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서구의 환상을 깨는 미얀마의 편협한 불교 신자들
불교만큼 서구의 리버럴들에게 어필하는 종교가 또 있을까요? 정치인들은 달라이 라마를 한 번 만나려고 줄을 서고, 유명인들은 불교식 명상의 애호가를 자처합니다. 불교는 종교라기보다 철학과 같은 이미지로, 또 평화와 조화를 추구하는 삶의 방식으로서 무신론자들에게까지 사랑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접경 미얀마 서부의 무슬림 로힝야족(Rohingya)에게 불교는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무슬림들은 7세기부터 이 지역에서 살아왔지만, 현재 미얀마 국민의 90%는 불교신자죠. 현 미얀마 정부에게 로힝야족은 없는 존재나 다름없습니다. 정부가 시행하는 인구조사표에는 무려 135개 민족이 표기되어 있지만, 로힝야족은 아예 빠져있습니다. 로힝야족은 외국인으로 분류되는 “벵골인(Bengalis)” 칸에 체크를 해야하죠. 이 뿐이 아닙니다. 로힝야족은 더욱 직접적인 형태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2012년 이후, 불교신자 폭도들이 정부의 비호를 받으며 마을과 학교, 모스크를 공격하는 일들이 이어져, 수백명이 목숨을 잃고 수십만이 삶의 터전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불교 승려들이 이와 같은 움직임을 이끌고 있죠. 대표적인 반(反)로힝야 단체 “969 무브먼트(969 Movement)”는 이름 자체가 불교 가르침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무슬림들은 빠르게 번식하며 폭력적이다”, “국가의 종교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 불교 승려도 있습니다. 불교 신자 여성과 결혼하고자 하는 남성은 개종하고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단주의 불교 신자들도 있는데, 이는 미얀마 대통령의 지지를 받아 조만간 입법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불교의 본래 정신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1962년 미얀마를 장악한 군부는 소수민족에 대한 갈등과 증오를 부추기는 정치 전략을 구사해 왔죠. 로힝야족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거주이동, 교육, 토지소유에 대한 자유를 제한한 것도 군부의 짓이었습니다. 최근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성공은 역설적으로 로힝야족의 입지를 더욱 좁히고 말았습니다. 집권 세력은 소수민족에 대한 증오의 수사를 더욱 강화하고, 반대 세력은 다수인 불교 신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로힝야족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죠. 미얀마 민주화의 아이콘 아웅산 수키조차 로힝야족 문제에 대해서는 민망한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종교가 이처럼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사례는 미얀마에서 뿐 아니라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발견됩니다. 이로 인해 종교, 특히 이슬람교가 폭력과 갈등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졌죠. 미얀마에서 로힝야족이 겪고 있는 고난을 잘 들여다보면 종교에 대한 우리 마음 속의 흑백논리를 되돌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NY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