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이성의 적이 아니다
2014년 10월 10일  |  By:   |  과학  |  1 comment

1994년 4월 9일 한 밤중, 19살의 제니퍼 콜린스는 기숙사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은 뒤 기절했습니다. 아침 9시, 그녀가 지르는 소리에 놀라 친구들은 깨었습니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가위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고, 문틈새로 가위를 받아든 그녀는 몇 분뒤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와 다시 기절했습니다. 친구들은 피가 흥건한 화장실과 그녀를 보고 바로 911을 불렀습니다. 의료진이 도착했고, 콜린스는 아이를 낳았다고 말했습니다. 화장실 덮게를 올렸을 때, 그들은 유산된 작은 태아가 아니라 얼굴이 물에 잠긴 3.1 kg 의 여아를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2급 살인으로 기소되었습니다. 2급 살인은 고의성은 있지만 사전모의는 없었다고 판단될 때의 죄명입니다. 변호인들은 그녀가 출산도중 정신을 잃었고 아기가 익사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검사는 탯줄이 아직 붙어 있는 피로 덮인 아기의 부검사진을 배심원들에게 보이려 했습니다. 배심원들은 퇴정했고, 변호인과 검사는 연방 증거법 403조, 곧 증거가 불필요하게 편견을 조장할 때 이를 채택해서는 안된다는 조항을 두고 다투었습니다. 이 조항은 ‘공정하지 않은 편견’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르지 않은 근거, 즉 주로 불필요한 감정적인 근거에 바탕해 판단을 내리게 만드는 부적절한 경향”. 이 말은 곧 증거가 배심원들의 감정을 자극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감정이 이성적 판단에 방해가 된다는 주장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성과 감정은 명백히 구분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 이분법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뇌과학과 심리학의 많은 연구들이 감정이 이성의 적이 아니라 중요한 일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 아리조나주 법학연구(Arizona State Law Journal)에는 법적 측면에서 이성과 감정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이는 연구가 실렸습니다.

연구진은 분노와 같은 감정은 올바른 판단이 아닌 편견에 의한 판단을 일으키며, 그 판단을 확신하게 만들지만, 슬픔은 사람들을 보다 주의깊게 만들며 또한 그 판단을 덜 확신하게 만든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이들은 “오늘날의 법 분야에 만연한 무조건적인 감정에 대한 배척은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세분화된 감정의 활용으로 바뀌어야 하며 이를 통해 더 나은 법적 판단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감정이 이성의 방해물이라는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뇌과학자 다마시오의 유명한 환자 “엘리엇(Elliot)”은 암 수술을 위해 전두엽의 상당부분을 들어내어야 했습니다. 수술 후에도 그는 높은 IQ를 유지했지만,  감정을 잃어버린 그는 어떠한 결정도 내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뇌 영상 연구들이 감정과 이성이 신경을 통해 연결되어 있음을 보였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감정에 의해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감정의 영향이 없을 때 최선의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감정은 우리에게 쏟아지는 정보들을 걸러내고 선택하게 만들어줍니다. 또한 어떤 정보가 중요한 것인지, 관련있는 것인지, 설득력이 있는지, 기억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콜린즈 사건에서 아기의 부검사진은 보여져야 했을까요? 몇년 전, 호주의 연구진은 말로 된 설명과 사진이 배심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모의재판을 통해 연구한 바 있습니다. 이들은 잔인한 설명과 잔인한 사진의 영향력을 조사했습니다. 말로 된 설명의 경우, 잔인한 묘사와 그렇지 않은 묘사는 배심원들의 판단에 차이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잔인한 사진은 그렇지 않은 사진에 비해 배심원들이 더 피고에게 분노하게 만들었고 피고에게 유죄를 선고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즉 이 실험에서 사진은 배심원들에게 불필요한 편견을 심어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감정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위와 유사한 모의재판 실험에서 역시 슬픔을 느낀 배심원들은 증인들의 모순된 증언을 더 잘 구별해냈고, 더 주의깊은 판단을 내렸습니다.

위의 실험들은 무조건적으로 감정을 배제하려는 오늘날의 법정이 개선될 여지가 있음을 알려줍니다. 실제로 법정 역시 때로 감정에 기반한 판단을 배심원들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형을 구형하기 위해서는 배심원들이 그 범죄가 “극악한(heinous)”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건이 극악한지의 여부는 배심원들 자신의 주관적 감정에 의해 판단됩니다.

콜린즈의 재판에서, 판사는 그 사진이 이미 증언을 통해 구성된 사건에 새로운 정보를 주지 않는다고 처음에는 판단했습니다. 판사는 검시관에게 그 사진이 그의 증언이 주지 못한 새로운 정보를 주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사진이 3.1 kg 아기가 실제로 어느 정도 크기인지를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판사는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여겼고 두 장의 부검사진을 배심원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콜린즈는 유죄 평결을 받았습니다. 몇년 뒤, 항소심은 그 사진들이 편견을 유도했다고 판단했고, 1심의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항소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살인은 분명 비난받아 마땅한 범죄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법률제도는 감정적 반응이 아닌 순수한 이성을 바탕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공감에 호소하거나, 공포를 불러 일으키거나, 처벌 동기를 유발하는 증거들은 제외되어야 합니다.”

(버지니아 휴 블로그)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