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초단편 소설의 세계
2015년 4월 22일  |  By:   |  문화, 세계  |  1 comment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초단편 소설, 이른바 “플래시 픽션(flash fiction)”이라는 장르를 창시한 이후 꽤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한 번도 안 신은 아기 신발 팝니다(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는 헤밍웨이의 여섯 단어 소설로 널리 알려졌죠. 21세기, 스마트폰을 손에 붙인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스크린에 뜨자마자 여운을 남길 새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초단편 소설은 그야말로 딱 어울리는 장르입니다.

2012년에는 제니퍼 이건이 <뉴요커>지의 트위터 계정에서 소설을 연재했고, 작년에는 장편소설로 유명한 작가 데이비드 미첼이 280개의 트윗으로 완성된 이야기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트위터에는 이제 이런 종류의 짧은 이야기들이 넘쳐납니다. 2013년에는 이 분야의 거장인 리디아 데이비스가 단일 작품이 아닌 활동 자체로 인정받아 맨부커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새 책 “플래시 픽션 인터내셔널”은 각국의 초단편 소설들을 엮은 책입니다. 초단편 소설이라는 장르가 더 이상 신선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페트로니우스, 서머셋 몸과 같은 이름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조금 놀랍습니다. 초단편 소설은 이처럼 현대적이지만, 동시에 고전적인 장르입니다. 초단편 소설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이 장르를 정확히 정의내리기가 어렵다는 점일 것입니다. 고대로부터 인류는 독자에게 상상의 여지를 주는 짧은 이야기들에 매혹되어 왔습니다. 발라드나 민간설화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짧은 이야기들이 억압된 자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한다는 점도 놀랍습니다. 이 책에는 칠레와 시리아 등지의 작가들이 현대의 어두운 정치 상황을 비유적으로 그려낸 이야기들이 실려있습니다. 영어권의 유명 초단편 작가들의 작품이 다 실려있는 것은 아니지만, 낯선 이름들을 접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입니다. 또한 이 장르가 세계 어디서든 통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죠. 초단편 소설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미크로, 덴마크에서는 코르트 프로사, 불가리아에서는 미크로 라즈카즈라고 불립니다. 중국어에는 “연기가 피어나 사라지는 동안의 이야기”라는 뜻을 가진 말이 있죠.

편집자들은 이 책에 “담배 한 개비 피우는 동안 즐길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담았다고 소개합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독자라면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는 동안”이겠죠. 어쨌든 그런 느낌으로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입니다.

제목: 플래시 픽션 인터내셔널: 전 세계에서 온 아주 짧은 이야기들(Flash Fiction International: Very Short Stories from Around the World)/ 제임스 토머스, 로버트 샤파드, 크리스토퍼 메릴 편저/ W.W. 노튼 출판사/ 277페이지.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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