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하포드 칼럼] 멀티태스킹: 21세기의 생존술(3/3)
고리(loop)와 할 일 목록
“멀티태스킹”이라는 단어를 사람들이 쓰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이후이지만, 이 단어의 역사는 거의 50년이 되어갑니다. 옥스포드 사전에는 1966년 잡지 <데이타메이션(Datamation)>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컴퓨터를 묘사하며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나옵니다.
사람과 비슷하게, 컴퓨터의 멀티태스킹도 작업의 빠른 전환입니다. 물론 컴퓨터는 훨씬 빠르게 일을 오갈 수 있으며, 일 하나를 방해받았다고 해서 다시 돌아가는 데 20분씩 걸리지도 않습니다.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을 사람처럼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습니다. 폴리곤을 돌리고 문자를 프린터에 전송하는 0.16초 동안 마우스에 신경을 못 썼다고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지요. 마우스를 다룰 시간은 곧 올겁니다. 컴퓨터가 된다는 것은 자이가르닉 효과에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늘 여러 가지 일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이 이런 컴퓨터로부터 무언가 배울 점이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미처 끝내지 못한 일들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요?
“당신이 누군가에게 ‘곧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합시다’라고 말할 때마다, 당신은 뇌 속에 열린 고리(loop) 하나를 만들게 됩니다.” 데이비드 알렌의 말입니다. 그는 이 분야에서 커다란 인기를 끌었던 책 <끝도 없는 일 깔끔하게 해치우기(Get Things Done)>의 저자입니다. “그 고리는 당신이 믿을 수 있는 어떤 시스템에 이 일을 맡길 때까지 계속 돌고 있게 됩니다.”
현대인은 끊임없이 이런 고리를 열어야 할 상황에 처합니다. 우리가 예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 많은 일에 신경써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각각의 일들은 끈질기게 서로를 침범합니다. 어떤 일을 하고 있건, 우리는 무언가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느낌을 떨쳐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는 그대로 우리의 정신에 부담이 됩니다.
“GTD(Getting Things Done)”의 원리는 단순합니다. 바로 이 열린 고리를 닫는 것입니다. 자세한 방법은 더 복잡하지만, 기본 원리는 매우 직관적입니다.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일을 하기 위해 바로 다음 필요한 일을 써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할 일 목록을 주기적으로 들여다보며 자신이 어떤 일도 놓치고 있지 않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방법에 환호했고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최근 심리학자 E J 마시캄포와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왜 사람들이 GTD를 통해 위안을 얻는지에 대한 학문적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이들이 발견한 것은 자이가르닉 효과를 없애기 위해 그 일을 꼭 끝마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저 그 일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놓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그 일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 행동을 기록해 놓음으로써, 마음 속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습니다. 종이 한 장에 모든 걱정, 근심을 붙들어매어 놓는 것이죠.
창조성
과연 여러 가지 일을 빨리 오가는 행동은 나쁘기만 한 것일까요? 물론 페이스북, 이메일, 그리고 문서 사이를 오가는 것만으로도 실제 어느 정도의 정신적 부담을 받게 됩니다.
심리학자 셜리 카슨과 그녀의 학생 저스틴 무어는 최근 빠른 작업전환의 효과를 확인하는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철자바꾸기(anagram) 문제 풀기와 논문 읽기의 두 작업을 시켰습니다. 한 그룹에게는 이 작업을 순서대로 시켰고, 다른 그룹에게는 2분 30초마다 두 작업 사이를 강제로 오가도록 했습니다.
당연하게도, 두 번째 그룹은 150초 마다 새로운 문제에 적응해야 했기 때문에, 철자바꾸기 문제를 다른 그룹보다 많이 풀지 못했고 논문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특이한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들은 더 창조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확산적(divergent)” 사고 시험에서 더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이 시험에는 예를 들어, 특이한 문제에 대해 다양한 여러 가지 답을 쓰게 하는 등의 문제들이 있습니다. 조리기구인 밀대(rolling pin)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나열해 보라든지, 모두가 팔이 셋인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써보라는 등의 문제들 말이지요. 강제로 두 작업을 오갔던 이들은 이 시험에서 훨씬 많은 수의 답을 썼고, 답안 하나하나는 더 창의적이었습니다.
