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자살: 어떻게 사회적 완벽주의는 남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가(2/4)
2015년 5월 20일  |  By:   |  과학  |  1 comment

다른 사람의 기대와 그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을 때 느끼는 열패감의 영향은 오늘날 자살률이 급격히 올라간 아시아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자살률이 높은 한국이 그 대표적인 지역입니다. 2011년의 조사 결과 한국에서는 하루 평균 40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2014년 정부 산하 한국 건강증진재단 조사에 따르면 10대의 절반 이상이 지난 1년 동안 자살을 생각해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하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 김의철 교수는 한국의 높은 자살률의 이면에 급격한 성장과 도시화가 낳은 고통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60년 전 한국은 지구 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는 당시의 한국을 2010년 대지진을 겪은 아이티에 비유합니다. 대부분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오늘날 90%가 넘는 비율로 도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2,500년간 지속되어오던 유교의 영향을 받은 소규모 농경 사회에 적절한 가치관과 문화를 붕괴시켰습니다. “협력과 협동이 중요했습니다. 서로 돌보고 나누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시의 삶은 치열한 경쟁과 성과 중심이라는 말로 대표됩니다.” 성공의 개념이 뒤바뀐 것입니다. “이제 자신의 지위, 권력, 부가 곧 자신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문화에서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그런 변화가 나타났나요? “농사를 짓던 유학자들은 매우 현명했으나 동시에 가난했습니다. 우리는 부자가 되고 싶었고, 결국 근본 없는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죠.” 그는 결과적으로 과거에 대한 존중이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한국은 또한 성공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길며 이는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습니다. 입시에 실패한 10대는 자신의 인생을 실패한 것이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존중 받는 기업은 삼성입니다.” 그들은 신입사원의 80-90%를 단 세 군데 대학에서 뽑습니다. “만약 그 세 군데 중 하나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대기업에 입사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집니다.” (다른 영문 자료들을 볼 때 그의 이 말이 아주 정확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중앙일보의 한 기사는 삼성이 특정 대학을 선호하는 것은 사실임을 말해줍니다.)

학생들이 그저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공부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뛰어난 학생은 교사와 부모, 친구들로부터 존중을 받습니다. 인기를 끌게 되고 이성으로부터도 호감을 얻습니다.” 사회적으로, 그리고 다른 측면에서 이 정도 수준의 완벽함을 달성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엄청납니다. “자존감, 사회적 존중, 사회적 위치 등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실패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요?”


드러몬드는 아르바이트와 공부외에도 다양한 자원봉사활동을 했고, 이는 가족과 보낼 시간을 더욱 줄였습니다. 리비는 그가 너무 일을 많이 한다고 불평하곤 했습니다. 자신을 무시하는 느낌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당신은 나보다 자신의 경력에 더 관심을 가진 것 같아요.” 학교를 바꿔가며 자주 이사를 다녔지만 그녀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드러몬드가 그녀의 부정을 처음 발견한 것은 그가 지역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할 때였습니다. 한 여성이 그에게 편지 뭉치를 건넸습니다. “당신 아내가 내 남편에게 보낸 편지예요.” 그들은 육체적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편지들은 리비가 그 남자에게 완전히 빠져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드러몬드는 집으로 돌아가 아내를 만났습니다. 리비는 그들의 관계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편지들은 모두 그녀가 직접 손으로 쓴 것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일들이 그 남자의 집 근처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그 남자의 집 근처로 차를 몰고가 그의 집 밖에서 한 번이라도 그를 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드러몬드는 리비와 헤어질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렸고, 그녀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그녀를 용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드러몬드는 주말을 이용한 강좌를 듣기 위해 종종 집을 비웠습니다. 하루는 그가 돌아왔을 때 리비의 차에 사고가 나 있었고 동네 경찰이 휠을 갈아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가 매우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뒤, 11살 난 딸은 그에게 울면서 엄마가 그 경찰과 침대에 있는 것을 봤다고 말했습니다.

리비의 다음 연인은 제약회사의 세일즈맨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때 실제로 집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2주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드러몬드는 이 모든 일을 그저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일을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도 없어고 있었다 하더라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부인이 바람을 핀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고백하기 힘든 그런 종류의 일입니다. 리비는 드디어 결별을 원했습니다.

그들이 결국 이혼했을 때, 리비는 집과 아이들, 그리고 다른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드러몬드에게 남은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학교의 누구도 이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드러몬드는 여전히 성공적인 교장이자 귀여운 세 자녀를 둔 존경스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의 이혼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직원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부인이 떠났다고요?”

그 당시 그는 마을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농장의 난방이 되지 않는 작은 방을 빌려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남자로서 자신의 위신이 떨어졌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파산했습니다. 그는 부인을 바람나게 한 남자이자 다른 이의 기대를 저버린 남자로서 자신이 인생에 실패했다고 느꼈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몇 가지 약을 주었습니다. 그는 이 답답한 현실을 벗어날 가장 쉬운 방법은 그것 한 가지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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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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