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영상, 자료를 디지털로 저장하면 영원히 보관되는 걸까?
2015년 2월 23일  |  By:   |  IT, 과학  |  No Comment

훗날 사료로써 가치가 높을 것으로 보이는 중요한 문서, 영상 등의 기록을 지금 우리는 어떻게 보관하고 있습니까? 아니, 꼭 인류의 역사로 꼭 남겨둬야 할 법원의 판결문이나 보도 영상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인 여행 사진, 블로그에 쓴 글까지도 우리는 언젠가부터 그 용량이 무한대에 가까운 것처럼 여겨지는 클라우드 컴퓨팅 서버에 저장해두면 영원히 안전할 것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저장 방식은요? 디지털로 전환해서 저장해두면 고문서가 빛이 바랠 염려도 없고 동영상을 저장해둔 비디오테이프가 파손돼 기록이 사라질 염려도 없는데 뭘 걱정하냐고요?

구글의 부사장인 빈트 세프(Vint Cerf)는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호세에서 열린 미국 과학 진흥 협회(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연례 회의에서 바로 이러한 인식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그의 경고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bit rot”, 즉 어딘가에 저장해둔 자료가 시간이 지나며 쓸모 없어지고 기술이 발전하고 바뀌면서 아예 열어볼 수도 없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는 뜻입니다. 현재 인류는 모든 자료를 디지털화하여 쌓아두고 있는데, 언젠가 지금의 디지털과는 완전 다른 양식의 기술이 지배하는 미래가 온다면 지금 우리가 저장한 기록은 아무도 열어볼 수도 없게 되고, 우리 세대의 기록 자체가 사라지며 지금 이 시대가 암흑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고 세프는 말했습니다. 또한 이를 막기 위해 구닥다리가 되어가는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를 미래에 언제든 다시 살려내 열어볼 수 있도록 일종의 “현재 인류 디지털 기술 해설서(digital vellum)”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문서든, 음악이든, 동영상이든 디지털화하여 어딘가에 저장하는 건 이를 더 효과적으로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관만 해두고 방치해두면 사실상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게 됩니다. 차라리 정말 무언가를 보관하고 싶다면 예를 들어 사진을 직접 인화해서 옆에 두고 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가 문서를 저장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 PDF 파일형식,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이 수백, 수천 년 후 인류에게는 열어볼 수도 없는, 그래서 크게 궁금하지 않을 암흑의 시대의 해독할 수 없는 유물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 같다고요? 가까운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누군가 1980년대 간단한 문서, 파일을 저장하던 플로피 디스크와 음악을 들을 때 쓰던 카세트 테이프를 손에 쥐어준다면 여러분은 그걸 집에 가져가 무얼 하실 수 있습니까? 문서를 열어볼 수도, 음악을 들을 수도 없는 분이 대부분일 겁니다. 이미 두 저장매체를 취급하는 하드웨어가 일반 가정집에서는 자취를 감췄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의 생애를 연구하는 역사학자, 정치학자들은 줄곧 도서관을 뒤져 링컨이 직접 쓴 자필 편지를 입수해 이를 분석합니다. 운 좋게 지금까지 남아있는 링컨의 자필 편지처럼 현재 우리의 대화가 기록되는 주요 매체인 이메일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21세기 인류사를 연구한다는 목적 아래 열람될 수 있을까요? 정보의 양이 너무나 방대해 우리는 역사가들로 하여금 이른바 중요한 기록, 사실에 특별히 신경을 쓰며 이를 저장해두는데, 또 다른 문제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중요한 정보가 100년, 1,000년이 지나서도 중요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기원전 3세기경 수학자들이 얼마나 똑똑했고, 무한대의 개념과 미적분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다는 사실은 우연히, 아주 우연히도 13세기 쓰인 비잔틴제국 기도서 사이에 보관되어오던, 아르키메데스 책을 발췌해 적어두었던 문서 덕분에 알려졌습니다.

카네기멜론 대학교 연구팀이 내놓은 해결책은 적어도 이 문제를 풀어가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소프트웨어를 실행할 때 하드드라이브가 이를 처리하는 모습을 디지털로 기록하고 이를 다른 컴퓨터에 옮겨 그 컴퓨터가 이 처리 연산을 흉내내 오래된 소프트웨어를 돌리고 기록을 읽어내도록 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올리브(Olive)라고 명명된 이 프로젝트를 통해 1982년 애플이 만들었던 그래픽 게임 미스터리 하우스(Mystery House), 초기 워드 프로세서인 워드 퍼펙트(Word Perfect), 그리고 1993년 1인칭 시점의 총 쏘는 게임의 효시라고도 할 수 있는 둠(Doom)을 복제하고 기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런 기술을 개발해 적용하는 건 어쩌면 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더 어려운 일은 인류의 기록을 보존한다는 아주 거대한 명분 아래 사라져가는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기록들을 효과적으로 수집하고 저장할 수 있는 권한을 누군가에게 부여하도록 법을 손보는 일일 겁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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