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와 인구 감소의 상징: 일본의 빈집들
2015년 8월 26일  |  By:   |  세계  |  3 Comments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横須賀市)시에 사는 하네다 요리코 씨는 벌써 10년 가까이 아무도 살지 않는 옆집 마당을 청소하고 멋대로 자라난 나뭇가지를 쳐내는 일을 해왔습니다. 빈집이라도 너무 흉물스러운 폐가처럼 보이는 게 싫어서, 그리고 잡초를 잘 깎아놔야 하네다 씨 집에서 바다를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녀도 두 집 건너 있는 또 다른 빈집까지 돌보지는 못합니다. 그 집 마당은 무성하게 자란 대나무로 뒤덮였습니다. 하네다 씨가 사는 동네만 해도 이렇게 버려진 빈집이 한두 채가 아닙니다. 올해 77살인 하네다 씨는 태풍이라도 한 번 지나가면 아무도 복구하지 않아 더욱 폐가인 것이 확실해 보이는 집들이 많아지면서 치안이 부쩍 안 좋아져 도둑이 자주 드는 것이 걱정입니다.

“어딜 가나 빈집이 너무 많아요. 대부분 사람이 벌써 한 20년은 안 산 집이죠. 문제는 빈집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고요.”

근검, 절약에 있어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일본인들이지만, 버려지는 집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장기간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의 비율은 이미 미국, 유럽보다 높습니다. 현재 일본에는 빈집이 800만 채 정도가 있는데, 그 가운데 거의 절반은 매물로 내놓거나 세를 놓지도 않은 그야말로 다 스러져가는 폐가입니다.

유령의 집이나 다름없는 이런 빈집들은 5년 전 정점을 찍은 뒤 줄어들기 시작한 일본의 인구 문제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향후 50년간 일본 인구는 지금보다 3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젊은 세대가 짊어질 경제적 부담이 전에 없이 높아질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출산 장려책을 써야 한다는 논의도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산업화와 경제 발전을 이룩하는 동안 사실 일본은 한정된 도시 공간에 너무 많은 인구가 모여드는 게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면한 문제는 인구가 줄어들어 이제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집들을 어떻게 처분할 것이냐의 문제로 정반대의 성질이죠.

빈집들의 주인은 부모나 친척으로부터 집을 물려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사는 집이 아니라 팔아도 되는데, 수요가 워낙 없다 보니 팔 길이 없어서 그냥 방치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집을 헐자니 이번에는 철거 비용을 마련하는 게 아무래도 부담스럽습니다. 정부가 올해 심각하게 낡은 집의 철거를 손쉽게 하도록 법을 시행했지만, 빈집은 계속해서 가파른 추세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도쿄 주변 곳곳에 (사람들이 떠난 유령 도시 같은) 여러 개의 디트로이트가 생겨날 것입니다.”

빈집 현상을 연구한 부동산 전문가 마키노 도모히코 씨의 말입니다. 처음에 빈집이 늘어나는 건 주로 시골에 국한된 현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중소 도시로 번지더니, 이제는 수도 도쿄를 비롯한 대도시 근교에서도 빈집이 점점 더 많이 눈에 띕니다.

요코스카가 대표적입니다. 세계 2차대전 이후 급속한 경제 성장기에 요코스카는 수도 도쿄까지 1시간 이내에 통근이 가능한 점, 근처 해군 기지와 자동차 공장 등 젊은이들이 모여 살 만한 요건을 갖춘 곳이었습니다. 자고 나면 땅값이 오르는 통에 사람들은 산 중턱이든 어디든 땅이 있는 곳이면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지금은 모든 게 정반대입니다. 당시 모여들었던 젊은이들은 이미 오래전에 대부분 은퇴했고, 자식들은 부모가 살던 집에 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땅값은 도시가 가장 번성했던 1980년대 말의 30% 수준에 불과합니다. 마키노 씨는 말합니다.

“(자식들에게) 부모의 집은 물려받을 재산이라기보다는 거의 부채에 가까워요. 편리한 도쿄 시내에서 사는 게 낫지 여기서 살고 싶어 하지 않거든요.”

