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타 인간극장 – 뒤바뀐 쌍둥이의 삶 (3)
2015년 7월 15일  |  By:   |  세계  |  No Comment

옮긴이: 27년 전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Bogotá)의 한 병원에서 실수로 일란성 쌍둥이 신생아 두 명이 뒤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일란성 쌍둥이가 아니라 이란성 쌍둥이 두 쌍으로 서로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두 쌍둥이, 네 청년은 24살이 되었을 때 우연히 서로를 알게 되어 한자리에 모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이번 주 총 여덟 편에 걸쳐 소개합니다. 이 기사는 지난주 뉴욕타임스에서 줄곧 이메일로 가장 많이 공유된 기사 1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2부 보기

대면식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되는 순간, 혹은 그로부터 며칠 안에, 하나의 생명체로 자라나는 과정에서 분화되는 세포가 가끔 밖으로 튀어나와 아예 새로운 생명체로 자라날 때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일란성 쌍둥이는 그렇게 생겨납니다. 같은 수정란, 세포로부터 갈라졌기 때문에 이들의 유전자는 정확히 일치합니다. 반면 이란성 쌍둥이는 우리가 알다시피 태어나는 과정부터 다릅니다. 각기 다른 정자가 각기 다른 난자를 만나 수정되고 태아로 자라나는 겁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들은 부모가 같은 형제자매와 더 가깝습니다. 유전적으로 많은 걸 공유하고 있다고 해도 우리가 쌍둥이하면 흔히 떠올리는 그런 닮은꼴은 아닙니다.

호르헤와 윌리암, 까를로스와 윌베르는 원래 두 일란성 쌍둥이지만, 각기 엇갈려 호르헤와 까를로스, 윌리암과 윌베르라는 쌍이 되어 두 이란성 쌍둥이로 자랐습니다. 태어난 지 25년이 지나서야 이들은 사실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고, 자신과 꼭 닮은, 유전자도 똑같은 사람이 있다는 이 세상에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서로 대면하기 전부터 이 기구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모습도 피를 나눈 쌍둥이들끼리 비슷했고, 형제로 자라온 이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즉, 까를로스와 윌베르는 휘몰아칠 혼란을 두려워했습니다. 더 깊이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습니다. 반면에 호르헤와 윌리암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운명에 맞섰습니다. 하네스는 호르헤와 윌리암의 만남을 먼저 주선했습니다. 윌리암이 가게 영업이 끝난 뒤 갈 수 있는 저녁 9시, 장소는 보고타 시내의 한 광장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만남이 두려워 피하려고만 하던 윌베르도 궁금함을 못 이기고 호르헤를 만나러 가는 윌리암을 따라나서기로 했습니다. 윌리암은 3시쯤 호르헤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만날 때 (까를로스와 똑같이 생긴) 윌베르와 하네스, 그리고 사촌인 브리안이 같이 나가도 괜찮겠냐고 물었고, 호르헤는 흔쾌히 좋다고 답했습니다. 통화하면서 둘은 서로의 목소리가 생각만큼 똑같지 않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산탄데르 지방의 사투리 억양이 남아있는 윌리암의 목소리가 훨씬 더 허스키했습니다. 윌리암은 시골 출신들이 대화할 때 쓰는 존칭(señor)을 썼습니다. 호르헤는 윌리암의 목소리도, 매너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약속 시각이 다가올수록 쌍둥이는 초조함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윌리암은 평소보다 일을 일찍 마치고 머리를 단정하게 자른 뒤 그가 가진 스웨터 중 가장 좋은 검은색, 회색 줄무늬 스웨터를 입었습니다. 군대 제대 이후 늘 그래왔듯 권총을 품에 넣고 윌리암은 초조함에 서성거렸습니다. 호르헤도 긴장되는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까를로스에게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지만, 까를로스는 오늘 정말 취소할 수 없는 중요한 데이트가 있다고 했습니다. 호르헤는 회사에서 우연히 마주친 대학 친구에게 자기를 응원해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약속한 시각, 광장에 먼저 도착한 호르헤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서 있었습니다. 너무 떨려서 호흡을 가다듬는 것도 어려웠고, 두 손에는 땀이 흥건했습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어디선가 한 무리의 사람들이 호르헤를 향해 걸어왔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것이지만, 호르헤는 단번에 윌리암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생김새도 같았지만, 걸음걸이도 발의 각도와 동작이 자신의 걸음걸이와 똑 닮았습니다.

