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사과의 기술
2014년 5월 9일  |  By:   |  세계  |  1 comment

<베니티 페어(Vanity Fair)>에 실린 모니카 르윈스키의 회고문이 화제를 모으는 가운데, 그녀의 사과, 또는 사과 비슷한 그 어떤 말이 눈길을 끕니다. “다시 한 번 말하겠습니다. 저 자신은 그때의 일에 대해 정말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Let me say it again: I. Myself. Deeply. Regret. What. Happened.)”라는 말이었죠. 자기 의사대로 행동한 성인 간의 일이었는데 사과까지 해야 하나 하는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말 자체만 보면, 르윈스키는 전형적인 정치적 사과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 정치인들의 사과는 사과의 형태만 갖추고 있을 뿐, 진심으로 뉘우치기 보다는 모호한 회피 전략을 취합니다. 진정한 반성과 정치적 립서비스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효과적인 사과란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켜야 합니다. 하나는 도덕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후회를 표현하는 것, 둘째는 사회적으로 사과를 받는 쪽에 죄값을 치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과의 성공 여부는 사과하는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로 결정됩니다. “실수가 있었다”라는 식의 수동적인 표현이 종종 패러디의 대상이 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정치인들이 “잘못”과 거리를 두기 위해 사용하는 모호한 사과의 기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가정법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이 정말로 사과할 만한 짓인가에 대한 입증 책임을 사과 받는 쪽에 돌리는 교묘한 기법이죠. 2006년 선거 당시 버지니아 주 상원의원 조지 앨런은 경쟁자의 캠프에서 일하던 인도계 직원을 “macaca(암컷 무어원숭이)”라고 불렀다가 인종주의 욕설을 했다는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앨런은 “그가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한다”고 말했습니다. 기분 상한 게 잘못이라는 뜻이 은근히 깔려 있는, 불완전한 사과였죠. 상대 캠프는 이 사과에 만족하지 못했고, 결국 앨런은 재선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혹시 누구라도”, “어떠한 식으로라도”라는 표현을 사과에 섞어 넣어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혹시 누구에게라도 만에 하나 상처 준 것에 대해 미안하다”는 식으로 잘못의 내용과 사과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지정하지 않는 것이죠. 조 바이든이 2008년 대선 민주당 경선 당시 오바마에게 했던 사과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바이든은 오바마에 대해”처음으로 등장한 말도 잘하고, 똑똑하고, 깨끗하고, 잘생긴 주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고 말한 후 논란이 일자, “내 말이 어떤 사람들에게 줬을지도 모르는 그 어떤 상처에 대해 깊은 유감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오바마는 인종 문제를 부각시키고 않으려고 이 절반의 사과를 받아들였지만, 오바마-바이든 체제의 어색한 한 장면으로 남고 말았죠.

다음으로, 똑같이 회피적이지만 정반대의 전략이 있습니다. 잘못의 극히 작은 일부에 대해서만 사과하고 나머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 방법이죠. 1950년 트루먼 대통령은 고든 맥도너 의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해병대가 합동참모본부에 한 자리를 얻으려고 벌이는 프로파간다 활동이 거의 스탈린급”이라고 썼습니다. 이후 서한이 공개되자 트루먼은 “8월 29일 맥도너 의원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감스러운 단어 선택이 이루어진 점을 진심으로 뉘우친다”고 말해 표현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해병대가 해군 아래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모호한 정치적 사과를 하려면 술어의 선택에도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사과한다”, “미안하다”, “유감이다” 등 다양한 표현이 있으니까요. 케네디 대통령이 흑인 학생 입학 문제를 두고 미시시피 대학에 연방군을 투입했을 때 그는 “이번 일이 연방군이 개입해야 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 유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유감”이라는 표현만 놓고 본다면 연방군을 투입해서 미안하다는 사과처럼 들리지만, 오히려 자신의 결정을 변호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2001년 비행기 간 충돌로 중국군 전투기 조종사가 사망했을 때 미국의 콜린 파웰 장관은 “그런 일이 있어나서 유감이다”라고 말했지만, 이 역시 책임을 지겠다는 것과는 거리가 먼 말이었죠.

빌 클린턴도 르윈스키 스캔들 초기에는 모호한 사과로 일관하다가, 점점 발전된 사과를 선보였습니다. 1998년 가을에 가서는 “죄를 지었다”는 표현까지 썼고, “가족, 친구, 참모들, 내각, 모니카 르윈스키와 그녀의 가족, 미국인들”에게 사과한다며 사과의 구체적인 대상까지도 명시했죠. 다시 르윈스키 “사과”의 최신 버전으로 돌아가 보면, “나 자신”이라고 사과의 주체를 강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는 뉘앙스는 아닙니다. 또한 그녀 자신이 “일어난 일”의 주체냐, 객체냐에 따라 문장의 뜻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죠.

도덕적, 사회적으로 만족스러운 사과는 드뭅니다. 그러나 좋은 예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1988년 공화당의 선거 전략가 리 앳워터는 민주당 대선 후보 마이클 듀카키스에 대하여 “그놈 껍질을 벗기고 윌리 호튼(듀카키스가 주지사를 지낸 매사추세츠 주에서 시행된 주말 죄수 휴가제의 혜택을 받아 외출했다가 살인을 저지른 인물-역주)을 러닝메이트로 붙여주겠다”고 말했습니다. 3년 뒤 앳워터는 뇌종양으로 투병하던 끝에 공개 사과를 내놓습니다. “내가 했던 두 가지 말 모두 유감이다. 첫째는 너무나도 잔인한 말이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내가 인종주의자가 아닌데 나를 인종주의자로 보이게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던 방식에 대해 사과한다.” 아주 간결한 문장이지만 자신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자신이 무엇을 왜 뉘우치는지를 명확하게 밝힌 사과였죠. 듀카키스는 이 사과를 받아들였습니다. (Polit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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