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연맹 54번째 회원국 지브롤터의 꿈
지브롤터(Gibraltar).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에 비유됐던 지브롤터 해협의 북쪽 이베리아반도 남쪽에 자리한 이곳은 그리스인들에게는 ‘세상의 끝’이었고, 이베리아 반도의 주인이 로마 제국, 사라센 왕조, 스페인 제국으로 변하는 내내 경제적,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1713년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한 뒤 위트레흐트 조약을 통해 통치권을 넘겨받은 뒤로 아직 스페인에 이를 넘기지 않고 있습니다. 여의도 면적의 두 배가 조금 넘는 넓이의 지브롤터에는 3만 명 남짓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이 지브롤터가 어제 프랑스 니스에서 열린 유로 2016 예선 조추첨에서 유럽축구연맹(UEFA)의 새로운 54번째 회원국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24개국으로 본선 참가국이 늘어나는 첫 대회인 유로 2016 지역 예선에서 D조에 배정 받은 지브롤터는 독일, 아일랜드, 폴란드, 스코틀랜드, 그루지야와 경기를 치르게 됐습니다. 지브롤터는 유럽축구연맹의 회원국이 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가장 먼저 지브롤터의 자치권을 인정하지 않는 스페인이 결사 반대를 외쳤습니다. 관광명소로 유명한 지브롤터 암벽 위에 자리잡고 있는 홈구장 빅토리아 스타디움은 인조잔디 구장으로 유럽축구연맹 규격을 충족시키지 못해 공식 경기를 치를 수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지브롤터 대표팀은 경기가 있을 때마다 포르투갈의 알가르베(Algarve)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임대해 사용할 예정입니다. 지난해 11월 이 경기장에서 치른 슬로바키아와의 공식 첫 A매치 친선 경기에서 신생팀 지브롤터는 무서운 투혼을 발휘하며 0대 0 무승부를 일궈내는 작은 기적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국인 슬로바키아와 경기를 치르기 전날 적잖은 지브롤터 대표팀 선수들은 알가르베 시내의 쇼핑몰에 가서 천연잔디용 축구화를 급히 사 신어야 하기도 했습니다.
선수 구성은 신생팀 지브롤터의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원래 ‘축구를 통한 자치 의지 강화’와 같은 상징적 의미가 강했던 시절에는 대표팀의 전력보다도 지브롤터에서 나고 자란 선수들로 팀을 꾸리는 게 암묵적인 원칙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럽축구연맹의 정식 회원국이 되고, 본인이 태어나지 않은 곳이라도 부모나 할아버지, 할머니의 국적을 따라 대표팀을 선택할 수 있다는 유럽의 규정이 적용되자, 알렌 불라(Allen Bula) 지브롤터 대표팀 감독은 영국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향해 러브콜을 보냈습니다. 지브롤터가 영국령이다 보니, 족보를 찾아보면 지브롤터 대표팀에서 뛸 자격이 있는 선수들이 있는 셈이죠. 프리미어리그 스토크시티에서 주전 수비수로 활약했던 히긴보텀(Danny Higginbotham)을 비롯해 소위 쓸만한 전력들이 부름에 응했습니다. (34살인 히긴보텀은 은퇴를 앞두고 있습니다. 예선전에는 선수가 아닌 코치로 참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불라 감독의 선수선발 방식에 지브롤터 팬들이 불만이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 막 닻을 올린 신생팀 지브롤터의 모험에 많은 축구팬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B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