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얼굴의 노예들: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인종주의 활용법
-뉴올리언즈대학에서 미국사를 가르치는 Mary Niall Mitchell교수가 NYT에 기고한 글입니다.
1864년 1월, 하퍼스위클리(Harper’s Weekly)에는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끈 사진 한 장이 실렸습니다. 북부군이 점령한 뉴올리언즈에서 갓 자유를 찾은 흑인 노예 8명의 사진이었습니다. 세 명의 어른들 앞에 7세에서 11세 사이의 아이들 5명이 서있는 사진이었죠. 페티코트를 갖춘 드레스와 정장을 말쑥하게 갖춰입은 차림새보다도 더 독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이들의 생김새였습니다. 피부색이 밝고 머릿결이 부드러운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북부의 중산층 백인 독자들은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남부의 노예들이 모두 다 흑인처럼 생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죠. 하퍼스위클리가 의도한 효과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사진이 들어간 기사는 “2,3세대에 걸쳐 백인 아버지를 가진 이 아이들은 꼭 우리 아이들처럼 하얗고 똑똑하며 유순하다”고 전합니다.
남북전쟁사에서 1863년 뉴욕 징병거부 폭동은 많은 조명을 받았습니다. 풀려날 흑인 노예들과의 일자리 싸움을 두려워한 가난한 백인들이 “부자들을 위한 전쟁”인 남북전쟁에 반대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고요. 그러나 그 폭동 후에 노예제 폐지론자와 북부군이 대중을 겨냥해 펼친 조직적인 선전 운동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운동은 노예제에 맞서 싸울 이유가 있음을 설득하기 위한 것으로, 사진이라는 새로운 매체와 세련된 호소 방식을 활용한 현대적인 캠페인이었습니다. 북부군과 폐지론자 자선단체들은 노예 어린이들의 사진을 잡지에 싣기도 하고, 순회 사진전를 열기도 했습니다. 전시회 수익으로 해방된 노예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짓기도 했지만, 최우선 목표는 오랜 전쟁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한 북부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것이었죠. 백인과 비슷한 피부색에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의 옷차림을 하고, 전형적인 구도의 가족사진 속에 등장한 노예 어린이들은 북부인들에게 노예제가 백인의 자유까지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가장 피부색이 밝은 여자 어린이들의 사진이 특히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백인과 흡사한 생김새의 소녀들이 노예 시장에서 성인 남성의 첩으로 팔려갈 처지에 놓인 것을 보자 북부인들은 분노했고, 다시금 심기일전해 전쟁에 나설 수 있었죠.
이 사진들을 활용한 선전 운동은 남북전쟁 당시 미국 사회의 혼란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당시 사람들이 노예제에 대해 어떤 확고한 신념이나 딱 떨어지는 의견을 갖고 전쟁에 임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도요. 이런 사진에 마음이 동요된 사람들 가운데서는 해방될 노예들이 모두 “유순할”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겁니다. 노예제에는 반대하지만 백인 우월주의는 그대로 갖고 있었던 사람들은 사진들을 보면서 노예제가 해방되고 나서 펼쳐질 혼란스러운 세상, 즉 인종 간 출산이 허용되어 흑인들이 백인인척 거리를 활보하는 세상을 상상하며 두려워하기도 했을 겁니다. 누군가는 하얗고 가련한 얼굴의 노예 소녀가 북부군의 깃발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진을 보면서, 노예들이 해방되어도 미국은 백인 국가로 남아야 한다는 얄팍한 신념을 더욱 굳히게 되었을지도 모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전쟁에서 이겨야 했던 북부군에게는, 이보다 더 효과적인 선전 수단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NYT)