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짐머 칼럼] 우리는 왜 혈액형을 가지고 있을까요? (2/3)
2015년 3월 11일  |  By:   |  과학  |  1 comment

1996년 자연요법 주의자 피터 다다모는 “혈액형에 따른 올바른 식사법(Eat Right 4 Your Type)”이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혈액형은 우리가 진화한 환경의 결과이며 따라서 자신의 혈액형에 따라 먹는 것을 조절해 우리 몸의 조화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혈액형을 “인간의 발달에 따른 중요한 분기점의 결과”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O형은 아프리카의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조상들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A형은 농경 생활 초기의 인간에, B형은 약 10,000~15,000년 전 히말라야 고원 지대에 살던 인간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AB형은 A형과 B형이 현대에 와서 섞인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이론을 바탕으로 각 혈액형이 먹어야 할 것들을 정리했습니다. A형은 농경 생활의 인간이므로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O형을 가진 이들은 고기를 많이 먹고 곡식과 유제품을 피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혈액형과 맞지 않는 음식에는 모든 종류의 병을 일으킬 수 있는 항원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 자신이 말한 대로 음식을 먹음으로써 세균 감염을 피하고 체중을 조절할 수 있으며 암, 당뇨와 싸울 수 있을 뿐 아니라 노화를 늦출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다모의 책은 6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700만 부 이상 팔렸습니다. 그의 뒤를 따라 다양한 혈액형별 식이요법 책들이 출간되었습니다. 다다모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혈액형별 영양제를 팔았습니다. 사람들은 의사들에게 혈액형별 식이요법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질문에 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 실험 결과를 보는 것일 것입니다. 자신의 책에서 다다모는 자신이 여성 암환자들을 대상으로 8년 동안 이 식이요법을 실험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의 연구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최근 벨기에 적십자연구소 연구원들은 이 식이요법의 효과에 대한 다른 증거가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혈액형별 식이요법에 관한 모든 연구를 조사했습니다. 1,000건이 넘는 연구를 샅샅이 찾아본 끝에 그들은 혈액형별 식이요법이 효과가 있다는 어떤 분명한 증거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ABO 혈액형 분류에 따른 식이요법이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는 어떤 직접적인 증거도 없었습니다.”

“미국 임상 영양지(American Journal of Clinical Nutrition)”에 이 논문이 실리자 다다모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곧, 비록 출판된 증거가 없더라도 자신의 방법은 옳은 과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이지요.

“혈액형별 식이요법은 마치 아인슈타인이 계산에 의해 상대론에 도달한 것처럼 정당한 과학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과의 비교는 어불성설이며 혈액형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먼저 그의 주장을 딱 잘라 부정하고 있습니다. “수혈의학 리뷰(Transfusion Medicine Reviews)”에서 일군의 과학자들은 단정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의 식이요법 홍보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혈액형별 식이요법을 추종하는 이들은 긍정적인 결과를 보고 있습니다. 물론 토론토 대학의 영양학자 아메드 엘소헤미는 그들이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것과 혈액형은 무관하다고 말합니다.

엘소헤미는 떠오르는 분야인 유전영양학(nutrigenomics)의 전문가입니다. 그는 1,500명의 자원자를 대상으로 그들이 먹는 음식과 그들의 건강을 추적했습니다. 또 DNA가 건강에 끼치는 영향을 알아보고자 그들의 DNA도 분석했습니다. 같은 음식이라도 유전자에 따라 사람들은 매우 다른 반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 주제를 가지고 세미나를 할 때마다 누군가는 내게 묻습니다. ‘당신의 연구는 혹시 혈액형 다이어트와 비슷한 건가요?’ “

그는 다다모의 책이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책의 어떤 주장도 과학적 근거에 바탕을 뒀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1,500명의 혈액형을 알고 있기 때문에 혈액형 다이어트가 실제로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는지 확인해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식생활에 따라 나누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육식 위주 식생활을 했고 어떤 이들은 채식을 주로 먹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다다모의 혈액형별 식이요법을 얼마나 따르고 있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는 어떤 다이어트는 실제로 효과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A형을 위한 식이요법인 채식주의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BMI(체질량 지수: 신장 대 체중 비)가 낮았고 허리둘레도 작았으며 혈압 역시 낮았습니다. O형을 위한 식이요법을 택하고 있는 사람들은 트리글리세리드 수치가 낮았고 유제품을 많이 먹는 B형을 위한 식이요법을 택한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건강상의 이점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결과가 그들의 혈액형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즉, 당신이 설사 O형이라 하더라도 A형을 위한 식이요법인 채식을 중심으로 한 식단을 먹으면 실제 A형과 마찬가지로 건강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채식이 기본적으로 몸에 좋기 때문입니다. O형을 위한 식이요법의 이득인 탄수화물의 절제 역시 누구나 누릴 수 있습니다. 유제품을 먹어서 생기는 장단점이 누구에게나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혈액형 다이어트 이야기에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 이론이 혈액형이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 이론은 실제 과학적 사실과는 맞지 않습니다.

랜드스타이너가 혈액형을 발견한 이후 과학자들은 동물들의 혈액형도 다른지 찾아보았습니다. 어떤 유인원의 피는 사람의 어떤 혈액형과 엉김 없이 잘 섞였습니다. 그러나 그 원인을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한 원숭이의 피가 A형과 엉기지 않고 잘 섞인다고 해서 이것이 원숭이와 A형 사람들이 같은 조상으로부터 같은 유전자를 받았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문점들은 매우 서서히 풀렸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와 과학자들은 분자생물학을 이용해 혈액형을 연구했습니다. 그들은 ABO로 불리는 하나의 유전자가 적혈구 위에 2층을 올리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유전자의 A 버전과 B 버전에서 몇 가지 중요한 돌연변이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O형의 피를 가진 사람들의 ABO 유전자에는 A 항원과 B 항원을 만드는 효소를 만들지 못하게 하는 돌연변이가 있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유전자가 다른 종에도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프랑스 NCSR의 로라 세구렐과 그녀의 동료들은 유인원에게 ABO 유전자가 있는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혈액형이 매우 오래된 기원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긴팔원숭이와 인간은 모두 A와 B형의 변종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돌연변이는 2천만 년 전의 공통된 조상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모자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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