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이 급진적인 해방신학을 되살렸다?
가난하고 약한 민중의 편에 서서 혁명적 사회주의 세상을 도모하고자 했던 해방신학은 1970년대 라틴아메리카에서 번성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린 최근 몇 가지 결정을 두고 해방신학이 교회의 주류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보수적인 종단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메로(Óscar Romero) 대주교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습니다. 로메로 대주교는 엘살바도르에서 해방신학을 이끌다 1980년 괴한에게 암살당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까지 ‘마르크스주의자나 다름 없다’는 이유로 미뤄졌던 로메로 대주교에 대한 시복식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2주 전에는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혁명정부에서 외교부장관을 지냈던 데스코토 브로크만(Miguel d’Escoto Brockmann) 신부를 복권시켰습니다. 데스코토 브로크만은 2007년 리비아 정부의 유엔 대사로 임명됐고 이듬해 유엔총회 의장직에 올라 서구의 인도적 간섭(humanitarian intervention)을 강도높게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앞서 1984년 장관직에서 물러나라는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명을 거부했다가 신부 자격을 정지당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해 81살이 된 노 신부가 대중들 앞에 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겁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가 현실정치에 깊숙이 개입해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어내자는 해방신학의 부활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먼저 최근에 비슷한 노력이 실패로 돌아간 사례가 있습니다. 대주교 출신으로 대통령직에 올랐던 파라과이의 루고(Fernando Lugo) 대통령이 지난 2012년 의회로부터 탄핵당해 실권했습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교인의 신성한 의무 자체를 누차 강조해왔습니다. 정치인이나 공직을 겸하는 일을 허용할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지난 2007년 브라질에서 열린 주교회의에서 당시 안건을 작성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하지만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해 어떤 종류의 폭력을 수반하는 정치적 이념을 종교와 결합시키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데스코토 브로크만 신부를 복권시킨 것을 두고 그의 정치적 신념을 지지했다거나 공직에 다시 나서는 일까지 허용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칩니다. 노 신부에게 대중들을 축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길을 열어준 것, 이는 올해 77세로 자신의 여생이 2~3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밝힌 노 교황의 아량과 배려일 수도 있습니다. (Econom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