만남에 따라 나온 브리안은 둘이 처음 대면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핸드폰으로 촬영했습니다. 음 소거를 해놓기라도 한 것처럼 처음에 둘 사이에는 별말이 오고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정해진 의식을 치르듯, 아니면 잘 짜인 각본대로 판토마임이라도 하듯 윌리암이 먼저 호르헤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이곳저곳 얼굴을 살필 때 호르헤가 시선을 돌려 땅을 쳐다봅니다. 그러다가 윌리암이 마치 ‘이번엔 네 차례야’ 하는 것처럼 시선을 피해 주면, 이번에는 호르헤가 윌리암의 생김새를 찬찬히 살펴봅니다. 그러다 둘이 서로 눈이 마주치면, 둘은 멋쩍은 웃음을 짓고 이내 시선을 돌립니다. 그래도 서로 주고받은 눈길은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건네는 시선보다는 훨씬 친밀하고 따뜻했습니다. 너무 설레는 마음에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는 연인, 혹은 연인이 되기 직전 사랑 고백을 앞둔 이들처럼 호르헤와 윌리암 사이에는 알싸한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호르헤는 긴장이 가시지 않아 씹고 있던 껌을 더 빨리 씹으며 윌리암을 물끄러미 바라봤습니다. 뺨을 살짝 꼬집어봅니다.

‘그래, 분명 이건 나야.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저 친구는 내가 아니고.’

윌리암은 어색함을 피하려는 듯 짝다리를 짚고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습니다. 나중에 호르헤는 이 순간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마치 거울을 바라보는 것 같았어요. 그냥 거울이 아니라 거울 저편에는 내가 사는 이곳과 똑같은 또 하나의 우주가 펼쳐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죠.”

윌리암을 바라볼 때보다 (까를로스와 똑같이 생긴) 윌베르를 바라보는 건 호르헤에게 아무래도 좀 더 쉬웠습니다. 윌베르는 정말 까를로스와 똑같이 생겼습니다. 호르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죠. 안경을 쓰고 있는 까를로스의 사진을 본 적이 있는 윌베르는 호르헤의 생각을 읽고 키득키득 웃으며 말합니다.

“안경만 쓰면 (까를로스와) 똑같겠지?”

호르헤는 그 말보다도 윌베르의 웃음소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까를로스의 웃음소리와 너무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쌍둥이 형제 윌리암과 똑같이 생긴 ‘진짜 쌍둥이’ 호르헤를 두 눈으로 직접 본 윌베르는 까를로스가 궁금해졌습니다. 호르헤는 까를로스에게 지금 다 같이 집으로 간다고 얘기했습니다. 이들은 택시 두 대에 나눠타고 호르헤와 까를로스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밤 10시쯤, 까를로스는 초인종 소리를 듣고 현관문을 열러 내려갔다가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호르헤가 그 사진 속 인물들과 함께 집으로 온다고 미리 알려줬지만, 막상 두 눈으로 그들을 보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던 겁니다. 그냥 낯선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껏 자기가 살아온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릴 것만 같은 괴물처럼 느껴졌습니다.

“문 열어 까를로스!”

호르헤의 목소리 뒤로 어딘가 멋쩍은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까를로스는 너무나 익숙한 자신의 웃음소리를 똑같이 내는 저이와 마주하는 게 다시 한번 두려워졌습니다.

“못 열겠어. 난 말이지, 두려워.”

까를로스가 말했습니다. 순간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 정적을 깬 건 다시 한번 멋쩍은 웃음소리. 이번에는 윌베르와 까를로스가 동시에 웃었습니다.

“그러지 말고 문 열어 까를로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고 하신 어머니의 가르침은 이럴 때 써먹어야 하는 걸까요? 결국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겠죠. 정해진 진실을 바꿀 수는 없을 테니까요.