일본의 출산율은 지난 1970년대 인구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대체출산율(2.1) 이하로 내려간 뒤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점점 결혼을 미루고 있고, 여성이 출산,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사회 구조 등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요코스카시는 시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온라인에 “살 만한 빈집 목록”을 만들어 판촉을 대행해주는 겁니다. 이 목록에 집을 올리려면 집주인이 기본적인 보수, 청소는 해야겠죠. 아예 시장에 매물로 내놓지도 않고 버려지는 집이 워낙 많다 보니 공인중개사들도 포기한 집들이 많아 시에서 이런 대책을 내놓은 겁니다. 지금까지 성과는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지은 지 60년 된 작은 마당이 딸린 1층짜리 나무 주택이 새 주인을 찾았습니다. 매매가는 우리돈 650만 원(66만 엔) 정도였습니다. 이밖에 집 넉 채에 새로 세 들어 온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이 가운데 한 명은 근처에 있는 간호 전문대학에 다니는 학생으로 이웃 어르신들을 정기적으로 돌봐드리는 대가로 월세를 할인받았습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빈집을 사는 사람에게 현금으로 보조금을 주거나, 예술가들을 유치해 빈집을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도쿄 북동부의 빈집들에 각종 미술 작품을 전시한 <에치고쓰마리 예술 공간>은 그 가운데 눈에 띄는 사례로 곳곳에 전시된 조각품을 감상하거나, 꿈을 주제로 지어진 “꿈의 집”에서 하룻밤 묵어갈 수도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기타가와 씨는 공간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원래 이 공간이 미술관으로 지어진 게 아니죠. 하지만 폐허가 된 집에 예술 작품을 채워 넣음으로써 공간이 보존되는 효과를 얻었다는 게 중요합니다. 이런 공간을 지켜나가는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양한 방식의 공간 재활용은 생각보다 여의치 않습니다. 매년 평균 1백만 명씩 인구가 줄어 향후 20~30년 안에 현재 1억 2,700만 명인 일본 인구는 1억 명으로 떨어질 전망입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어느 하나 효과를 본 것이 없고, 상황이 이런데도 일본 여론은 외국인들의 이민을 받아들이는 데 여전히 부정적입니다. 일본 과학기술위원회(Science Council of Japan) 위원장이자 도시 계획을 가르치는 오니시 타카시 교수는 정부가 결국 기반 시설 유지비를 줄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지금 일본에는 기반 시설이 지나치게 많아요. 인구가 줄어들어 빈집이 계속 늘면 모든 집, 마을, 도시에 지금과 같은 상하수도, 도로, 전기 등 기반시설을 유지하는 것이 점점 낭비가 되어버리고 말 겁니다. 어느 순간 정부는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할 겁니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빈집을 철거해버리는 겁니다. 유령의 집처럼 남아 마을에 안 좋은 이미지를 가중하느니 그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버려진 집이라도 집 주인이 엄연히 있는 사유 재산인데, 주인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많고 찾더라도 주인이 철거 비용을 대지 않으려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네다 씨가 사실상 돌보고 있는 옆집이 그런 경우인데, 이 집은 주인이 누군지 동네 사람들이 다 압니다. 하네다 씨 집에서 10분 남짓 떨어진 아랫마을에 사는 올해 74살 된 우타가와 미오코 씨의 남편이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도쿄에서 요코스카로 이사 온 고모의 거처로 삼으려고 샀던 집이죠. 고모는 지금은 양로원에 머물고 있습니다. 집에 따라 나오는 세금은 우타가와 씨가 꼬박꼬박 내왔지만, 하네다 씨가 건들지 않으면 집안 모습은 영락없는 흉가로 전락하고 맙니다. 욕조가 있던 자리에는 이끼가 슬었고, 욕조는 하네다 씨가 정돈해놓은 잔디밭 한편에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돈 들여 수리한다고 해도 누가 이 집에 살려고 하겠어요?”

우타가와 씨는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다 최근 시에서 3천만 원 가까운 철거 비용을 대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여 올가을 이 집은 철거될 예정입니다. 요코스카시의 도시개발국장 시마 노리유키 씨는 시에서 한정된 예산을 가장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제일 낡은 집들이 많은 동네를 우선 골랐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예산이 결국 다 세금에서 나오는 건데, 무언가를 새로 짓는 일 말고 철거하는 일에 돈을 쓴다고 하면 사람들이 달가워할 리가 없으니까요.”

일본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의 빈집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해 지난 5월 새로운 법을 시행했습니다. 일단 문제를 악화시키던 세제를 개편했습니다. 기존 토지세는 집 짓는 걸 장려하기 위해 같은 땅이라도 땅을 놀리고 있으면 무언가 지어둔 땅보다 여섯 배나 더 비싸게 매겼습니다. 이러니 빈집을 철거해서 빈 땅이 되면 토지세가 크게 올라 사람들은 빈집을 그대로 방치하는 쪽을 택한 겁니다. 이에 일본 정부는 빈집을 철거하는 주인에게 세제 혜택을 주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세제 개편보다 더욱 근본적으로 집과 건물을 재활용하는 데 인색한 문화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후지쓰 연구소의 주택 전문가 요네야마 히데타카 씨는 최근까지만 해도 일본의 주택은 대개 30년짜리로 지어졌다고 말합니다. 건축 자재나 기술이 발전해 30년이 지나도 비교적 멀쩡한 집인데도, 특히 도시에서는 낡은 집에 대한 수요가 높지 않아 철거되는 일이 많았다는 겁니다. 빈집이 빠르게 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일본에서는 매년 80만여 채의 주택이 새로 지어집니다.

“경제성장기에는 새집에 대한 수요가 높아도 기존의 집들이 방치되지 않았죠. 하지만 20년 후에 전체 주택의 1/4이 빈집이 될 거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고령화에 인구가 줄어드는데, 아무도 낡은 집에 살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는 해결할 수 없는 난제로 남을 겁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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