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12년’이 오스카상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
2014년 3월 4일  |  By:   |  세계  |  4 Comments

-오스카 시상식이 있기 전, 2월 28일에 TIME지에 실린 칼럼입니다.

오스카 시상식 작품상 후보가 5편에서 10편 내외로 늘어난 이유는 시상식의 흥행 때문입니다. 2009년, 그 해 가장 인기있었던 ‘다크나이트’가 후보작에 들지 못했을 때, 아카데미 측에서는 가장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후보에 들어야 시상식 흥행에 도움이된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죠. 이후 후보작이 늘어났고,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이나 ‘아바타’가 후보에 오르자 아카데미 시상식도 덩달아 흥행에 성공하게 됩니다. 후보작수를 늘인 이유치고는 형편없죠. 이런 결정을 내리고도 여전히 아카데미는 ‘흥행작’을 좋아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올해 크게 히트한 ‘헝거게임’이나 ‘아이언맨’, ‘겨울왕국’ 등은 작품상 후보에 들지 못했으니까요. 올해 작품상 후보 9편 중, 미국 내에서 5천만 달러 이상의 성적을 낸 영화는 ‘그래비티’를 포함, 4편 뿐이고, 나머지는 이른바 ‘예술 영화’죠. 만일 예전처럼 후보작이 5편이었다면, 작품상은 ‘아메리칸 허슬’,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 ‘노예 12년’, ‘그래비티’,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사이의 경쟁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우리는 작품상 경쟁을 3파전, 나아가 2파전으로 좁힐 수 있죠.

그 3파전의 첫 주인공 ‘아메리칸 허슬’의 경우, 코미디 드라마로 수상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다. 물론 1978년 우디 앨런의 ‘애니 홀’처럼 예외가 될 수도 있지만, 최고의 영예를 가져갈만큼 의미있는 영화는 아닌 것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 번째 ‘그래비티’는 작품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작품이고, 아마도 가장 많은 오스카상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예상컨대 감독상, 촬영상, 편집상, 음향편집상, 음향상, 시각효과상 등 최소 6개 부문에서 수상할 겁니다. (실제로 7개 부문을 석권, 올해 최다 부문 수상작이 됨. – 역주) 그러나 오스카상의 역사가 ‘그래비티’에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오스카상 역사 상 SF장르의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일은 단 한 차례도 없습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후보에도 못 올랐고, ‘ET’는 ‘간디’에게, ‘아바타’는 ‘하트로커’에게 지고 말았죠. 고령의 아카데미 회원들은 현실의 과거를 무대로 하는 드라마, 그것도 많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현장에 함께 모여서 만드는 영화를 선호합니다. SF물인데다가, 배경은 미래고, 등장인물은 두 명인데다, 스탭들은 전 세계 스튜디오에 앉아있는 너드들이니 ‘그래비티’는 모든 기준에서 탈락이죠.

그런 의미에서 오스카상 수상 기준을 만족시키는 올해의 영화는 바로 ‘노예 12년’입니다. 이미 올해 여러 주요 상들을 휩쓸며 합의의 기반을 다졌고, 미국사의 아픔인 노예제도를 진지하고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니까요. 영화의 폭력적인 면이나, 약간은 쿨하게 거리를 둔 묘사 방식이 다소간의 핸디캡이 될 수는 있겠습니다. 최근 3년 간 ‘소셜네트워크’가 아닌 ‘킹스 스피치’, ‘머니볼’이 아닌 ‘아티스트’, ‘라이프 오브 파이’가 아닌 ‘아르고’를 선택한 전적에서 알 수 있듯, 존경할 만한 작품과 사랑받는 작품 중 ‘사랑’ 쪽으로 기우는 것도 분명 아카데미의 전통이니까요. ‘노예 12년’이 사랑스러운 영화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올해의 3파전도 끝까지 치열한 경쟁이 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는 사기꾼과 천문관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내기를 걸자면 ‘노예 12년’에 걸 수 밖에 없습니다.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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