“마치 두 작업을 오간 것이 이들의 창의력에 휘발유를 들이부은 것 같았습니다.” 하버드대학의 겸임교수 카슨의 말입니다. 아직 이들은 이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 시험이 창의력에 대한 테스트로는 너무 단순한 것이라고 지적할지 모릅니다. 카슨은 이 확산적 사고 시험이 소설을 발표하거나 전문적인 쇼를 제작하거나 뛰어난 예술작품을 만드는 등의 능력과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위대한 작품은 특별한 집중력에 의해서만 탄생한다고 믿는 이들은 이 실험결과를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카슨과 그의 동료들은 창조적인 업적과 “잠재억압부족(low latent inhibition)”이라는 상태 사이의 연관관계를 발견했습니다. 잠재억압이란 모든 포유류가 가지고 있는 특성으로, 불필요한 자극을 무시하는 능력입니다. 만약 사무실에서 모든 대화가 들려오고 에어컨의 바람소리에 신경을 써야 하고 창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수가 저절로 세어진다면, 이는 끔찍한 일일 것입니다. 잠재억압은 우리가 이런 상태에 있지 않게 해주는 능력입니다. 곧 세상의 수많은 자극들이 자신을 괴롭히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능력이 부족한 이들이 또한 큰 창의력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뉴요커>는 이런 이들에 대해 다룬 적이 있습니다.
“당신의 뇌 속 인지 작업공간 속에는 많은 정보가 들어오고 있으며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이 정보들이 처리됩니다.” 두 명의 다른 심리학자인 홀리 화이트와 프리티 샤는 주의력 장애(ADHD)로 고생하는 이들에게서도 같은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ADHD 같은 질병을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위의 모든 실험들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들은 적어도 정상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화이트와 샤의 실험에 참여한 이들은 병원에서 ADHA 진단을 받은 대학생들이었으며, 이들은 적어도 병원의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괴로워했던 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제로 작업을 전환했던 것이 우리를 더 창의적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은 놀라운 발견입니다. 우리가 그런 끊임없는 유혹을 받고 있으며, 주의가 쉽게 산만해지는 이들이 더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요.
어쩌면 놀라운 일이 아니겠군요. 상자에 구멍이 많이 나 있다면, 상자 바깥에서 생각하기가 더 쉽겠지요. 다른 상자 사이를 자주 오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것 저것 생각을 바꾸는 것은 생각의 바퀴에 기름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드렉셀대학의 심리학자 존 쿠니오스의 말입니다.
<유레카 팩터(Eureka Factor)>의 저자 쿠니오스는 우리가 작업을 전환할 때 적어도 두 가지 다른 잠재적인 창조적 사고에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한 가지는, 새로운 작업이 나쁜 아이디어를 잊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창의성이 필요한 문제에 있어 우리는 종종 잘못된 답에 부딪힌 후 그 답에 매여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은 이런 상태를 벗어날 수 있게 해주며, 이를 통해 우리는 더 나은 답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다른 한 가지 과정은 “기회주의적 동화(opportunistic assimilation)”라 불리는 것으로 새로운 작업에서 이전 문제의 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쳤던 그 순간이 이 과정의 좋은 예 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아르키메데스는 금으로 만든 왕관이 순전히 순금으로만 되어있는지를 왕관을 부수지 않고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가 풀어야 했던 문제는 이 왕관이 같은 부피의 순금과 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는지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물체를 물에 담금으로써 늘어난 물의 부피를 측정해 왕관의 부피를 측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아르키메데스가 이 아이디어를 떠올린 순간은 바로 자신이 몸을 담구었다가 빠져나올 때 수위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을 볼 때였습니다. 목욕을 하면서 이런 문제를 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멀티태스킹이 아닐까요?
(파이낸셜 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