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수아레즈, “나는 절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닙니다” (2)
2014년 10월 28일  |  By:   |  스포츠  |  3 Comments

옮긴이: 축구선수 루이스 수아레즈를 둘러싼 인종차별 논란에 대해 수아레즈가 3년 만에 입을 열었습니다. 맥락을 설명하기 위해 전문을 번역하는데 분량이 길어 두 편에 나누어 소개합니다.

1편 링크 보기

에브라는 제가 N으로 시작하는 문제의 단어를 다섯 차례나 입에 올렸다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열 번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저는 에브라를 향해 말을 했으니, 제가 한 말을 저 말고 가장 똑똑히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에브라였기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에브라의 스페인어는 유창하지 않았고, 우리말로 옮기자면 “너 왜 나 때려?” 정도의 단어의 나열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앞서 말했듯 단 한 번, negro라는 단어를 스페인어로 응수하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모독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이 썼을 뿐입니다. 축구장에 있는 중계 카메라 25대가 선수의 행동 하나하나를 모두 기록에 담습니다. 나중에 복화술 전문가들이 영상을 수없이 들여다봤지만, 제가 negro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말했다는 증거를 찾아낸 이는 없습니다. 오히려 에브라가 저를 향해 “남미 사람(Sur Americano)”이라 부르기도 했죠. 그 밖에 에브라가 한 말은 스페인어였는지 프랑스어였는지 영어였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저는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유창하지 않은 스페인어로 말을 걸어놓고, 제가 답한 스페인어를 다른 맥락에서 곡해한 다음에 저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간 일련의 사태가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차라리 경기가 끝난 뒤에 라커룸으로 가는 길에 제 멱살이라도 잡고, “아까 너 뭐라고 말한 건지 다시 똑똑히 말해봐”라고 했으면 오히려 오해가 사라질 수 있도록 제가 잘 설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모든 사실을 코몰리 씨와 달글리시(Kenny Dalglish) 감독에게 충분히 설명했고, 이들이 영어로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않은 저를 대신해 축구협회에 열심히 소명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저와 리버풀 구단에 불리하게 돌아갔습니다. 그래도 제가 나서서 익숙치 않은 영어로 해명을 하는 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제가 영국 미디어와 축구팬들로부터 받아야 했던 온갖 비난이 공정하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제게 그냥 negro라는 단어 자체를 입에 담은 적도 없다고 주장하라고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그런 의미로 말을 한 게 아니니, 그렇게 말해도 크게 진실과 다를 바 없다는 논리였죠. 하지만 저는 어찌됐든 거짓말을 하고싶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제가 쓴 스페인어 negro는 인종차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맥락이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고, 제게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꼬리표가 생겨났습니다. 사람들은 말하죠. “루이스 수아레즈? 좋은 선수지. 골 잘 넣고. 가끔 정신 나간 행동을 하긴 하지만, 아 맞다, 그리고 걔 인종차별주의자야.” 저 마지막 한마디가 제게는 도무지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그라운드 위에서 저의 빗나간 승부욕이 축구팬과 다른 선수들을 눈살 찌푸리게 하는 기행으로 나타난 적이 있습니다. 이건 제가 잘못한 부분이고 비판받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저는 인종차별주의자도 아니고, 그런 발언을 한 적도 없습니다. 제가 하지 않은 일 때문에 평생 먹을 욕을 며칠만에 다 먹고 영원히 악마로 낙인찍히는 건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로도 저를 아는, 또는 저의 진심을 이해해준 선수들도 있었습니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소속팀에 관계없이 경기가 끝나고 저와 유니폼을 교환하는 선수들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미 어떤 일을 해도 비난을 받는 처지가 됐습니다. 흑인 선수와 유니폼을 교환하면, 인종차별주의자가 위선을 떤다고 비난을 받았고, 교환을 안 하면 역시 인종차별주의자라 흑인 선수들과는 상종도 안 한다는 비아냥이 뒤따랐습니다.

그리고 축구협회에서 공식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인종차별 발언 혐의가 씌워진 상태였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리버풀 구단과 변호사들은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인종차별 의도 전혀 없이 한 말이라는 점을 납득시킬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여론 눈치를 보며 어떻게든 출장정지 기간을 줄이는 걸 처음부터 목표로 삼았으니까요. 스페인어와 영어에서 전혀 다른 맥락으로 쓰이는 단어라는 점은 축구협회 측에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수아레즈가 negro라는 말을 했다는 의미 없는 사실만 남았죠. 모든 맥락을 지우고 그 사실에서 사건을 재구성한 결과, 저는 끔찍한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 찍히고 말았습니다.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저는 축구협회 사무실에 아침 7시 반부터 밤 8~9시까지 나흘을 꼬박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가서 제가 한 건 사건 경위와 배경을 설명한 게 아니라 멍하니 앉아서 누군가 제게 사실 확인을 해주기를 기다리는 일이었습니다. 정작 나흘간 저는 단 한 번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는데, 제 설명이 얼마만큼 축구협회의 결론에 영향을 끼쳤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대신해 구단이 열심히 소명을 했을 거라 믿지만,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처음 변호사가 제게 건넨 것보다 무거운 징계였습니다. 8경기 출장정지였죠.

저를 입이 크다거나 누군가를 물어뜯는 미친 사람이라거나 파울을 유도하기 위해 다이빙을 일삼는 선수라고 비난하는 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물론 기분은 좋지 않지만, 제가 그런 비난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한 걸 인정합니다. 근거 있는 비난이죠. 하지만 저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건 저와 가족이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입니다. 제 아내는 청문회 내내 제가 저지르지도 않은 일로 비난을 받으며 죄인 취급 받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도 가슴아파 했습니다. 나중에 제 아이들이 커도 인종차별주의자의 자식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을 거라 생각하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저는 에브라에게 잘못한 일이 없기 때문에 사과를 한 적도, 할 생각도 없습니다. 이는 그 일로 세상이 시끄러워진 다음에도 마찬가지였죠. 이듬해 2월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 다시 리그 경기가 열렸을 때 저는 경기 전에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에브라와도 악수를 나누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아내에게도 이런 결심을 알렸고, 아내도 저를 응원한다고 했죠. 경기 전 양팀 선수들이 한 명 한 명 악수를 할 때, 에브라는 제 차례가 오자 손을 내려버렸습니다. 그리고 저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제 뒤에 있는 선수를 향해 악수를 청했죠. 방송 중계 영상에도 악수를 하려 손을 뻗었다가 멋쩍게 다음 선수와 악수를 하는 제 모습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에브라 다음 선수와 악수를 하려 했을 때 에브라는 갑자기 제 팔을 잡아끌더니 제가 자신의 악수 요청을 거부했다는 듯한 행동을 했죠. 다음날 언론은 일제히 머릿기사를 뽑습니다. “잘못을 뉘우칠 줄 모르는 수아레즈, 에브라의 악수를 거부하다”

구단은 끝까지 제 편에 섰습니다. 이후로 달글리시 감독은 기자회견 때마다 저를 둘러싼 온갖 질문에 진땀을 흘리며 답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감독과 구단이 보여준 신뢰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겁니다.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리버풀이 수아레즈라는 악동의 실력 때문에 그의 치부를 어쩔 수 없이 가릴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하지만 리버풀 구단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저를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저를 위해 항변하고 소명에 나섰던 겁니다. 제가 절대로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겁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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