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케인즈의 일곱가지 삶
2015년 4월 1일  |  By:   |  경제  |  7 Comments

케인즈의 전기를 쓰면서 경제학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마치 모짜르트의 전기에서 음악을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립니다. 그러나 리차드 데이븐포트-하인즈는 케인즈가 실로 경제학 이외의 매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였다는 것을 전기를 통해 보여줍니다.

케인즈의 블룸스버리 모임 동료인 레너드 울프는 케인즈를 “유명인, 공무원, 사색가, 사업가, 언론인, 작가, 농부, 그림 매매상, 정치인, 극장관리인, 책 수집가, 그리고 여남은 다른 직업”을 더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 역시 “경제학자”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 특이하지요. 이 책도 케인즈의 일곱가지 삶을 다루면서 경제학자로서의 그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사실 데이븐포트-하인즈는 의도적으로 이 부분을 제외했습니다. 케인즈가 “경제학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 기술적이고 복잡한 주제라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실제로 경제학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흥미로운 주제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데이븐포트-하인즈에게는 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케인즈에게 경제학이 그저 이론적이고 수학적인 대상이 아니라 그가 경험한 다양한 삶의 결과물임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중류 지식인 계층에서 태어난 그는 날 때부터 진보적인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튼에서 왕립장학금을 받은 그는 캠브리지 킹즈 칼리지에서 “사도들(The Apostles)”이라는 준 비밀 토론 클럽의 멤버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철학을 이야기했고 화로 앞에 앉아 돌아가며 논문을 읽었습니다. 그를 동시대의 가장 위대한 “설득자”로 만든 “명료한 설명의 비교불가능한 힘(unparalleled power of lucid exposition)” (Austin Robinson)을 그는 이 클럽을 통해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이 능력은 영국이 일차대전에 참전한 첫 날 당시 중앙은행장이었던 로이드 조지에게 은행면허법(the Bank Charter Act)을 폐지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설득하면서 처음 역사 속에 흔적을 남깁니다. 이를 통해 그는 다수의 의견을 물리치고 전쟁 초기에 있었던 재정위기의 위험으로부터 영국을 구해내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케인즈는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영국이 전쟁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돕기 위해 재무부에 재입대하였습니다. 그는 전쟁의 참상과 국수주의, 징병제도 등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기에 자신이 영국의 참전을 돕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괴로워 했습니다. 특히 그는 에드워드 시대 영국이 가졌던 진보적인 분위기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리고 베르사유 평화조약에 대한 실망은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연합국이 독일에게 요구하는 터무니없는 배상금에 항의하기 위해 자진사퇴했습니다.

그는 평화조약에 대한 비난을 담은 베스트셀러 “평화의 경제적 귀결(The Economics Consequences of the Peace)”에서 독일의 경제를 파괴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비합리적인 행위임을 주장했습니다. 곧 독일의 파산은 결국 독일이 지불해야할 비용을 지불하기 못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케인즈는 블룸스버리 모임의 동료들과 함께 예술에 대한 열정 역시 가졌습니다. 그는 당시로서는 드물게도 이런 상류층 문화를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데에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드가의 스튜디오에 있는 작품들이 팔릴 예정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당시 장관이었던 보나 로를 설득해 2만 파운드의 자금을 가지고 그림들을 구매해 영국 국립 미술관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캠브리지 예술영화관을 세웠고 예술위원회 초대 의장을 지냈으며 영국 로열발레단의 전신인 새들러스 웰스 발레단을 코번트 가든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케인즈의 발레에 대한 사랑은 러시아 출신의 발레리나였던 자신의 부인, 리디아 로포코바의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는 사실 결혼 전 까지는 활동적인 동성애자였습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성관계 역시 꼼꼼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블룸스버리 멤버들 사이에 벌어진 서로 엉키고 엎치고 덮친 연애 얘기들이 다소 외설스러운 만큼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그건 전체를 놓고 볼 때 마냥 잘 흘러가는 이 책의 진행을 잠시 늦추는 역할을 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데이븐포트-하인즈는 케인즈의 일곱가지 삶이라는 제목이 과장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케인즈는 경제학을 넘어, 자신이 살던 시대와 동시대의 사람들을 이해하려 했던 사람입니다. 자유시장에 대한 그의 비판과 달리 케인즈는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행복과 번영을 방해하는 요인을 없애려 했고 실업을 줄이려 했으며 이를 통해 “좋은 삶”을 가능하게 하는 문명을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이런 그의 꿈은 오직 그가 모든 분야에서 영특했던 인간이었기에 시도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텔레그라프)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