잡한 투자는 언제나 큰손에게 유리하다. 개미 투자자들은 지구력이 부족해 복잡한 투자에 뛰어들었다가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손해를 본다.” 판타지 리그의 상황이 딱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판타지 리그는 단지 운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대신 최신 뉴스를 꿰차고 있고 꽤 복잡한 분석을 통해 선수를 고르는 사람만이 승리할 수 있도록 짜여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주식 시장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구글 주식이나 국채를 사는 건 사행성 투자라며 금지하고 반대로 대기업이나 정부는 방대한 자료 분석을 토대로 외환 시장의 흐름을 분석해 통화 스와프를 하며 마음껏 돈을 굴릴 수 있도록 허용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중잣대이고, 공정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TV 광고만 보면 지금 지갑 속에 있는 10달러로 내가 잘 아는 선수들로 라인업을 짜서 판타지 리그에 참가하면 주말에 100만 달러의 주인공이 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당신이 그저 취미 삼아 달려들어서는 돈을 딸 수 없습니다. 아니, 꽤 스포츠 마니아라고 자평하는 수준이라도 글쎄요, 아마 어려울 겁니다. 판타지 리그에서 돈을 따가는 사람들이 누군지를 살펴보면 그 이유가 명확해지는데, 메이저리그 야구 판타지 리그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전체 참가자의 1.3%가 평균 9,100달러를 참가비로 냅니다. 엄청 많은 팀을 만들거나 상금이 높은 리그에 참가하는 등 많은 돈을 쏟아붓는다는 뜻이죠. (옮긴이: 이들은 아마 판타지 스포츠를 업으로 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들을 업자라 부르겠습니다.) 업자들이 내는 참가비만 전체 참가비의 23%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업자들은 전체 상금의 77%를 가져갑니다. 수익률은 보통 27%에 이릅니다. 투자로 보면 아주 괜찮은 투자죠. 전체 참가자의 1.3%에 불과한 업자들이 탄탄한 수익을 올리는 사이 평균 49달러 정도를 쓰는 소소한 스포츠팬들은 대부분 돈을 잃습니다. 이들의 판타지 리그 잔고는 평균 반토막이 납니다.

업자들의 승리 비결은 무엇일까요? 치밀한 분석일까요? 아니면 그냥 ‘돈 놓고 돈 먹기’일까요? 물론 분석과 전략이 필요합니다. 대부분 판타지 리그에는 연봉 제한이 있습니다. 즉, 라인업에 모든 포지션 별로 최고의 선수만 넣으려다가는 전체 연봉이 한도를 초과하게 됩니다. 주어진 예산을 갖고 그 주 해당 경기에서 최고의 실력을 펼쳐 보일, 가성비가 뛰어난 선수를 골라야 합니다. 선수가 부상을 당하거나 주전 경쟁에서 밀려 벤치 신세가 되어도 판타지 리그의 연봉은 당장 바뀌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꾸준히 뉴스를 보며 선발 명단을 새로 짜지 않았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제가 참여한 리그에 있던 다른 팀에는 실제 부상을 당했거나 후보라서 경기에 못 뛰는 선수가 명단에 있기도 했습니다. 아마 바빠서 뉴스를 챙기지 못한 보통 팬들이겠죠. 이들은 쉽게 ‘승점 자판기’로 전락했습니다.

업자들은 판타지 리그의 토너먼트에서 특히 강한 면모를 보입니다. 판타지 리그 내 여러 게임 중에 인기가 높아 많은 돈이 모이고 상금도 높은 게 대부분 토너먼트인데, 토너먼트에서는 적당히 높은 점수, 꽤 잘 하는 선수 조합만으로는 상금을 따는 데 필요한 연승을 거두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필요한 건 이른바 모 아니면 도 전략으로 버릴 건 확실히 버리고 특정 명단에 특정 성향이 강한 선수를 몰아넣고 대박을 노리는 전략입니다. 적당히 잘하는 팀 10팀으로 전부 다 상금 문턱에서 떨어지는 대신 8팀은 초반에 탈락하더라도 2팀으로 준결승, 결승까지 올라 상금을 타는 게 결과적으로 나은 전략인데, 업자들은 여기에 최적화돼 있습니다.

가성비가 뛰어난 선수를 고르는 일도 제대로 하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류현진 선수의 팀 동료이자 메이저리그 현역 최고 투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클레이튼 커쇼가 완봉승을 따내도 판타지 리그에선 대박이 아닐 수 있습니다. 판타지 리그에서는 아무도 잘 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흙 속의 진주를 싼값에 영입하여 대박을 치는 게 훨씬 효과가 큽니다. 선수의 가능성, 컨디션을 하나하나 분석하는 일은 방대한 작업입니다. 보통 스포츠 팬들은 그런 작업에 몇 시간이고 쓸 여유가 없습니다. 그저 게임을 조금 더 즐기고 싶을 뿐이죠.

당신이 라스베가스에 가면 들어본 적도 없는 게임에 호기심에 돈을 걸기도 합니다. 보통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액수의 적은 돈을 걸어보고 운이 좋으면 횡재를 할 수도 있는 거죠.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의 판타지 스포츠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돈을 딸 생각이라면 적잖은 시간과 여러 팀에 분산 투자할 수 있는 꽤 많은 자본금을 들여야 합니다.

제가 시험 삼아 참가한 판타지 리그에서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13달러를 땄습니다. 열심히 분석하고 한 것도 아닌데 순전히 운이 좋았죠. 하지만 선수들의 기록 하나하나를 따져봐야 하는 복잡한 판타지 스포츠 말고 그냥 친구랑 경기 승패를 두고들 하는 단순한 내기가 허용됐다면 훨씬 더 경기를 즐길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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