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치안 한류’, 역풍 맞지 않으려면
대한민국 건국 이래 경찰은 늘 권력의 편이었습니다. 특히 부당한 독재 권력에 저항하던 국민들은 권력의 주구와도 같던 경찰의 부당한 폭력과 범죄에 짓밟히고 분노했습니다. 1980년대 민주화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에 나선 학생과 시민들을 경찰이 어떻게 진압했는지 많은 국민들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구타, 물고문이 아주 일상적인 심문 기법이었습니다. 1980년 5월 수백 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은 광주 민주화운동을 계엄군과 함께 잔혹하게 진압한 것도 경찰이었습니다. 1980년 광주가 기점이 되어 민주화 운동은 계속되었고 1987년 한국 사회는 마침내 민주화를 이뤄냅니다. 민주화가 된 뒤에도 수많은 시위가 있었고,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한 적도 있었지만 대체로 시위 양상이 겉잡을 수 없이 폭력적으로 번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1999년부터 경찰에 남은 독재 정권의 유산을 청산하자는 취지에서 경찰 개혁이 시작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최루가스, 최루탄 사용을 금지했고, 이후 환한 웃음을 띄고 있는 귀여운 마스코트 포돌이가 제작되는 등 경찰은 국민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한 홍보 업무에도 노력을 기울입니다. 또한 시위 현장에 무장하지 않은 여경들로 폴리스라인을 쳐 시위가 폭력적으로 번지는 걸 차단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한국 경찰이 새롭게 들고 나온 야심찬 계획은 바로 ‘치안 한류(K-police wave)’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드라마, 한국 가요 등 대중문화 바람을 일컫는 한류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한국 경찰의 훌륭한 치안유지 기술과 비법을 다른 나라에 알리고, 필요하면 다른 나라 경찰에 노하우를 전수하겠다는 것입니다. 지난 2005년부터 한국 경찰청은 니제르, 인도네시아 등 69개 나라에서 경찰 1천여 명을 초빙해 교육했고, 관련 예산은 최근 4년 사이 다섯 배로 늘어나 200억 원을 넘었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적극적으로 전문가 300여 명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세계 여러 나라에 파견할 계획인데, 시위 관리 전문가들이 아랍에미리트와 오만 경찰을 훈련시킬 예정이고, 과테말라 경찰은 한국 경찰의 도움을 받아 사이버범죄수사대를 신설할 계획입니다.
경찰청의 김성근 외사국장은 격동의 근대화 시기를 겪으며 경찰이 쌓은 노하우 덕분에 다른 나라 경찰에 필요한 경우 도움을 줄 수 있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개발도상국에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민주주의와 번영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교훈을 알리는 것 또한 궁극적인 목표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 대단히 안전하고 치안이 좋은 편인 한국이 그 좋은 예입니다. 낮은 범죄율은 관광객 유치에도 물론 도움이 됩니다. 발달된 IT 기술 덕분에 사이버범죄 수사에 필요한 장비, 네트워크도 갖추고 있습니다.
일단 수출 실적만 놓고 보면 ‘괜찮은 장사’로 보입니다. 2013년과 2014년 2년 동안 한국 기업은 물대포와 시위진압용 경찰 방패 등 650억 원 어치 장비를 오만에 수출했습니다. 하지만 경찰대학 교수를 역임했던 표창원 박사는 걸프 국가들의 민주화 시위대가 자신들을 진압하는 장비가 한국산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생겨날 역풍이 우려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범죄학자 문병욱 씨는 또한 시위를 관리하고 진압하는 기술이 권위주의 정권의 독재자 혹은 정당하지 않은 권력이 반대 목소리를 잠재우는 수단으로 쓰일지도 모른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한국 정부는 민주화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바레인 정부에 시위진압용 장비 수출을 금지했습니다.
김성근 국장은 이같은 우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장비가 없었다면) 더욱 폭력적인 진압 말고는 경찰에게도 달리 방법이 없을 수도 있다며 한국 경찰의 선진화된 장비들은 오히려 시위대의 안전도 보장해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한국 경찰이 여러 차례 시위를 잇따라 강경 진압한 사실과 김 국장의 말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1주기에 경찰은 무려 경찰버스 470대와 총 경력 1만 3천여 명을 동원해 시위대의 행진을 원천 봉쇄했습니다. 엄청난 양의 호신용 최루액이 살포됐습니다.
표창원 박사는 경찰의 이러한 강경 진압은 치안 유지보다도 정치적인 목적이 다분하다고 말했습니다. 시민들이 경찰의 이런 과잉 대응을 못마땅하게 여길수록, 결국 경찰은 여전히 권력의 편이라는 평가가 이어질 것이고, 어쩌면 예전 독재 정권의 주구 노릇을 하던 때의 기억을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 정도 상황까지 간다면, ‘치안 한류’의 야심찬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 것입니다. (Econom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