까를로스는 문을 열었습니다. 한 명 한 명 집으로 들어오는 이들을 까를로스는 꿈속을 헤매는 사람처럼 멍하니 쳐다봤습니다. 내가 아는 호르헤가 있었고, 호르헤랑 똑같이 생긴, 그러니까 처음 보는 스웨터를 차려입은 호르헤가 옆에 또 있었습니다. 말 없는 호르헤, 호르헤보다 어딘가 자신감이 좀 없어 보이는 호르헤. 두 명의 호르헤 옆에는 웬 여자 한 명, 남자 한 명, 그리고 문제의 그 녀석이 있었습니다. 까를로스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을 바라보았습니다. 복사기로 찍어낸 듯 똑같은 모습을 까를로스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까를로스와 윌베르는 서로를 흘끗 쳐다보다 눈이 마주치자 이내 시선을 회피합니다. 둘의 눈가엔 금세 촉촉히 눈물이 고입니다. 윌베르가 무언가 말을 했지만, 까를로스는 먹먹해진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윌베르가 하는 말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윌베르의 말 중에 어딘가 어색한 발음은 선명히 귀에 와서 꽂힙니다. 혀를 굴려 발음해야 하는 스페인어의 R 발음을 제대로 못 하고 대신 거친 D 발음을 하는 윌베르를 보고 까를로스는 다시 한번 가슴이 무너집니다. 까를로스도 똑같은 문제로 씨름했고, 어렸을 때 발음교정 치료를 받고 나서야 제대로 R 발음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넷은 본격적인 검증을 시작합니다. 이런저런 질문을 해가며 정말 일란성 쌍둥이끼리 성격도 똑 닮았는지를 확인해본 거죠.

어렸을 때 누가 제일 많이 울었어? 까를로스랑 윌베르!

달콤한 걸 좋아하는 건? 호르헤랑 윌리암!

누가 더 계획적으로 살아? 까를로스랑 윌베르!

여자만 보면 쉽게 사랑에 빠지는 건? 까를로스랑 윌베르!

강인한 건 어느 쪽이니? 호르헤랑 윌리암!

어떤 질문을 하든 어김없이 쌍둥이끼리 짝이 지어졌습니다. 모든 게 어쩜 이렇게 같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똑같은 점들만 줄줄이 사탕으로 나오자, 까를로스는 뭔가 다른 점은 없는지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찾았다! 나랑 윌베르랑 손이 다르게 생겼네.”

한눈에 봐도 까를로스의 손보다 큰 윌베르의 손에는 정육 코너에서 고기를 썰다가 난 상처들, 그 전에 어렸을 때 들에서 일하며 낫에 베인 상처투성이였습니다. 까를로스의 손은 곱디고왔습니다. 콜롬비아에서 남자들은 좀처럼 받지 않은 네일케어도 받아 손은 매끈했고, 손톱도 깨끗이 정리돼 있습니다.

윌리암은 호르헤에게 호르헤의 엄마, 즉 자신의 생모에 관해 물었습니다. 어떤 분이셨냐, 지금은 어디 계시냐. 호르헤는 윌리암의 눈빛을 찬찬히 살피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냅니다. 4년 전에 위암으로 돌아가셨다고. 그리고는 엄마의 젊었을 적 사진을 보여줍니다. 긴 머리에 아름다운 눈, 무언가에 골똘히 집중하고 있는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진입니다.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를 사진으로 마주한 윌리암의 가슴은 또 한 번 무너집니다. 몇 분 동안 윌리암은 말을 잇지 못합니다.

그날 밤 네 명은 대체로 밝은 분위기 속에서 난생처음 마주한 모험을 마음껏 즐기듯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얘기하면 할수록, 별 게 다 닮았다는 걸 알아내는 재미도 쏠쏠했죠. 그러나 각자의 마음 한편에는 형용하기 어려운 상실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가족과 보내지 못한 시간, 잃어버린 기회, 잃어버린 시간, 그리고 출생의 비밀에서 오는 상실감은 모두를 헤어나오기 힘든 늪에 빠뜨릴 거라는 걸 호르헤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호르헤는 적어도 그날 밤, 역사적인 첫 대면에서만큼은 그런 상실감이 모두를 휘감지 못하도록 분위기를 띄우려고 애를 썼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오늘을 계기로 우린 새로운 가족을 얻었고 대가족이 됐다는 거야!”

누군가 운을 뗐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축구팀은?”

다행히도 네 명의 입에서 이구동성으로 같은 팀 이름이 나왔습니다.

“아틀레티코 나시오날(Atletico Nacional)!”

자정 즈음 손님들은 떠났고, 집에는 호르헤와 까를로스만 남았습니다. 텅 빈 거실에 남은 둘은 서로를 바라봤습니다. 적막이 흘렀습니다. 달라진 건 하나도 없지만,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까를로스가 적막을 깨고 말했습니다.

“이제 우린 어떡하지?”

사실 말이 나오기 전에 먼저 적막을 깬 건 까를로스의 흐느끼는 소리였습니다. 까를로스는 호르헤에게 다가가 호르헤를 꼭 껴안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계속 우리가 형, 동생으로 지냈으면 좋겠어.”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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