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언론계의 앙팡테리블 세상을 뜨다
2014년 9월 3일  |  By:   |  세계  |  No Comment

페루의 주요 시사 일간지 중 하나인 카레타스(Caretas)의 소유주이자 편집장이었던 엔리케 질레리(Enrique Zileri)가 지난 8월 25일 8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떴습니다. 그는 1992년 알베르토 후지모리(Alberto Fujimori)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해 의회를 해산하고 독재자의 면모를 드러낸 이후, 대통령의 인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날카로운 펜을 들이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마약 조직 변호사 출신으로 후지모리 대통령의 정보부 수장을 지낸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Vladimiro Montesinos)의 어두운 과거와 수상한 권력을 파헤치고, 후지모리 대통령의 3선이 위헌임을 지적하는 기사를 계속해서 실었습니다. 페루의 방송국과 신문사 다수가 대통령의 매수에 넘어간 상황이었기 때문에 질레리의 원칙은 더욱 빛을 발했죠.

질레리의 언론사 경영 방식에는 대가가 따랐습니다. 질레리는 언론사들을 국영화시키려던 1970년 좌파 군사 정권 시절에도 비슷한 “반항”을 했고, 80년대에도 군과 게릴라 조직 ‘빛나는 길(Shining Path)’ 간의 지저분한 관계를 파헤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런 시절을 거치는 동안 광고를 따기도 어려웠고, 질레리 본인은 두 번이나 추방되었으며, 잡지는 여섯 번이나 강제 휴간을 당했습니다.  불 같은 성격의 보헤미안이었던 질레리는 독학한 자수성가형 기자였지만 훌륭한 기자였습니다. 카레타스는 유머 감각과 풍자로 유명했죠. 카레타스의 권력 비판에 무게가 실릴 수 있었던 이유는 정치적으로 균형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질레리는 자신의 철학을 민주주의와 인권의 수호, 부패 및 범죄와의 싸움이라고 정리한 바 있습니다. 다양성을 갖춘 건강한 언론계가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라고 믿었기 때문에, 말년에는 페루의 경제적 기득권을 대변하는 언론사가 신문 시장 80%를 장악하게 되는 합병건에 반대 목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페루에서 언론의 자유는 여전히 위협받고 있습니다. 끝까지 앙팡테리블로 살다간 질레리의 부재가 더욱 아쉬운 이유입니다.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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