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 속 애증의 돼지고기
돼지는 임신 기간이 짧아 번식이 빠르고, 고기는 저장과 보관이 용이합니다. 이렇게 돼지는 훌륭한 가축으로서의 조건을 잘 갖추고 있지만, 인류의 역사는 “돼지 사랑”과 “돼지 혐오”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인간과 돼지의 소화기관은 상당히 흡사합니다. 둘 다 고기와 뿌리 채소, 곡식을 좋아하는 잡식성이죠. 약 1만 년 전, 인간과 돼지가 처음 만나게 된 것도 이런 공통점 때문입니다.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인류가 지금의 터키 아나톨리아 지역에 정착하자, 돼지들이 음식 찌꺼기를 먹기 위해 인간의 마을로 몰려들어 밭을 망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류는 이런 돼지들을 길들여 가축으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인간과 돼지 간의 관계가 나빠진 것은 기원전 1천 년 정도의 일입니다. 그 기록은 돼지를 “불결하다”고 묘사한 성경 레위기에도 남아있습니다. 이스라엘인이 먹을 수 있는 “발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에 소와 양, 염소는 들어갔지만, 돼지는 제외되었죠. 7세기, 코란도 돼지고기를 금지합니다. 덕분에 오늘날 인류의 4분의 1이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돼지고기를 금지한 종교 교리 뒤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선모충병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있지만, 이는 아마 사실이 아닐 겁니다. 고대 팔레스타인에 선모충이 있었다는 증거도 없고, 돼지고기만 위험했을리도 없으니까요. 사막에서 돼지를 키우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는 학설과, 인간이 먹을 음식을 돼지가 먹기 때문이었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가난한 평민들이 집에서 돼지를 키워 쉽게 고기를 얻게 되면, 먹을 것을 장악해 나라를 다스리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통치자들이 돼지고기를 금지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모두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는 학설이지만,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아마도 레위기에 담긴 내용일 겁니다.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이란 풀을 먹는 동물을 의미합니다. 섬유질을 잘 소화하지 못하는 돼지는 풀 대신 열매와 곡식, 심지어는 썩어가는 고기, 인육, 배설물도 먹습니다. 돼지가 더러운 동물로 낙인찍힌 것은 아마도 더러운 음식을 먹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이 때문에 유대인은 물론,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에서도 지배계층은 돼지고기를 절대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중해 반대편의 로마인들은 전혀 달랐죠. 돼지고기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수유 중인 암퇘지의 젖통마저 식재료로 활용했습니다. 이런 차이는 돼지들이 처한 환경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근동의 건조한 땅에서 돼지들은 도심의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니는 존재였지만, 이탈리아 반도에는 숲이 많고 곡식도 풍부했으니까요. 비슷한 이유로, 돼지들이 숲에 살았던 중세 초반 유럽에서 돼지고기는 귀족의 음식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1300년에 이르러 숲이 사라지자 돼지들은 척박한 환경에 처하게 되었고, 영국과 아일랜드 등지의 문헌에서 점차 더러운 동물로 묘사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돼지는 깨끗한 옥수수와 콩을 먹지만, 사람들은 조금 다른 이유로 돼지고기를 피합니다.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좁은 철제 우리 안에서 임신과 출산만을 반복하는 등, 돼지들이 끔찍한 환경에서 사육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일부 동물 보호 단체들만 하던 이야기가 이제는 주류의 담론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대형 체인인 치폿레(Chipotle)는 거래처 돼지 농장에 엄격한 사육 기준을 요구하고, 그와 같은 기준을 충족하는 농장이 없는 지역의 매장에서는 돼지고기 메뉴를 판매하지 않습니다. 맥도날드 등 다른 업체들도 돼지 농장에 사육 방식을 바꿀 것을 요구해, 대형 돼지고기 생산 업체들의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소규모 생산 업체 가운데는 보다 적극적으로 돼지들을 풀밭에 방목해 기르는 곳도 생겼습니다. (NP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