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스티글리츠 칼럼: 유럽연합의 긴축정책이 그리스를 실패로 몰아갔다
2015년 2월 12일  |  By:   |  세계, 칼럼  |  No Comment

5년 전 이른바 유로존 위기가 시작됐을 때 케인즈학파 경제학자들은 일제히 그리스를 비롯해 재정 건전성이 좋지 않은 국가들을 향한 긴축정책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들은 긴축정책이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실업률을 크게 높이며 결국 GDP 대비 부채 비율도 높아지고 마는 악순환에 빠질 거라고 내다봤습니다. 유럽연합, 유럽 중앙은행, 그리고 국제통화기금은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이 사안에 접근했습니다. 단어 자체가 다소 모순적인 “팽창적 긴축정책“이 바로 그것입니다. (링크에 있는 유종일 교수의 설명을 빌리면, “재정적자와 과도한 정부부채 문제를 안고 있는 정부가 과감하게 긴축정책을 실시하면 시장의 신뢰가 높아져서 정부수요 축소의 직접적 효과를 상쇄하고도 남는 민간수요의 증가가 일어나고 결과적으로 경기가 팽창한다”는 이론입니다) 국제통화기금도 정부 지출을 삭감하는 게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확신을 갖지 못했지만,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연합 정책결정자들은 긴축 정책을 밀어붙였습니다.

그리스는 긴축정책이 거의 예외 없이 실패한 또 하나의 사례로 기록됐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후버(Herbert Hoover) 정권이 긴축정책을 실시했다가 대공황을 불러왔고, 1980년대 라틴 아메리카, 1990년대 동아시아에서 IMF 주도 하에 이루어진 긴축정책도 잇따라 실패했지만, 유럽연합은 실패 사례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그리스에서 큰 정책적 우를 범했습니다. 그리스는 유럽 중앙은행이 시키는대로 성실히 긴축정책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정부 지출을 대폭 삭감해 예산 적자 상태에서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하지만 실업률 25%, GDP 22% 감소, GDP 대비 정부 부채 35% 증가라는 끔찍한 결과를 수반한 허울 뿐인 흑자 전환이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그리스 국민들이 보여준 의사는 자명합니다. 긴축정책은 실패했다. 이제 이런 말도 안 되는 정책은 집어치우라는 겁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리스는 긴축정책이 실패한 예외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스페인만 해도 금융위기 이전에 부채 비율이 낮았지만, 유럽 중앙은행의 요구대로 긴축정책을 폈다가 경기 침체의 늪에 깊이 빠져있습니다. 긴축정책과 함께 예외없이 구조조정의 서슬퍼런 칼날이 온 사회를 휩쓰는데, 제가 보기에 진짜 구조조정 내지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건 유럽 중앙은행입니다.

이번 그리스의 위기는 다시 한 번 국제 경제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 가운데 하나가 정부 부채를 비롯한 각종 빚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다루고 줄여나가느냐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동아시아 금융위기, 라틴 아메리카 금융위기 등 우리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가 온 나라 경제, 세계 경제가 동시에 푹 꺼지는 실패를 숱하게 겪었습니다. 자, 그럼 오늘날 경제 구조 위에서 빚이 어떻게 생겨나고 불어나는지를 한 번 같이 생각해봅시다. 특히 그렇게 많은 빚을 진 나라나 경제 주체가 무모하고 무책임했던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과 함께 이 문제를 살펴보고 싶습니다.

그리스가 진 많은 빚도 그렇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빚은 채권자와 채무자가 합의에 이르러야 발생하는 계약의 산물입니다. 즉, 돈을 빌리는 쪽 뿐 아니라 빌려주는 쪽도 부실한 상대에게 과중한 빚을 지우는 건 아닌지 늘 주의해야 하고 만의 하나 부도가 나거나 빚을 갚을 능력을 상실해버리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때는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많은 경우 돈을 빌려주는 쪽이 빌려가는 쪽에게 돈을 주는 것이 얼마나 상식적이고 어느 정도 안전한 것인지 훨씬 더 정확히 알고 있기에 어쩌면 빌려주는 쪽이 책임을 더 지는 게 맞을지도 모릅니다.

