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세월호 참사, 끔찍한 일이지만 ‘살인’은 아니다
-세월호 사태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을 다루어 일부 국내 언론에 소개된 가디언지 칼럼 전체를 정리한 확장 요약판입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세월호 사고에 관련된 (불행히도 초기 대응을 제외한) 모든 것이 너무 “업”되어 있습니다. 참사의 규모나 희생자 다수가 어린 학생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사고 엿새째, 국가 수반인 박근혜 대통령도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일부 승무원들이 “살인과도 같은 행태”를 저질렀다고 말했죠. 대통령은 희생자 부모나 국민 일반이 아닌 정부 관료들 앞에서 책임 있는 모든 자들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습니다. 서방 국가에서 국가적인 비극에 대해 지도자의 반응이 이 정도로 늦었을 때 지도자가 지지율과 자기 자리를 그대로 보전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지만, 박 대통령은 늦어버린 타이밍을 수사의 강도로 만회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번역이나 문화적 차이 때문에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어렵겠지만, “살인”이라는 단어는 분명 두드러집니다.
어쩌면 이번 참사를 보고는 누구나 감정적인 반응을 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죽음을 예감한 학생들이 가족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 메시지, 아직도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해안에 서서 슬퍼하는 부모들, 살아남은 것을 견딜 수가 없다며 자살한 학교 교감… 모두의 감정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분노와 슬픔의 강력한 조합은 문화권을 넘나드는 현상입니다. 100여 명의 학생들이 목숨을 잃은 영국 애버팬 산사태, 역시 수백 명의 학생들이 숨진 러시아 베슬란 학교 인질극, 중국 쓰촨성 지진 등은 여러 해가 지나도 여전히 큰 상처로 남아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살인”이라는 단어로 다시 돌아가봅시다. 세월호의 학생들이 정말로 “살해”당한 것일까요? 베슬란 학교 인질 사태 때 죽은 학생들은 실제로 테러 행위 때문에 목숨을 잃었죠. 애버판 당시에는 산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업무 과실이 있었지만, 기소된 사람은 없었습니다. 1987년 헤럴드오브프리엔터프라이즈호가 침몰해 193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도 회사 사장이 물러나기는 했지만, 선수문을 닫지 않은 승무원들에게 집중적인 비난을 가하며 개개인을 탓하기 보다는 사태가 일어난 과정 자체를 비난하는 여론이 더 컸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재까지 공개된 교신 전문을 보면 사고 대응 과정은 공포에 질린 승무원들의 무능과 혼란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누군가를 벌하고자 하는 욕구가 끓어오르겠지만, 동시에 사회는 책임과 의도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에도 답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과실이나 공포가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그 사람을 “살인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어디에 선을 그어 “살인”을 정의해야 하는 것일까요? 문화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동서양 어디에도 박 대통령이 “살인”이라는 발언을 했을 때 그은 선 만큼이나 그 선이 명확하게 그어지는 곳은 없을 겁니다. (Guard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