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할 가치가 있는 자유의지: 데니얼 데닛과의 인터뷰(2)
2015년 2월 5일  |  By:   |  과학  |  1 comment

NW: 아까 당신의 말 중에서 ‘의도(intention)’란 것이 어떤 건지 잘 와닿지 않네요. 보통 우리는 의도를 행동을 이끄는 정신적 상태를 일컫잖아요. 당신은 이 단어를 다른 뜻으로 사용하는 것 같네요.

DD: ‘지향적 태도(intentional stance)’에서 지향(intention, 의도)은 보다 넓은 뜻을 가지고 있어요. 믿음, 욕망, 의도 등을 가진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보통은 어떤 누군가에게 이런 지향적 태도를 취합니다. 때로는 고양이나 컴퓨터일 수도 있죠. 체스 게임을 하는 것은 곧 이런 믿음이나 욕망, 그리고 어떤 목표를 가진 상대방을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게임 내내 그 상대방의 믿음이나 욕망을 계속 분석하게 되죠. 게임 이론은 바로 이런 상태를 가정한 이론입니다. 20세기에 존 폰 노이만과 오스카 모겐스턴이 만든 이 게임이론은 전략의 근본적인 특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무인도에 홀로 남은 로빈슨 크루소는 이런 지향적 태도를 가질 필요가 없어요. 만약 외부 환경에 어떤 대상이 혹은 대상처럼 생각할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상황은 바뀌게 됩니다. 우리는 피드백을 고려해야 하죠. 어떤 행동을 하고 싶다면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면 그는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그럼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로빈슨 크루소는 정원을 돌아다니기 전에 양배추가 자신을 보고 어떻게 반응할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죠. 그러나 다른 누군가가 있다면, 그런 고민이 필요하게 됩니다.

NW: 그리고 프라이데이(역주: 로빈슨 크루소가 발견한 원주민)가 나타났고 문제가 생겼군요.

DD: 프라이데이가 나타나자마자 그는 지향적 태도를 필요로 하게 되었죠.

NW: 그러니까 의도를 가진 개체들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바로 의도를 가지는 것의 충분조건이라는 말이군요. 여기에 어떤 의인화(anthropomorphism)의 오해가 생길 문제는 없어보이는 군요. 즉 어떤 상황이 충분히 복잡하다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의도를 가진 상대방으로 대하는 것이 맞겠군요.

DD: 우리는 나무를 지향적 태도를 가진 상대로 대할 수 있습니다. 나무가 무엇을 필요로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나무가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어떻게 행동할지를 생각할 수 있어요. 어느 정도까지는 통할겁니다. 그러나 나무는 영혼이 없어요. 의식이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물론 어떤 패턴과 반응이 있어요. 최근 여러 종류의 나무가 색깔을 구분한다는 연구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푸른 물체에서 반사된 빛을 많이 받을 경우 그 나무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성장에 쏟아 붇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다른 나무가 곁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여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하지요. 우리는 나무의 ‘지향적 태도’롤 보는겁니다! 이런 간단한 모델은 박테리아, 조개, 물고기, 파충류 그리고 다른 고등동물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야말로 전형적인 예이지요.

그러나 인간의 독특한 점은 우리가 단지 어떤 논리적 과정(reason)에 의해 반드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나무는 그런 논리적 과정에 따라 그대로 반응하지요. 그러나 인간은 그 논리를 표현하고 그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논리를 표현하고 그에 대해 생각하며 서로에게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지향적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친구와 가족들의, 상대방의 논리를 배우는 방법을 익힙니다. 우리는 이렇게 진화를 통해 얻은 독특한 관점을 무생물이나 나무에도 적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무에서 표현된 논리가 아니라 행동의 근거가 되는 논리를 보게 됩니다. 이런 논리를 볼 수 있는 수준의 관점에 오르지 못하면, 자유의지를 볼 수 없습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개체와 그렇지 않은 개체 사이의 차이는 원자의 움직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적절한 수준에 이르러야만 이것이 나타나며, 한 번 드러난 것은 너무나 명확해서 놓칠 수 없게 되죠.

NW: 그럼 우리가 컴퓨터와 체스를 둘 때 그 상대방에게 지향적 태도를 가지지만, 그리고 체스에 이기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대방이 자유의지를 가졌는지는 알지 못한다는 뜻인가요?