선진국들은 빚더미에 파묻혀 파산한 개인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것이 전체 경제를 운용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경험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19세기 돈을 못 갚은 채무자들을 따로 가둬놓은 감옥이 제도로 정착되지 못한 건 인권 문제도 있었지만, 파산한 사람을 감옥에 가두어봤자 진 빚을 갚아서 다시 돈이 경제를 돌리는 데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무리한 대출을 억제할 수 있는 제도적인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더 효과적인 정책이라는 결론에 이른 정부들은 채권자들이 조금 더 대출에 책임감을 갖도록 제도를 개선했습니다.

그런데 개별 국가에서 얻은 깨달음이 국가들간의 경제 활동에는 아직 적용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파산한 나라 또는 사실상 파산에 이른 나라에게 새 출발의 기회를 주는 것이 분명 개인에게 그랬던 것처럼 장기적으로는 모두에게 이로울텐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UN의 수많은 회원국들이 채권자들의 책임감을 높이고 빚에 시달리는 나라의 부채를 상식적으로 탕감하고 재도약의 기회를 주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 했을 때 이를 막아선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었습니다. 19세기에 실패로 끝난 채무자 감옥을 국제 사회에 다시 부활이라도 시키려는 의도일까요? 물론 미국 정부가 그렇게까지 생각할 거라고 말하는 것 또한 억지일 겁니다. 그렇지만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거나 빚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추궁해야 한다는 주장을 접할 때마다 자꾸 그런 생각이 듭니다.

자, 생각해봅시다. 어떤 나라가 채권국가 또는 국제통화기금의 돈을 흥청망청 쓸 생각으로 일부러 나라를 파산까지 몰고 갈까요? 정말 그런 의도로 빚을 대책 없이 늘렸다가 파산 직전에 이르니 부채를 탕감해달라고 조르는 나라가 있기는 합니까? 도덕적 해이는 채무자보다 채권자들에게 있습니다. 특히 부실 채권을 남발한 다음에 구제금융에 기대어 다시 살아난 사적 영역의 채권자들의 도덕적 해이는 재정 건전성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심각한 수준입니다. 그리고 긴축정책을 강요하는 유럽 중앙은행이야말로 그리스 재정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되어 비판받아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는 유로존에 들어간 순간부터 통화정책을 독립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중앙은행을 잃고 유럽 중앙은행에 이 역할을 맡겼습니다. 유럽 중앙은행이 그리스 입장에만 서서 정책을 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리스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 부채 탕감과 정부 지출 증가를 통한 수요 창출이라는 방안을 고려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70년 전 2차대전 직후 독일을 생각해봅시다. 히틀러와 나치가 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에 부과한 막대한 배상금(부채)과 그로 인해 치솟았던 실업률, 사회적인 불안을 틈타 득세했고 끔찍한 전쟁을 일으켰던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연합국은 독일에 새로운 기회를 주었습니다. 전쟁 범죄와 독일이 입힌 경제적 손실에 대해 책임을 묻고 배상을 요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연합국은 독일을 빚더미에 앉히는 대신 막대한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회사가 파산했을 때 부채를 회사 지분으로 전환하는 건 흔히 쓰이는 방법입니다. 그리스에도 비슷한 정책을 쓰면 어떨까요? 현재 그리스가 안고 있는 부채를 그리스의 경제 성장과 연동시킨 부채로 전환해서 경제가 성장하고 돈이 들어오면 더 많이 갚게 하고, 반대로 경제가 살아나지 못하면 채권자들도 (그리스가 빚을 갚을 수 있는 수준 만큼) 부채를 탕감하는 데 동의하는 겁니다. 이렇게만 해도 양측 모두에게 그리스 경제에 다시 선순환 구조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할 인센티브가 생깁니다.

시리자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여준 그리스 국민의 메시지는 유럽 전체에 적잖은 파급을 가져왔습니다. 만약 이 메시지를 유럽연합이 지금껏 해온 것처럼 무시한다면, 이는 그리스 국민들에게 적어도 나라 경제가 나아갈 길을 정하는 데 있어서 민주주의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절망을 안겨줄 뿐입니다. (AlterNet)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