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쉴러 칼럼] 기후 변화 대책, 간단한 경제학 이론을 토대로 세워보자
2015년 4월 1일  |  By:   |  경제, 칼럼  |  2 Comments

지난해 말 페루 리마에서 열린 UN 기후변화 회의에서 존 케리(John Kerry) 미국 국무장관은 “우린 여전히 기후 변화를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하고 비극을 향해 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1997년 야심차게 체결된 교토 협약은 사실상 흐지부지된 지 오래 됐습니다. 전 지구적인 문제를 당사자인 각 나라들의 손에 맡겨 풀어보려던 시도는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 됐습니다. 이 문제를 두고 각 나라를 비난하기는 사실 어렵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공유지의 비극”, “무임승차”와 같은 문제들이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즉, 각 나라 또는 개인이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비용은 엄청 큰데, 그 혜택은 모두가 누리게 돼 정작 고생한 나라, 개인에게는 별 다른 이득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기후변화 대책을 실천에 옮겨 얻게 되는 좋은 외부효과는 누구는 누리고 누구는 못 누리는 선별적인 혜택이 아닙니다.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공공재가 되는 것이죠. 당연히 ‘손 안 대고 코 푸는’ 전략을 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고, 아무도 발벗고 나서지 않아 상황은 악화됩니다.

상황이 이래도 현실적인 대책이 시급합니다. 환경보호기금(Environmental Defense Fund)의 와그너(Gernot Wagner)와 하버드대학 경제학자 베이츠만(Martin L. Weitzman)은 최근 내놓은 책 기후변화의 파장: 달아오른 지구 위에서 맞게 될 결과에 대한 경제학 분석을 통해 무임승차, 외부 효과와 같은 경제학의 오래된 통념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들이 내놓은 대안은 일견 시시해보일 수도 있는 “변화를 위한 코펜하겐 이론(the Copenhagen Theory for Change)”입니다. 덴마크 코펜하겐 시민들의 절반은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합니다. 코펜하겐 시민들이 처음부터 자전거 마니아였던 건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로 시민들 스스로 좀 불편하더라도 자전거 이용을 생활화하자는 움직임이 일었습니다. 이 흐름은 점점 커지고 번져 석유값이 어느 정도 진정된 뒤에도 시민들 사이에서 ‘바람직한 습관’, ‘훌륭한 캠페인’으로 자리매김했죠. 이웃들이 모두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 굳이 차를 끌고 도로로 나가서 매연을 내뿜는 건 대놓고는 아니더라도 손가락질 받을 만한 분위기가 조성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즉, 변화를 위한 코펜하겐 이론은 아주 작은 것부터 개개인 수준에서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행동양식, 습관을 만들고 이를 퍼뜨려 좋은 흐름을 만들고 나아가 이런 행동이 대세가 되면 기후 변화를 지연시키거나 되돌리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공유지의 비극에 관한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롬(Elinor Ostrom) 교수도 모든 나라, 모든 단체가 참여한 거대한 집단이 아니라 서로 긴밀히 얽혀 있는 중소 규모 집단의 행동이 무임승차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현재 미국 경제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예일대학 노더스(William D. Nordhaus) 교수가 주창한 “기후 변화 동호회 이론(Climate Club Theory)”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론은 간단합니다.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한 나라들끼리 배타적인 단체를 꾸리고 회원들끼리만 경제적, 사회적 혜택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죠. 비회원국들에겐 기후 변화 관세를 물려 진입 장벽을 높이고, 회원국 내의 국민들에게 효과적인 지원책을 마련해 탄소 배출을 앞다퉈 줄이도록 유도하면, 결국엔 비회원국들도 탄소 배출을 자발적으로 줄여 회원국 자격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란 주장입니다. 억지로 전 세계 모든 나라를 일괄적으로 모아 기후 변화가 심각하니 탄소 배출을 줄이라고 강요한 교토 협약이 결국 유야무야될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뜻이 맞는 나라들이 앞장서서 실천에 옮기고 눈에 보이는 혜택을 결과물로 내놓는다면 다른 나라들도 자연스레 따라올 거라고 노더스 교수는 말합니다.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효용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인간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인간이 추구하는 효용 가운데 하나인 소속감에 주목해 본다면 남들이 (또는 다른 나라가) 전부 좋은 일이라며 동참하는 일에 혼자만 어깃장을 놓는 건 여간 불편하지 않을 테니까요.

두 가지 이론 모두 현실성 없는 뻔한 소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경제학, 사회과학 이론이 복잡한 공식이나 방대한 자료 속에 파묻혀있는 게 아니라 교착 상태에 빠진 문제에 필요한 시급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 현실적인 단초를 제공했다는 의미에서 한 번 더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주장입니다.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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