DD: 그렇죠. 지향적 태도를 보이는 개체 중 일부만이 자유의지를 가집니다. 우리는 ‘새들처럼 자유롭게’라고 말하고, 새들은 어떤 종류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겠죠. 그러나 새는 앞날을 예상하고 또 이 예상의 결과를 다시 자신의 예상에 포함시키는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새가 가진 자유의지는 인간이 가진 자유의지에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새는 인간같은 미래에 대한 예상을 가지지 않죠. 또 인간같이 서로를 설득하는 일도 하지 않습니다. 새 한마리가 다른 새와 아무 이유없이 이야기하는 일은 없죠. 다른 새를 협박하는 일은 있겠죠. 그러나 이유없이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NW: 다시 처음주제로 돌아가지요. 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자유의지란 어떤 건가요?

DD: 그것은 우리에게 법에 의한 정부 하에서 행동할 수 있는 정치적 자유를 주고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하는 그런 자유의지를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런 자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이건 매우 소중한 능력입니다. 약속이라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약속에는 많은 장점이 있지요. 예를 들어 긴 시간이 걸리는 일들은 약속이 있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이런 약속을 할 수 있지 않죠. 약속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자유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 자유의지는 정신적으로 중요한 자유의지지요.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한 번 분리해 봅시다. 엔지니어라면 이렇게 말하겠지요. 정신적 자격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스펙이 무엇이냐고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어야하고, 올바른 욕망을 가져야하고, 논리에 의해 움직일 수 있어야 하지요. 설득당할 수 있어야하고 동시에 자신의 관점을 정당화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좀 더 놀라운 몇 가지 능력이 더 필요합니다. 곧, 자신을 조종하려는 상대방의 의지를 특별히 잘 간파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그런 조종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합니다. 우리가 지적인 존재라고 이야기할 때 그는 다른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아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를 조종하려는 누군가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하지요. 조종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약간의 예측불가능성을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즉 포커페이스를 가지는 것은 지적 존재가 되기 위한 중요한 특징이지요. 골동품 가게에서 자신의 기분을 그대로 드러내다가는 주인의 속임수에 그대로 넘어가게 될겁니다.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욕망을 드러낼 경우 뭔가 문제가 있는, 어리석은 존재로 여기지겠지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얻어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밝혀서는 안됩니다.

NW: 그건 인간 본성에 대한 너무 냉소적인 시선으로 보입니다. 당연히 그 반대의 관점도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어떤 나의 허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것을 솔직히 말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그런 방식 말이죠.

DD: 물론 그런 면도 있죠. 하지만 예를 들어 구혼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당신은 한 여성을 보았고 그 여성에게 완전히 반했습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은 어떤 것일까요? 그녀에게 헐떡이며 달려가 당신이 그녀에게 완전히 빠졌다는 것을 그녀에게 보이는 것이죠.

우선 당신의 그런 행동은 그녀가 겁을 먹게 만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그녀가 당신의 그런 필사적인 연모에 흥미를 느낄 가능성도 있겠죠. 어쨌든 당신은 이런 결과를 원치 않을테고, 따라서 당신의 마음을 조금 숨기게 됩니다. 프랑스의 정치가 탈레랑은 이렇게 말했죠. 신이 남자에게 언어를 준 것은 자신의 생각을 숨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그의 말이 의사소통에 있어서 언어의 역할에 대한 심오한 통찰이라고 생각해요. 의사소통에 있어서 이것이 곧 당신 세계의 어떤 면을 상대방에게 알리고 어떤 면을 알리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지향적 행동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죠.

NW: 그래서 중요한, 그리고 원할 가치가 있는 자유란 곧 다른 이로부터 조종당하지 않을 자유군요.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그리고 다른 이가 선택한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할 지를 선택하는 그런 자유구요.

DD: 그렇죠. 자신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즉 강한 의미에서의 주체적(autonomous)이 되기위해서는 우리가 다른이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해야합니다. 환경은 보통은 어떤 존재가 아니므로 우리를 조종하지 않습니다. 오직 다른 존재만이 우리를 조종하려 노력하죠. 이를 막으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는 앞서 이야기한 놀라운 능력을 가져야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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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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