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현금 사용 감소가 범죄를 줄였는가?
1990년 이후로 왜 미국에서는 범죄가 급격히 줄어들었을까요? 이에 대해 경제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경찰력 증가, 보안 기술의 발전, 경제 성장 등 다양한 답을 내놓습니다. 물론 범죄가 줄어든 건 어느 특정한 이유 하나 때문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발표된 논문은 놀라운 원인을 하나 더 추가합니다. 바로 미국에서 현금 사용이 줄어든 것이 범죄율 감소와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현금은 지하 경제의 활성화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왜냐면 현금은 쉽게 훔칠 수 있고 사용자의 신원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금 사용이 감소하면 절도 등의 범죄가 줄어들게 되고 절도를 통해 획득한 돈을 마약이나 총기 구매, 혹은 성매매에 쓰게 되면서 발생하는 범죄 역시 줄어들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신용카드나 모바일 결제 등의 수단이 더 널리 쓰이면서 현금 사용은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50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 발생하는 결제의 80%가 현금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현재 그 비율은 50%로 떨어졌습니다.
현금 사용 감소가 범죄율에 미치는 인과 관계(causaul effect)를 파악하기 위해서 연구자들은 정부로부터 생활 보조금을 받는 미국의 카운티의 보조금 지급 방식에 주목했습니다. 과거 보조금이 현금으로 지급되다가 온라인을 통해 통장으로 돈을 입금해주면 체크카드(debit card)를 쓸 수 있도록 방식이 바뀐 시점이 있던 것이죠. 특히 연구자들은 체크카드를 쓸 수 있게 된 시기가 지역별로 달랐다는 점을 활용했습니다. 1980년대에 미국 정부가 생활 보조금 전자 지급 시스템을 도입했을 때 모든 주에 한꺼번에 적용한 것이 아니라 특정 시기별로 각 주에 있는 몇 개 카운티씩 전자 지급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에 각 카운티별로 자연스레 무작위 통제 실험(randomly controlled)을 한 셈이 됐습니다. 연구자들은 보조급 전자 지급 시스템으로 바뀐 미주리 주의 카운티의 범죄율과 새로운 시스템이 아직 적용되지 않은 카운티의 범죄율 변화를 조사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전자 지급 시스템을 도입한 카운티는 그렇지 않은 카운티에 비해 인구 10만 명당 범죄율이 16.6%나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절도나 폭행, 빈집털이 등의 범죄가 확연히 줄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보조금 전자 지급 시스템 도입은 절도 관련 범죄가 줄어드는 데는 영향을 미쳤지만 성폭행 등 성범죄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현금 지급에서 전자 지급으로 시스템이 바뀐 것이 현금과 관련된 범죄율에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현금 없이 결제하는 시스템은 미국에서 계속해서 성장세에 있습니다. 모바일 결제가 늘어나면서 미국에서도 머지않아 신용카드를 꺼내서 결제를 하는 장면이 주머니 속에서 정확히 잔돈까지 맞춰서 결제를 하는 것을 보는것 만큼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비자나 스퀘어 혹은 구글 지갑(Google Wallet)을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는 기술로 인식하는 것은 터무니없이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금 사용이 줄어드는 것이 범죄율과 큰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미국 정부는 모바일이나 전자 결제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The Atlan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